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해적 '인권' 논란

소말리아 해적 사태가 이번엔 ‘인권 문제’로 번졌다. 미군이 최근 소말리아 해상에서 생포한 해적 1명의 법적 처리가 국제적인 이슈로 부상한 것. 연방법원에서 재판해 엄벌에 처하겠다는 미국과 달리 유럽국들은 해적들을 잡아도 곧 다시 풀어주고 있어, 미국과 유럽 간 외교마찰까지 빚어지고 있다. 해적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국제적인 공통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AP통신은 소말리아 해상에서 체포된 해적이 해군함정 베인브리지호로 호송돼 20일 밤(미국시간) 뉴욕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압둘 왈리 무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해적은 동료 해적 3명과 함께 미국적 선박 머스크 앨라배마호 선장 리처드 필립스를 억류했었다.
왈리 무시는 베인브리지호로 넘어와 미군 측과 인질석방협상을 하던 중 미군에 체포됐다. 미군은 전격 구출작전에 들어가 해적 3명을 사살하고, 왈리 무시만 생포했다.

▶FBI agents escort Somali pirate U.S. officials identify as Abdiwali Abdiqadir Muse into FBI headquarters at 26 Federal Plaza, Monday, April 20, 2009, in New York.

당초 미군은 해적처벌에 관한 국제협약을 채택한 동아프리카 케냐에 왈리 무시를 넘겨 재판을 받게 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연방수사국(FBI)의 조사에 맡기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 따라 뉴욕으로의 호송을 결정했다.

미군은 해적들의 공격을 1998년 케냐·탄자니아 미국대사관 테러나 90년대 소말리아 알카에다 테러 같은 ‘반미 공격’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AP는 전했다.

하지만 인권단체들과 법조계에서는 해적행위를 ‘반미 공격’으로 규정하고 연방법원 재판에 회부하려는 미국 측의 입장에 반발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왈리 무시가 아직 10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베인브리지호 함상에서 그를 1차적으로 조사한 미군 관리들은 “18세 이상으로 보인다”고 일단 결론을 내렸다. 18세 미만일 경우 미성년자가 되기 때문에, 사법처리의 장애물을 없애기 위해 18세 이상으로 규정한 것이다.
하지만 소말리아 북부 시골마을 갈카요에서 살고 있다는 그의 엄마 아다르 압디라흐만 하산은 19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앞으로 서한을 보내 “아들은 이제 겨우 16살”이라며 석방을 촉구했다. 하산은 “갱들이 돈을 쥐어주면서 어린 아들을 꾀어갔다”며 아들이 재판받는 모습이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미군은 해적들을 공격한 뒤 “사살된 이들은 17~19세로 보인다”고 밝혔었다. 왈리 무시가 18세 이상이면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최고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미성년자라면 연방법원이 아닌 주법원이나 소년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출생증명서나 여권도 없는 왈리 무시의 나이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인권변호사 론 쿠비는 빈곤 때문에 해적이 된 소년을 테러범 취급해서는 안된다며 “왈리 무시가 정당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변호팀을 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왈리 무시가 인질석방을 협상하려다 붙잡혔다는 사실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미국과 유럽국들은 체포한 해적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혼선을 빚고 있다. 19일 아덴만에서 해적퇴치 작전에 나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군은 노르웨이 유조선을 공격한 해적들을 체포했으나 곧 풀어줬다. 전날 네덜란드 해군도 해적 7명을 붙잡았으나 역시 석방했다. 

네덜란드를 방문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막시메 베어하겐 네덜란드 외무장관에게 “해적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낸 것”이라며 석방에 항의했다. 미국과 유럽국들은 다음달 초 뉴욕에서 ‘소말리아 해상 해적행위 관련그룹’(CGPCS) 회의를 열고 해적 처리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