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2일로 브레턴우즈 협정이 체결된지 70년이 된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브레턴우즈 기구들’에는 70주년 축하 대신에 비판과 개혁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지역별 통화기금 체제들이 출범한데 이어, 거대 신흥경제국 모임인 브릭스가 자신들만의 IMF를 만들기로 하면서 IMF는 점점 그늘에 가려지는 분위기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구성된 브릭스(BRICS)는 15일 브라질 북동부 포르탈레자에서 열린 제6차 정상회의에서 브릭스판 IMF로 불리는 신개발은행(NDB) 설립 협정에 서명했다.
주최국인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비롯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제이콥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 5개국 정상이 모두 참석해 초기자본금 500억달러를 출자하고 5년 내 자본금을 1000억달러로 키운다는 데 합의했다.
제3세계 '빈곤화'의 주범, IMF
신개발은행의 본부는 중국 상하이에 두고, 초대 총재는 인도 출신 인사가 맡기로 했다. 정상들은 브릭스 5개국 외에 다른 나라들에도 문호를 열기로 했고, 별도로 1000억달러 규모의 위기대응기금을 만든다는 데에도 의견을 모았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회의 뒤 “브릭스 국가들을 금융위기에서 효과적으로 보호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신개발은행이 세계 금융질서에 미칠 영향력을 가늠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미국이 주도해온 IMF 체제가 약화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1944년 7월 22일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서 합의된 협정으로 출발한 브레턴우즈 체제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무너진 세계 경제를 성장으로 이끈 장치 중 하나였다. 1970년대에 이 체제의 핵심인 고정환율제가 폐기된 뒤에도 IMF와 세계은행 같은 기구들은 살아남아 세계 금융을 지배했다.
브레턴우즈 협정이란
대공황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1944년 7월 미국의 브레턴우즈에서 열린 연합국 통화금융회의에서 채택된 국제금융기구에 관한 협정이다. 이 협정에 따라 만들어진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을 합쳐 ‘브레턴우즈 체제’라 한다. 이 체제는 1971년 미국이 금본위제도를 폐기하면서 붕괴했지만 IMF의 통화관리는 계속 유지됐다.
하지만 IMF에 대한 반발도 함께 커졌다. 가장 큰 비판은 이 기구가 구제금융에 조건을 달아 대출받는 나라들에 폭압적인 구조조정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IMF의 돈을 빌린 중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은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리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강요당했고 그 후폭풍은 거셌다. 구제금융을 받은 거의 모든 나라들이 민영화와 긴축재정 압박으로 고통을 겪었다. IMF는 1980~90년대 제3세계의 경제위기를 악화시키고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들게 한 주범으로 지목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실패, IMF 무용론 제기
특히 IMF가 2007~2009년의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복잡한 상황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실패하면서 무용론이 제기됐다. 이런 대규모 금융 붕괴를 막을 능력도 없고, 자금조차 부족하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이는 지역별 통화안정 체제가 속속 생겨나는 결과를 낳았다. 아시아는 1990년대 후반 금융위기 뒤 한·중·일 3국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이 참여하는 통화스왑 시스템을 만들었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당초 참여국들 간 양자 통화스왑 계약들로 시작됐다. 위기가 발생했거나 예상될 경우 자국통화를 담보로 이웃나라에서 외국통화를 빌릴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시스템은 2010년 3월 공동대응체제인 ‘CMI 다자화’의 출범으로 이어졌으며, 아시아국가들은 이로써 아시아통화기금(AMF) 체제로 가는 초석을 닦았다. 유럽에서는 금융위기 뒤 유로화 사용국들 간 ‘유럽안정화기구(ESM)’라는 틀이 생겨났다.
브릭스 회원국
IMF의 영향력이 약화된 것에는 스스로가 만든 글로벌 금융체제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도 있지만, 비민주적인 구조도 큰 영향을 미쳤다. IMF에는 북한, 쿠바, 모나코 등 몇몇 국가를 빼면 유엔 회원국 대부분이 가입해 있다. 이 기구의 표결권은 각국의 기여분을 SDR이라는 독자적인 단위로 환산해 배분된다. 표결권의 15%를 확보하면 IMF의 결정에 제동을 걸 수 있는데, 이는 표결권의 16.75%를 가진 미국에 단독 거부권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국 배제' 위해 개혁 거부한 미국, 브릭스에 뒤통수 맞다
2000년대 들어 줄곧 제기된 IMF 개혁론의 핵심은 세계 경제의 주요 당사자들이 달라졌음을 인정하고 중국 등 신흥국들의 지분을 늘려주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번번이 이를 막았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신흥국 지분을 늘려 기금을 키우자고 했지만 미 의회는 관련 법안을 거부했다.
■ 세계의 주요 통화 안정화 시스템
국제통화기금(IMF)
1944.7 브레튼우즈협정으로 탄생
188개 회원국, 보유기금 규모 3680억달러
회원국 기여분(SDR)에 따라 투표권 배분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2000.3 태국 치앙마이 협정으로 탄생
2010.3 ‘CMI 다자화(다국적 통화스왑 프로그램)’ 출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10개국과 한국·중국·일본 참여
기금 규모 1200억달러
유럽안정화기구(ESM)
2012.9 출범, 유로화 사용 18개국 가입
대출가능 한도 5000억유로(+필요시 특별기금 조성)
신개발은행(NDB)
2014.7 브릭스 5개국 합의로 설립 결정
기금조성 합의액 총 1000억달러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중국을 배척함으로써, 중국이 독자적인 통화기금 체제를 세우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국제금융의 현실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었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에 따르면 2001년 중국이 양자협정으로 각국에 지원해준 돈은 17억달러 정도였다. 10년 뒤가 되자 중국의 대출금은 1900억달러로 커졌다. 하지만 중국이 IMF에서 갖고 있는 투표권은 4.29%에 불과하다.
브릭스 신개발은행의 출범은 이런 모순된 구조를 가진 IMF의 영향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면서, IMF와 세계은행의 역할을 상당부분 대체할 것으로 외신들은 내다봤다. 통화기금의 블록화가 지구적인 돈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보다는 ‘금융 민족주의’로 나아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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