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앙정보국(CIA) ‘고문 보고서’ 파장이 미국 밖으로도 번지고 있습니다. 조지 W 부시 정권 때 유럽과 아시아·북아프리카 국가들도 대테러전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국민들 몰래 CIA가 자국에 구금·심문소를 짓도록 허가해주는 등 협력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 대가로 거액을 받은 나라들도 있었습니다.
CIA가 세계 곳곳에 비밀 구금소를 만든 것은, 자기네 나라 안에서 고문 같은 짓을 했다가는 미국 법에 위반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대신 부시 정부는 '다른 나라에서' 고문을 할 수 있게 허가를 내줬습니다. 이런 짓들이 가능했던 건 여러 나라가 허용을 해줬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공개된 미 상원 정보위원회 보고서 요약본에는 ‘협력국가’에 대한 항목은 빠졌지만, 여러 나라로 불똥이 튈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만들었던 비밀감옥, 일명 'Salt Pit'의 위성사진입니다. / Credit Space Imaging, via Getty Images
영국 가디언은 9일 민간단체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의 보고서를 인용해, “최소 54개국이 CIA에 협력했는데 그 중 21개국은 유럽국들이었다”며 유럽도 이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유럽 21개국 중 17개국은 그 당시 혹은 그 이후에 가입한 유럽연합(EU) 회원국들입니다.
인권지킴이를 자처해온 유럽이 이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지... 지금까지는 대응이 엉망이었습니다만, 이 보고서 이후에는 어떨지...
CIA 고문프로그램에 여러 나라가 협력했다는 사실은 이미 몇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2007년 6월 유럽 인권기관인 유럽평의회는 2003~2005년 유럽에서 CIA 비밀 감옥들이 운영됐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2010년에는 국제앰네스티가 ‘공공연한 비밀: 유럽연합이 비밀구금과 수감자 수송에 눈 감았다는 증거들’이라는 보고서를 내고 유럽국들을 향해 구금자들에 대한 배상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월에는 워싱턴포스트가 태국과 폴란드의 고문시설 실태를 폭로했고요.
미 상원 정보위원회 CIA '고문 보고서'
Flawed, brutal and ineffective: Senate’s damning report on CIA torture /알자지라
사이트에 들어가면 상원 보고서 중 공개된 부분(전체 6700쪽의 요약본)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상원 정보위원회 보고서와 그동안 폭로된 내용들을 종합하면, ‘블랙 사이트(Black Site)’라 불린 비밀감옥이 가장 먼저 만들어진 곳은 태국입니다. 2002년 3월 알카에다 핵심 조직원 아부 주바이다를 체포한 CIA는 ‘거물급’이던 그를 비밀리에 심문하기 위해 태국 방콕 부근에 심문소를 만들고 수십차례 물고문을 했습니다. 이어 체포된 2000년 예멘 미 군함 콜호 테러용의자 압둘라힘 알나시리도 방콕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이 시설은 ‘너무 좁았기 때문에’ CIA는 폴란드에 새 시설을 물색했습니다. 폴란드 정보국이 빌려준 저택을 30만달러나 들여 ‘리모델링’한 뒤, 방콕 시설을 폐쇄하고 주바이다 등을 폴란드로 옮겼습니다. CIA는 여기에 칼리드 셰이크 모하마드 등 8명을 가둬놓고, ‘강화된 심문기법(enhanced interrogation techniques)’이라며 물고문·수면박탈 등 가혹행위를 했습니다. 강화된 심문기법이라니... 말장난의 진수를 보여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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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는 그 대가로 1500만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웃한 루마니아, 알바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체코 등 동유럽 여러 나라에도 비밀 수감시설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폴란드와 루마니아는 지금껏 이 사실을 부인해왔습니다.
마케도니아에서는 CIA가 독일 국적의 무슬림을 불법구금·이송한 사실이 드러난 적 있습니다. 이 무슬림은 유럽인권재판소에 소송을 낸 상태입니다.
CIA는 구금자들이 늘자 비밀 시설을 모로코, 리투아니아 등지로 분산시켰습니다. ‘봄베이’라는 암호명으로 모로코 비밀감옥을 만드는 데에는 2000만달러가 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사실은 2005년 워싱턴포스트 보도로 폭로됐습니다. 파문이 일자 CIA는 비밀감옥들을 차례로 닫고 구금자들을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 내 수용소로 옮겼습니다.
고문에 협력한 것은 돈 없고 힘 없는 동유럽국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서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02년 시리아에서 무함마드 자마르를 몰래 구금·심문하는 데 독일 정보요원이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 독일 의회가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미국과 이탈리아 정보요원들이 테러용의자를 멋대로 구금하고 이집트에서 고문한 사실이 드러나, 재판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최종판결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10년에 걸친 푸들 경력의 영국이 의혹에서 빠질 리 없지요.
영국 정부도 CIA의 구금·심문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텔레그래프는 영국 정부가 테러용의자 비밀 이송 프로그램에 협력했을뿐 아니라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잭 스트로 전 외교장관이 대외정보부(MI6)로부터 이를 매 순간 보고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블레어 측은 이런 보도에 논평을 거부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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