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비정제유에 대한 수출 금지를 40년만에 완화했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원유 수출의 빗장도 풀릴 지 주목된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24일 텍사스 소재 기업 2곳의 초경질유(콘덴세이트) 수출을 허용했다. 미국은 중동발 오일쇼크 뒤 1975년 캐나다를 제외한 외국으로의 원유 수출을 금지했다. 하지만 최근 셰일가스 개발 붐에 힘입어 부가생산물인 콘덴세이트 생산량이 늘자 수출금지를 완화해달라는 기업들의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콘덴세이트는 천연가스 개발과정에서 나오는 액상 탄화수소다. 일반 정유시설보다 단순한 스플리터라는 설비를 거쳐 등유나 프로판, 부탄, 나프타 등으로 만들어진다. 미 정부는 콘덴세이트를 ‘원유’에 포함시킬 지 고심하다가 ‘원유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수출을 허용했다. 미국 언론들은 올해 콘덴세이트 수출량이 하루 30만배럴에 이르고, 내년에는 최소 그 2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앞으로도 ‘원유 수출 금지정책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원유는 여전히 전략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규정을 완화한 것은 업계의 로비와 석유 수급구조의 불일치 때문이다. 바다 밑 혈암층을 뚫어 파내는 셰일가스는 환경파괴 우려 때문에 각국에서 개발 여부를 고민하고 있지만, 미국은 유독 셰일가스 추출에 적극적이다. 곳곳에서 셰일가스를 파내면서 덩달아 늘어난 것이 가스전에서 나오는 콘덴세이트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콘덴세이트 생산량만 1일 100만배럴에 이르렀다. 그런데 멕시코만의 정유공장들은 대부분 경질유가 아닌 중유를 정제하는 설비들이다.
이번 조치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리사 머코스키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 석유산업을 키우고 휘발유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환영했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녹색 에너지’를 강조해온 오바마 정부의 이번 조치가 이율배반이라며 비판했다고 USA투데이 등은 전했다. 엑손모빌과 컨티넨탈같은 석유회사들은 수출 금지규정을 풀어달라며 맹렬한 로비를 펼치고 있으나 환경단체들은 “차라리 셰일가스 생산량을 줄이라”며 반대해왔다.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도 각각 다르다. 로이터통신은 25일 “이번 조치가 상징적인 것에 그칠지, 세계 석유시장의 변화를 부르는 ‘게임체인저(결정적인 변수)’가 될 지는 알 수 없다”고 보도했다. 시장분석가 퍼스 해먼드는 로이터에 “아직은 첫걸음에 불과하다”며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시티그룹의 에드 모스는 “문이 열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은 여전히 석유소비량의 45%를 수입하는 나라이지만 셰일가스 덕에 산유량이 계속 늘고 있다. 미국의 원유생산량은 금융위기가 강타했던 2008년말 저점을 찍은 뒤 갈수록 늘어 지난 3월에는 하루 820만배럴을 기록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다. 재래식 유전에서 나온 원유에 셰일가스까지 합치면 1일 1100만배럴로 늘어난다. 미국은 지난 3월, 24년만에 처음으로 전략비축유를 일부 방출했다. 크림반도를 병합한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 유가를 낮추려는 조치였으나, 그 이면에는 석유가 너무 많이 쌓여 있다는 속사정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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