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유럽이냐, 러시아냐... 기로에 선 우크라이나

딸기21 2013. 12. 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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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성미하일 ‘황금돔’ 수도원은 12세기 초반 지어진 유서깊은 건물로, 옛 소련 시절 파괴됐다가 1991년 독립 뒤 재건됐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이 수도원은 지난달 30일 인근 독립 광장에서 반정부 집회를 하던 시위대를 경찰이 강제해산한 후 시위대의 피난처로 변했습니다.

 

10여명의 부상자를 낸 무력진압은 시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정부가 일주일간의 시위 금지령을 내렸으나 1일 정오부터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퇴진 요구 시위가 다시 시작됐고 10만명이 운집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민족 시인의 이름을 딴 셰브첸코 광장(저는 '셰브첸코'라고 하면 축구선수밖에 모르는데... ;;) 등지에서는 시위대가 “야누코비치를 감옥으로 보내라”고 외치며 행진했습니다. 



키예프포스트 라이브 업데이트



키예프포스트는 이날 오후 대통령 집무실 부근에서 불이 나 연기가 치솟았으며 경찰 특수부대가 대거 투입됐고 부상자들이 속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1일은 1991년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된 날이기도 해, 시위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시위대의 온라인 공격으로 정부 웹사이트들은 대부분 마비됐습니다. 이날 행진에는 유럽 외교관들도 대거 참가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당국의 시위 진압을 일제히 비난했습니다.


이번 시위는 2004년의 민주화투쟁(오렌지혁명)을 이끈 야권 인사들과 대학생 등 젊은이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유로마이단 시위’라 이름붙은 이번 시위는 지난달 21일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럽연합과 협력협정을 맺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유로마이단(euromaidan)'은 현지어로 '유럽'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인구 4500만명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제외하면 동유럽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거대 시장입니다. 협정이 체결됐다면 유럽연합과 우크라이나 간 관세의 95%가 철폐됐을 것이고, 양측 간 사람과 자본과 물품의 왕래가 거의 대부분 자유화됐을 겁니다. 유럽연합은 이 협정을 위해 6년간 공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압박에 밀린 우크라이나는 막바지에 결국 등을 돌렸습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지난달 28~29일 열린 유럽-동방협력회의에서 우크라이나를 설득하려고 유럽측이 애를 썼지만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지도를 보면 대략 답이 나옵니다. 이런 형국이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순순히 놓아주려고 할 리는 없겠죠. 


이 협상의 실패, 그리고 그 후폭풍으로 벌어진 키예프의 시위는 ‘유럽이냐 러시아냐’ 사이에 놓인 우크라이나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유화를 원하며 ‘서유럽화’를 꿈꾸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러시아의 그늘을 벗어나기 힘든 처지입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대러시아 수출액은 170억달러, 유럽으로의 수출액은 160억달러로 비슷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더 큰 시장인 유럽을 원하지만 에너지는 러시아에서 들여와야 합니다.

 

러시아투데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2015년7월 600억달러 규모의 부채 상환시한을 맞습니다. 우크라이나가 가장 빚을 많이 지고 있는 상대는 어디일까요? 물론 러시아입니다. 


러시아 국영은행들이 갖고 있는 우크라이나 채권 규모가 200억달러에 이릅니다. 이 채권은 아마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수단의 하나가 됐겠지요.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 떨어져나온 소국 몰도바가 유럽과 친해지려 하자, 러시아는 최근 몰도바의 최대 수출품목인 와인의 러시아 반입을 막았다고 합니다. 그 작은 나라에는 어마어마한 압박이 됐고, 러시아는 몰도바의 목을 틀어쥐었습니다. 몰도바는 그래도 유럽 쪽에 붙는 편을 택하긴 했지만... )


유럽연합은 “협력협정을 맺으면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발생할 10억유로 규모의 손실을 보전해주겠다”는 제안까지 했지만, 러시아의 압박에 못이긴 우크라이나는 유럽 대신 러시아와 관세동맹을 맺는 길을 택했다고 합니다. 영국 가디언은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사석 대화’에서 “모스크바와의 문제로 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고 전했습니다. 


유럽과 러시아 사이, 우크라이나의 움직임


1991년 러시아연방으로부터 독립

1994년 선거를 거쳐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 집권

1997년 러시아와 우호조약·흑해함대주둔조약 체결

2001년 우크라이나 공군, 흑해에서 러시아 민항기 오폭

200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신청

2004년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선 승리, 야당·서방권 ‘부정선거’ 주장

          재선거에서 빅토르 유셴코 승리(‘오렌지혁명’)

2006년 러시아, 가격 인상 요구하며 가스공급 중단

2009년 러시아, 가스공급 다시 중단했다가 재계약

2010년 미국과의 협상으로 옛소련 핵무기 해체 합의

2013년 유럽연합과의 협력협정 포기, 반정부·반러시아 시위


우크라이나는 1000년간 러시아 영향력 아래 있었고, 지금은 군사적·경제적으로 더욱 더 놓칠 수 없는 땅이 됐습니다. 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의 수출기지이자 군사기지이기 때문입니다.이미 옛 동구권 국가들은 대부분 유럽연합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했습니다. 우크라이나마저 ‘서유럽화’하면 러시아는 유럽과의 사이에 완충지대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가 유럽으로 향하려 할 때마다 러시아는 강력한 보복조치로 되돌려놨습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끊임없이 러시아의 패권에 저항하면서 줄타기를 해왔습니다. 오렌지혁명의 주역인 빅토르 유셴코-율리아 티모셴코 연립정권이 서방 쪽으로 기울자 러시아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잠그며 우크라이나 길들이기에 나섰습니다.

2010년 2월 집권한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했습니다. 집권 두달 뒤 러시아 해군에 세바스토폴 기지 임대계약을 25년 연장해줬고, 이어 국영 에너지회사 나프토가스와 러시아 가스프롬의 ‘부분적 합병’을 승인했습니다. 그랬던 야누코비치가 유럽과 협정을 맺으려 하자 푸틴은 “유럽의 속임수”라며 맹비난했습니다. BBC방송 등은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안마당인 캅카스까지 서유럽에 내주게 될것이라는 위기감이 크렘린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1일 키예프의 시위에는 유럽연합 외교관들도 대거 참가했습니다.
사진 맨 앞에 보이는 동글동글한 사람은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전대통령의 쌍둥이 형이자
유력 정치인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로군요. 사진/키예프포스트



야누코비치가 또다시 러시아 편에 서자 야권지도자 아르세니 야체뉴크는 “더이상 이곳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다”라면서 인근 벨라루스같은 독재국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내무장관을 지낸 유리 루첸코와 부패 혐의로 수감중인 티모셴코 전 총리도 국민들의 궐기를 호소했다. 키예프포스트는 “유럽으로의 길목에서 우크라이나는 다시 중세로 회귀했다”고 썼습니다. 

(하필이면 야누코비치는 2004년 오렌지혁명의 시발점이 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던 인물입니다. 당시 티모센코와 빅토르 루셴코 등이 부정선거 항의시위를 주도하고 여당 후보로 나섰던 야누코비치의 승리를 무효화했지요. 이어 치러진 선거에서 루셴코가 이겨서 대통령이 되고, 티모셴코는 총리가 됐는데 나중엔 또 루셴코와 티모셴코가 주구장창 싸워 난장판이 되곤 했던 것이 우크라이나의 최근 정치사... )

궁지에 몰린 야누코비치는 1일 한발 물러서 긴급 성명을 내고 “EU와 협정을 맺기 위해 다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으나, 이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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