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광장 골목과 동네를 기웃거려 보긴 했지만, 사실 메크네스에서 우리의 핵심 ‘관광지’는, 메디나(구시가지) 한복판에 있는 ‘리아드 바히아’! 애시당초 계획에 있던 곳은 아니었으나,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호사라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론리플래닛에 메크네스 메디나의 '탑 초이스'로 나와 있는 전통식 숙소인데, 지금껏 이렇게 맘에 드는 '집'은 처음 보았다.
메크네스는 물레이 이스마일이라는 왕 시절, 18세기에 한때나마 모로코의 수도였던 곳이다. 리아드 바히아는 그 때부터 대대손손 물려받으며 후손들이 300년간 곱게 가꿔온 집이다. 안마당은 반투명한 지붕을 씌워 볕이 들게 했고, 2층과 옥상의 방들을 객실로 쓰고 있다. 300년 동안 아끼고 다듬은 집은 어떤지를 보여주는 곳. 벽난로 위에는 가족사진이, 안뜰 한 쪽에 있는 식당에는 이 집안 누군가가 입었을 전통의상이 걸려 있다.
우리가 이틀간 머물 동굴 같은 옥상 방. 화장실 휴지걸이 하나, 옷걸이 하나 정성들이 않은 데가 없다. 아침 식사도 환상적이다. 그저 흔한 B&B 모텔의 아침식사처럼 보이는 빵과 커피와 잼 정도로 보였지만, 입에 넣는 순간 행복해졌다. 요니와 빵 한조각씩 입에 물고 마주보며 웃었다. 바게뜨는 보드랍고 버터는 살살 녹았다. 집에서 만든 과일 잼과 오렌지주스와 꿀은 또 어떻고.
비싸지만 이 집에서 저녁식사도 따로 돈 내고 한 끼 먹었는데 식사도 어찌나 정성스럽던지. 쇠고기 따진을 주문했더니, 채소 없이 정말 고기만 들어있는 따진이 나왔다. 요리가 나오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잡스런 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정성껏 다진 고기로 미트볼 만들어 옹기에 넣어 구운 귀한 음식이었다.
하룻밤 숙박비 8만원... '리아드'가 여기 전통 주택인데 서민용은 아니고 우리식으로 하자면 옛날 기와집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름에 ‘리아드’가 들어가 있는 숙소는 중급호텔이나 호스텔보다 살짝 윗급. 지붕 씌운 안마당에 빙 둘러 방 있는 구조다.
나중에 집 주인 부부와 잠시 수다를 떨었는데, 집 자랑이 줄줄 나온다. 17세기에 지어졌으니 400년 됐다고. 자부심 느낄만하다. 아저씨네가 몇 달 전 베트남 여행을 했다는데, 우리 모녀 석달 전 베트남 여행 코스와 똑같아서 "같은 패키지였나보다" 하면서 웃었다. 론리플래닛을 다시 펼쳐 보니 이 집 주인 아저씨네가 여행을 좋아해서 손님들과 여행 경험담 나누는 것 좋아한다고 친절하게 쓰여 있다.
론리플래닛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 접했는데 정말이지 가이드북의 최고봉!!!
실은 이날 호텔에서 나와 광장에서 택시를 타고 볼루빌리스 Volubilis 라는 고대 로마 유적지에도 갔는데....
날씨도 별로 안 좋았고, 내 컨디션은 엉망진창이었고, 사진도 영 뭣같이;; 나왔다...
볼루빌리스에 갈 때에는, 쁘띠택시 타고가는데 바가지 옴팡 써서(그나마도 말 바꾸는 택시기사와 싸워서 깎은 거였다) 100디르함. 유적 입장료 10디르함. 가이드 150디르함. 가이드 비용은 론리플래닛 기준으로 합리적인 가격대, 그리고 가이드 압둘 또한 론리플래닛에 써있는대로 "상당한 지식과 영어실력을 갖춘" 재미난 아저씨였다.
요니 왈 “왜 로마 유적은 다 망가져 있어요?”
하지만 압둘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들은... 아니 사진을 어떻게 찍으면 건물이고 사람이고 꾸불꾸불하게 만들 수가 있는 거지?
볼루빌리스에서 이웃한 물레이 이드리스까지, 걸어서 한 시간 거리... 볼루빌리스 유적 앞에는 택시가 없어서 걷기 시작했는데 걷다보니... 계속 걸었다.
볼루빌리스의 로마 유적
물레이 이드리스 인접해서 히치하이킹을 했는데, 정작 물레이 이드리스에서는 별로 볼 것이 없었음. 걍 쪼끔 헤매다가 20디르함 주고 택시 합승해서(1인당 10디르함씩, 공정하다) 싸게 메크네스로 돌아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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