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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중함을 알라” 가미카제와 인간어뢰 부대 출신 두 일본인 노병의 호소  

딸기21 2015. 3. 1. 14:03

가미가제 특공대 대원이었던 데즈카 히사시(手塚久四)가 출격 명령을 받은 것은 종전 이틀 전이었다. 자폭공격을 준비하고 최전선 기지로 가는 도중 일왕의 방송을 들었고, 일본의 패전을 예감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죽기 위해 왔는데 죽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라는 것이었다. 출격을 하기 위해 홋카이도에서 특공훈련지가 있는 카가와(香川)까지 육로로 이동하는데, 도중에 열차가 몇 번이나 멈춰섰다. 그러다가 종전을 맞았다. 전쟁이 끝나기 전 기지에 도착했다면 실제로 출격을 했을 지도 모른다. 어느새 93세가 된 데즈카는 그 때가 “운명의 갈림길”이었다고 회고했다.

 

‘바다의 특공대’라 불렸던 인간어뢰조 ‘카이텐(回天)’ 부대에 배속됐던 이와이 타다마사(94)는 결핵 진단을 받고 부대를 옮겼다. 그는 히로시마(島)현의 나사게지마(情島)에서 패전을 맞았다. 그는 기지 건물 안에서 원자폭탄 폭발 순간을 목격했다. “하늘이 하얗게 빛났다. 쾅 하는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고, 그것이 곧 패전이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때 무기로 썼던 인간어뢰 ‘카이텐’. 잠수함 갑판에 탑재됐던 이 어뢰는 1944년 이후 약 400기가 생산돼 그 중 100기가 특공작전 자폭 임무에 쓰였다. 사진 geocities.jp


그는 부대 동료들과 직립부동 자세로 패전 방송을 들었다. 그는 입대 전부터 “어차피 나는 전쟁에서 죽는다”고 생각해왔다고 했다. “지는 것은 알고 있었고, 단지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지는 것이 의외였다”고 그는 말했다.


"지금 일본은 다시 우경화하고 있다" 노병들의 외침

 

‘죽을 것으로 알았던’ 전쟁에서 살아남은 그들은 전후 70년을 보낸 지금 일본인들에게 할 말이 많다. 두 사람은 올 여름 아베 신조 총리의 ‘패전 70주년 담화’를 앞두고 평화 알리기에 나섰다. 데즈카는 지난 1월, 데즈카는 지난달 27일 블룸버그통신 일본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전후세대들을 향해 전쟁의 참화를 일깨우고 평화의 소중함을 호소했다.

 

아흔 살이 넘은 전직 특공대원들을 움직인 것은 ‘위기감’이다. “살아남아 미안하다는 마음을 품고 전후의 일본을 지켜봐왔다. 전쟁 때 일본은 자유가 없는 나라였다. 그런데 지금 정치도 사상도 다시 우경화하고 있다.” 데즈카의 말이다. 그는 도쿄대학에서 미국 경제를 공부한 터여서 일본의 국력이 미국보다 훨씬 처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전쟁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이는 육군 장교였던 아버지를 따라 중국 다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본인은 중국인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입시를 치르기 위해 도쿄에 돌아온 뒤에야 일본이 다롄을 침략했던 것이었음을 알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는 체제 비판이 금지되고 권위주의가 팽배했던 세태에 반감을 느꼈고, 거기에 맞서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게이오대학에 진학해 서양철학을 전공했다. 전쟁 중에 소집돼 가미가제가 된 이와이는 “학도병이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거국일치의 슬로건에 이용됐다고 생각했고, 카이텐 부대에 배치돼 15m 정도의 어뢰용 쇠막대를 본 뒤 “이것이 내 관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특공대 미화한 소설, 영화 등 보며 위기의식 느껴"


데즈카는 가미카제를 미화하는 책들이 일본에서 출간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전쟁 미화’에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했다. 2006년 오오타출판이 발행했고 2009년 고단샤가 문고판으로 다시 출간한 햐쿠타 나오키(百田商樹)의 <영원한 0>은 특공대를 미화한 소설로 논란을 빚었으나 베스트셀러가 됐고 2013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햐쿠타는 같은 해 아베와의 대담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데즈카는 “그 책은 특공대를 미화한 것인데 모두가 거기에 편승하고 있다”며 “다시는 (특공대같은 것은) 없어야 한다. 제대로 평가를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벚꽃’이라는 이름의 가미가제 폭격기. 미 육군 항공대 B-29 승무원이 오키나와 기지에 불시착했을 때 촬영한 것이다. 사진 geocities.j


도카이대학에서 평화학을 가르치는 도리카이 유키히로(鳥飼行博) 교수는 블룸버그에 “전쟁을 체험한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특공대를 미화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진짜 전쟁을 알지도 못하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이미지만 가지고 특공대는 멋지다든가, 대원들은 열심히 했다든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전략폭격조사단 보고서에 따르면 1994년 10월부터 오키나와 전쟁이 끝날 때까지 특공대는 2550회 출격했으나 타격을 입히는 데에 성공한 것은 18%에 그쳤을 정도로 소모적이었다. 


"타협은 내 죄... 지금도 고통스럽다"

 

두 사람 모두 가미카제와 카이텐 부대에 소속된 뒤에는 “그래도 임무를 성공시키고 싶어서 열심히 훈련했다”면서 그것이 자신들이 안고 있었던 모순이었다고 말했다. 이와이는 “타협을 했고, 나에게는 그 죄가 있다”며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데즈카는 대학을 졸업한 뒤 전시의 적이었던 미국인과 손잡고 사업을 했다. 이와이는 대학 졸업을 결국 포기한 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독학으로 러시아어를 배웠으며, 번역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이와이는 도쿄 교외의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의 집에는 70년 전의 전쟁과 관련된 물건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전쟁의 유물들을 “흉하고 나쁜 것들”이라 부르며 지금도 멀리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