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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두 얼굴 ‘부시의 고문법’

딸기21 2009. 4. 17.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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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재직시 허가한 테러용의자 신문기법 공개
ㆍ오바마, 금지 약속 “CIA요원 처벌은 안해”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당국이 테러용의자들을 상대로 자행한 고문 수사 기록들이 16일 공개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전임 행정부 시절 행해진 가혹수사 내용들을 밝히면서 “이런 신문방식은 모두 금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고문기술자들에 대한 처벌은 하지 않겠다고 밝혀 반발이 일고 있다. 

이날 공개된 문건 4건은 부시 대통령 재임시 법무부가 CIA에 ‘고문 수사’를 사실상 허용했음을 보여준다. 문서에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유럽 등지에서 체포된 테러 용의자들에게 수사 요원들이 ‘강도 높은 신문 방법’을 사용해도 된다고 돼 있다. 

한 문건은 2002년 8월 법무부 법률자문위원회 변호사가 만든 것으로, 수사요원들이 아부 주바이다라는 테러용의자를 상대로 ‘사용해도 되는 신문기법 10가지’의 목록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구금자를 벽에 밀어붙이거나 뺨을 때리는 것, 좁은 공간에 가두거나 옷을 벗기고 벌을 씌우는 것 등이 포함돼 있다. 문건에는 또 11일 이내에서 잠을 재우지 않거나, 구금자를 벌레가 들어 있는 통에 집어넣는 것 등도 허용된다고 적시돼 있다. 법무부는 문건에서 “이런 신문 방식은 국제법에 비춰볼 때 잔인하지도, 비인간적이지도, 인격모독적이지도 않다”고 밝혔다. 법률자문위원장 명의로 2005년 작성된 나머지 3건의 문건들 역시 비슷한 가혹행위들을 승인하고 있다. 

● 수건 씌우고 물붓기

또 이 기록들은 CIA가 쿠바 내 관타나모 테러용의자 수용소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있는 비밀 감옥에서 정부의 묵인 아래 조직적으로 가혹행위를 저질렀음을 입증하고 있다. 미국의 대테러전 개시 뒤 CIA의 테러용의자 조사를 받았던 이들은 수사 과정에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해 왔으며, 국제인권단체들과 미국 법률단체들은 미국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해왔다. 특히 2005년 CIA가 구금자에게 ‘워터보딩(물고문)’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었다.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은 의회가 고문방지법을 제출하자 “미국은 고문을 하지 않는 나라이므로 고문방지법은 필요없다”며 법안을 거부했다. 

● 벌레 든 통속에 넣기

이번 공개된 문건들은 CIA 측이 추후 법적 책임을 추궁당할 것에 대비해 보관해놓고 있던 것들이다. 인권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앞서 정보자유법에 따라 법원에 CIA의 가혹수사 관련 문서들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냈다. 정부 일각과 CIA 내에서 거센 반발이 있었으나 오바마 대통령이 공개를 밀어붙였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 벽으로 밀어붙이기

오바마 대통령과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이날 문건 공개와 함께 성명을 발표, “(가혹 수사는) 미국의 도덕적 권위를 무너뜨릴 뿐이며 안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이런 수사들을 금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반성할 때이지 징벌할 때가 아니다”라며 가혹행위를 한 CIA 요원들을 처벌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재발방지 약속만으로는 미흡하다며 가혹행위 관련자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ACLU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그들에게 면책권을 줘서는 안된다”고 반발했고, 국제앰네스티도 “재판도 없이 불법행위자를 사면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구정은기자 ttalgi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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