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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엄마, 노는 딸] 마법의 도시 탕헤르, 여행의 끝

딸기21 2013. 12. 1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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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크네스에서 기차타고 어제 탕헤르로. 메디나 안쪽의 마모라 호텔에 둥지를 틀었다. 저녁에 도착해서 바로 침대 속으로 들어갔고, 꼬박 하루를 탕헤르에서 보내고, 다음날은 다시 지브롤터를 건너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일정. 그러니 실상 탕헤르에서 온전히 보낸 날은 하루일 뿐이지만 ‘탕헤르에서의 하루’는 제법 괜찮았다.

 


사실상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날인 그 하루, 아침은 조그만 광장 부근에 있는 카페에서 해결. 이 카페가 있는 건물의 이름은 ‘시네마떼끄’다. 영화를 사랑하고 프랑스 영화를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말에서 묘한 울림을 느낄 수도 있겠다. 프랑스 식민통치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이라고 하는데, 내게는 그저 ‘멍청한 점원 녀석이 힘겹게 주문 받더니 달랑 크루아상 한 개 가져다준 곳’이었을 뿐. 빵이 더 없다나.

 


탕헤르에서도 숙소 운은 좋았다. 마모라 호텔. 론리플래닛에 “잘 하면 39호실처럼 미나레트와 초록지붕이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을 얻을 수도 있다”고 나와 있는 바로 그 39호실을 얻었다. 메크네스의 아름다운 집 리아드 바히아에 머물다 온 우리에겐 당분간 어떤 숙소도 성이 차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전망이라면!

새벽부터 숙소 옆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무에진의 '알라후 아크바르'가 잠을 깨웠지만, 요니는 그것도 좋단다.



탕헤르 구시가지, 알 카스바(성채)에서 바닷가까지 이어진 골목들. 지저분한 이 골목에서는 뜻밖에도 섬세하고 예쁜 구석들을 만날 수 있다. 이슬람식 성채를 지나 지중해식 하얀 집들이 늘어선 골목, 허름하지만 깨끗하게 가꾸고 산다는 느낌도 들고. 



여기가 어딘가, 탕헤르 아닌가! 스페인식으로는 탕헤르, 프랑스식으로는 땅제, 현지 주민들이 부르는 이름은 ‘탄자 Tanja’, 여러 이름만큼 여러 얼굴을 가진 곳. 한때 수십 개 국가가 ‘조계’를 만들어 점령했다는(심지어 머나먼 미국까지도 이곳에 조계를 두고 있었다) 식민주의의 처절한 유산, 1956년에야 모로코로 ‘반환’된 곳,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잇는 다리, 베르베르와 유럽과 이슬람의 만남이 골목마다 새겨져 있는 곳, 미셸 투르니에가 ‘마법의 도시’라고 했던 탕헤르.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저녁. 궂었던 날씨도 마침 개어주고. 유럽과 가깝고 유럽 관광객들이 많고 관광산업 외에 다른 벌이가 없다보니, 물가가 비싸고 삐끼 천지다. 삐끼가 많네... 라고 했더니 요니가 그게 뭐냐고 물어서 ‘호객꾼’이라는 순화된 용어를 가르쳐줬다.



그런 호객꾼 중의 한 명이 식당을 소개해줬는데, 이곳에서 머문 이틀간 점심 저녁은 거기서 해결했다.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하는 날 식당에 갔더니 마침 축구경기가 TV로 중계되고 있었고, 박주영이 나왔다! 주인 아저씨가 박주영을 일본 사람으로 잘못 알고 있기에 고쳐줬다.



그렇게 우리의 모로코 여행은 끝이 났다. 다시 배를 타고 지브롤터를 건너 스페인의 알헤시라스에 내렸고, 버스터미널 주변을 배회하며 시간을 죽이다가 야간버스를 타고 마드리드로. 


마드리드에 새벽에 떨어지니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푸에르타 델 솔 부근 골목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짐 풀고 한 잠 자고 일어나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모처럼 가게에서 한국 라면을 샀는데 그날 묵은 게스트하우스는 취사 금지라고 해서... 흑흑...



기억에 촘촘히 박힌 내 인생의 한 달, 요니와 함께 보낸 스페인-모로코 여행. 


되돌아보면 어느 한 장면 즐겁지 않은 것이 없었다. 상상하기 좋아하는 꼬맹이는 낯선 곳 낯선 음식과 골목들을 즐길 줄 아는 사랑스런 소녀가 됐고, 나는 '내 인생 이만하면 제법 괜찮지 않은가' 하며 달랑 배낭 2개로 버틴 그 시간들을 마음에 새겼다. 


여행을 다녀온 지 벌써 1년이 넘었고, 나는 서울에 와서 직장으로 돌아갔고, 요니는 학교로 돌아갔다. 하지만 노는 엄마, 노는 딸은 ‘중세의 골목’과 알바이신 언덕과 지중해와 사하라의 언덕과 ‘마법의 도시’를 거닐었던 기억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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