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베를린 책임자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외국에서의 간첩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온 ‘오만한 미국’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과 미국 간 ‘스파이 갈등’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독일 정부는 10일 베를린 주재 미 대사관 소속으로 일해온 CIA 베를린 책임자에게 출국권고를 했다. 독일 정부는 이 인물의 이름과 직위 등은 밝히지 않은 채 “미 대사관의 베를린 역장에게 독일을 떠나라고 했다”고만 밝혔다. ‘역장’은 CIA의 해외 주재국 책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추방’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고 “미국 정보기관의 독일 내 활동에 대한 의문이 생긴데 따른 퇴거요구”라고만 설명했으나, 사실상 추방령인 셈이다. 현지언론 슈피겔은 독일 정부의 이런 강경대응을 “외교적 지진”이라 표현하며 양국 간 긴장이 몹시 높다는 걸 보여주는 일이라 풀이했다.
NSA 파동 속에서도 참을만큼 참았는데...
지난해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 국가안보국(NSA)의 개인정보수집을 폭로한 뒤 독일에서는 미국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맹방인 독일조차 정보수집 대상이었다는 것,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전화까지 감청당했다는 것, 독일 정보기관이 미국 측의 정보수집에 협력했다는 것이 잇달아 폭로되자 여론이 들끓었다. 나치 시절과 동독 시절 ‘비밀경찰’의 악몽을 잊지 않는 독일 국민들은 사생활 침해와 정보수집을 몹시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메르켈 정부는 미국에 해명을 요구하면서도 강경 비난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이달 들어 CIA가 독일 정보요원과 국방부 직원을 포섭해 간첩활동을 시킨 사실이 잇달아 드러나면서 쌓이고 쌓인 분노가 폭발했다. 독일 당국은 당초 간첩행위를 한 정보요원이 러시아에 고용된 것으로 보고 덫을 놔 체포했다. 하지만 러시아와 미국에 동시 포섭된 이중스파이임을 알고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NSA의 정보수집은 기본적으로 통신데이터를 모으고 신호를 감청하는 ‘시긴트(SIGINT)’ 활동이다. 하지만 CIA의 간첩 공작은 사람을 동원한 첩보 즉 ‘휴민트(HUMINT)’라는 점이 다르다. 독일에서까지 노골적으로 휴민트 활동을 한 것에 메르켈 정부와 의회 모두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파이짓 들켜놓고도 미국은 '무성의'
심지어 스파이짓이 드러난 뒤에도 미국은 성의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존 브레넌 CIA 국장과 존 에머슨 독일 주재 미국대사는 독일 측의 해명요청에도 확답을 주지 않았고, 재발방지 약속조차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독일 측은 미국이 NSA 사건 이후 유럽국들을 휩쓴 분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오바마 정부가 스파이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못 느끼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10일 토마스 데 마이치에레 내무장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외무장관, 페터 알트마이어 총리실장이 긴급 통화 끝에 ‘초강력 대응’으로 의견을 모았고, 기피인물 지정 같은 외교적 절차 없이 곧바로 CIA 책임자에게 출국을 요구했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가뜩이나 정부가 NSA 정보수집에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는 국민들의 불만이 높은 상황에서, 가만 있다가는 메르켈 정부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동맹에 대한 스파이짓은 에너지 낭비”라면서 시리아 내전이나 이라크 분쟁에나 더 집중해야 한다고 미국을 일갈했다.
워싱턴포스트는 “CIA 독일 책임자가 추방됨으로써 양국 정보기관 간 이란 핵·테러정보 등에 대한 긴밀한 정보공유가 깨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다음주 베를린을 방문해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아직 미국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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