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우크라이나, '제2의 오렌지혁명'으로 가나

딸기21 2013. 12. 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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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오렌지혁명’으로 가는 것일까요. 

어제에 이어, 우크라이나 소식입니다.


‘유로마이단(유럽) 시위’라 불리는 우크라이나의 반정부 시위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유럽과 러시아 중 어느쪽과 무역협정을 맺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촉발됐지만 그 속에는 유럽과 러시아로 대변되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가치에 대한 모든 고민이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수도 키예프에서 1일 정오부터 다시 재개된 반정부 집회와 대규모 행진에는 35만명이 운집했으며, 일부 시위대가 불도저를 동원해 대통령 관저 주변의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렸다고 키예프포스트 등이 전했습니다. 시위대는 경찰과 투석전을 벌여 부상자가 속출했고, 이 과정에서 뉴욕타임스와 AFP통신 기자들을 비롯해 취재진 30여명도 다쳤다고 합니다. (흑흑 다치고 싶지는 않지만 저도 이런 현장에 가보고 싶어요 ㅠㅠ)

키예프포스트/ Lenin clashes


시위대가 시청을 점거했으며 시내 곳곳 광장에 설치된 레닌 동상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크라이나에는 여러 곳에 지금도 레닌 동상들이 남아 있다고 하네요. 뒤늦게 수난을 겪는 레닌의 동상들... 


최대 야당인 ‘아버지조국당’은 시위에 50만명이 참여했다고 추산했고, 일각에서는 행진 참가자가 70만명이라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어디서나 집회 참가자 숫자는 고무줄.... 뭐 아무튼 '수십만명'이 거리로 나온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시위대의 주요 공격목표는 대통령 관저와 ‘베크루트(내무부)’였습니다. 베크루트는 공식적으로는 내무부이지만 보안·정보를 총괄하며 시민들을 탄압하는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대규모 시위의 도화선이 된 지난달 30일의 시위 무력진압을 내무부 산하 경찰이 독자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고요. 성난 군중들은 1일 저녁 베크루트 청사를 공격했고, 곳곳에서 경찰과 대치했습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곧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야당지도자 유리 루첸코는 “이제 이것은 집회도 시위도 아닌 혁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야권은 야누코비치가 퇴진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 선언했습니다.


시위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습니다. 


-지난달 22일 첫 시위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키예프에 모인 시민은 2000명에 불과했지만 

-그 이틀 뒤 네잘레즈노스티(독립)광장 집회에는 10만명이 모였습니다. 

-카르키프, 도네츠크, 르비프 등 대도시들로 시위가 퍼져나갔습니다. 

-25일에는 권한남용 혐의로 수감중인 야당지도자 율리아 티모셴코 전총리가 옥중 단식투쟁을 시작했습니다. 

-30일 시위 무력진압은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정부가 유럽 대신 러시아와의 관세동맹을 택하기로 한 것이지만, 시민들이 외치는 ‘유럽’이라는 구호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인권 등 정치·사회적 가치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러시아연방으로부터 독립한 뒤에도 10년 이상 레오니드 쿠치마 전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를 겪었습니다. 2004년 대선 부정선거로 오렌지혁명이 일어났으나, 승리한 혁명의 과실을 차지하려는 혁명 주역들 간의 권력다툼이 곧이어 벌어졌습니다. 


2010년 대선에서 이겨 집권한 야누코비치는 2004년 부정선거로 승리했다가 혁명에 밀려난 바로 그 인물이었습니다. 정치상황이 혁명 이전으로 사실상 회귀한 것이었습니다. 야누코비치는 오렌지혁명을 이끈 티모셴코 등 야당 지도자들을 잇달아 투옥했습니다. 이런 정치상황에 대한 반발이 유럽 희구심리로 표현된 셈입니다.

 

정치적 자유 외에 경제적 동인도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인구 4500만명으로 옛소련에서 갈라져나온 나라들 중 러시아 다음의 대국이지만 독립 뒤 경제적 개혁에 실패했습니다. 이 때문에 여전히 농산물과 원자재 수출국으로 남아 있고, 에너지분야에서는 러시아 의존도가 절대적입니다. 


2008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64억달러 규모의 차관을 받기로 했으나 민영화 등 ‘구조개혁’ 이행률이 15%에 그쳐 무산됐습니다. 야누코비치가 집권한 뒤 IMF와 다시 협상해 151억달러를 받기로 합의했지만 개혁이 지지부진해 역시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율은 0.2%로 개도국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낮았습니다. 1인당 GDP(구매력기준)는 7500달러로 몇년째 정체돼 있고, 인구 5분의1이 빈곤선 이하인 동유럽의 빈국으로 전락했습니다. 공식 실업률은 9%이지만 청년층 실업률은 그 몇배로 추정됩니다. 이 젊은이들은 러시아가 결코 제공해줄 수없는 유럽이라는 자유롭고 큰 시장을 원하고 있는 겁니다.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유럽)’ 시위


ㆍ발단과 배경

-정부가 유럽연합과의 무역협정을 포기한 것에 대한 반발

-독립 뒤에도 계속되는 러시아의 압력과 패권주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의 야당지도자 탄압 등 권위적 통치

-경제침체와 실업난, 경제개혁 실패와 정부의 부패


주요 참가세력

-아버지조국당 등 야당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대학생들


주요 야당 지도자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53·2011년부터 수감 중)

-유리 루첸코 전 내무장관(49) 

-아르세니 야체뉴크 전 외교장관·전 국회의장(39)

-페트로 포로셴코 전 외교·경제무역장관(49)


정치·경제적 실패를 바탕에 깔고 있는 이번 사태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에는 예측이 엇갈립니다. 러시아 모스크바타임스는 “2004년의 정권과 달리 야누코비치는 기반이 탄탄하다”고 보도했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시위가 ‘소셜미디어에 기반을 둔 자연발생적 청년시위’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안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우크라이나 르비프대 역사학자 야로슬라프 흐리차크는 키예프포스트 인터뷰에서 “2004년 혁명 때에는 야권 정치인들이 주축이었지만 이번 시위는 독립 무렵에 태어난 젊은이들이 주축이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진단했습니다. 모바일 기기에 익숙하고, 대학 수준의 고학력자들이 대부분인 젊은층이 주요 참가자들인 탓에 폭발력은 있지만 조직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야당 인사들 중 핵심인 티모셴코는 감옥에 있고, 나머지 인사들은 구심력이 약합니다. 집권 ‘지역당’(집권당 이름이 지역당이라니;;)의 볼로디미 리바크 국회의장은 야누코비치의 권력을 다소 제한하는 선에서 상황을 잠재우기 위한 야권과의 협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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