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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자들을 막아라? 유럽의 '루마니아 딜레마'

딸기21 2013. 11. 2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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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 루마니아 노동자들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유럽이 ‘루마니아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내년부터 루마니아·불가리아 이주자들의 영국 내 이주와 취업을 강력 제한하는 ‘반이민 패키지’를 27일 발표했습니다. 


EU migrants: David Cameron sets out more benefit restrictions /가디언


연원을 따지자면, 몇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2007년 유럽연합(EU)에 가입했습니다. 영국 등 8개 유럽연합 회원국은 두 나라 노동자들이 밀려오는 걸 막기 위해 저숙련 노동자들의 이주와 취업·복지에 제한을 둬왔는데, 이 제한조치가 모두 내년 1월1일부터 해제됩니다. 동유럽 이주자들이 몰려올 것이란 두려움이 커지자 캐머런 정부는 내년 이후에도 이주노동자들을 규제하기 위해 새로운 제재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캐머런의 패키지에 다르면 영국 정부는 내년부터 ‘유럽연합 내에서 오는 노동자들’에게 입국 뒤 석달 동안은 실업수당과 주택수당을 주지 않습니다. 이들이 거리에서 노숙을 하거나 구걸을 하다 적발되면 출신지로 추방하고 1년간 다시 못 들어오게 합니다. 정부는 기업들의 최저임금 위반도 강력 제재하기로 했습니다. 최저임금보다도 싸게 받으며 일하는 외국 노동자들의 채용을 막겠다는 것이겠지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프랑스·독일·벨기에·오스트리아·네덜란드 등도 내년 1월부터 비슷한 제재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루마니아의 아름다운 농촌. 세상이 다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사진 opentravel.com



이들 서유럽 부국들의 제재 대상은 주로 루마니아인들입니다. 불가리아는 인구가 700만명을 밑돌고 연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4500달러(구매력기준)입니다. 반면 루마니아는 1인당 소득은 더 낮으면서(큰 차이는 없고 1만3000달러 수준입니다) 인구가 2200만명에 이릅니다. 지난 5월 영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영국 내 루마니아 노동자는 8만명, 불가리아인은 2만6000명이었습니다. 

 

루마니아 이주노동자 문제는 이미 이 나라가 유럽연합에 들어갈 때부터 예상됐던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마니아를 받아들여 줬고, 그 동안 서유럽 역시 루마니아를 필요로 해왔습니다.


유럽연합은 2000년대 들어 동유럽국가들을 가입시키며 ‘동진’을 계속했으며 유럽과 미국의 방위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도 동쪽으로 팽창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루마니아같은 나라는 서유럽의 저임금 노동력 공급처이자, 서유럽국들이 회피하는 나토의 군사시설을 두는 기지가 돼왔습니다. 나토 미사일기지가 지난 7월 루마니아에 설치돼 러시아가 반발한 일도 있었고요.

 

그런데도 영국인들(그리고 프랑스 독일 등의 부자나라 유럽인들)은 루마니아가 복지를 갉아먹는다고 주장합니다. 이주노동자들, 이주자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 하는 주장은 1. 일자리를 그들이 빼앗아간다(사실은 그들이 노예노동에 가까운 저임금 노동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2. 복지를 갉아먹는다(사실은 그들에게 엄청 차별적으로 복지예산을 쥐꼬리만큼 할당해줄 뿐이면서) 3. 범죄를 저지르고 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성매매를 한다(그들에게 교육기회를 주지 않고, 그들의 성을 매수하면서)는 것이죠. 특히 루마니아계에 대한 인식은 2번과 3번에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 


꼭 이런 단체들 있지요. 한국에도...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정부는 영국 등의 조치가 유럽연합 회원국인 자신들을 유독 차별하는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영국 BBC방송은 “특히 루마니아 출신 이주자들은 거리의 노숙자나 범죄자들로 줄곧 묘사되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유럽 주요국들의 규제 방침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진보적인 이들은 캐머런의 '패키지'가 지나치다고 비판하는 반면, 극우파들은 '그 정도로는 안 된다'며 더 가혹하게 하라고 다그칩니다. 


그런가 하면, 이주자를 제한하는 게 가능할 지, 이런다고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물음표는 다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돈은 다 옮겨다니게 해놓고 사람은 못 옮겨다니게 하는 것이니까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세계화와 '반이민의 물결'이 다 그렇지마는.... 


영국의 이주자 규제 방침에 유럽연합이 "유럽통합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반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습니다. 유럽연합 법무담당 집행위원인 비비안 레딩은 "이주의 자유는 유럽 단일시장의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 상품, 서비스, 자본 네 가지의 이동의 자유는 단일시장의 토대"라는 것이죠. 사람들이 오가는 게 싫다면 글로벌화 자체에 반대하고, 단일시장에도 반대를 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물론 영국 우파들 중에는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실제로 적지 않다고 합니다만... ㅎㅎ


영국 가디언은 캐머런 총리가 이주자들을 막기 위해 ‘저글링’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루마니아·불가리아 출신 노동자들은 영국 전체 노동력의 0.4%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텔레그래프 등 영국 상업지들은 “새 규제를 시행하지 않으면 루마니아인 70만명이 영국에 몰려올 것”이라며 반 이주자 감정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다른 유럽국 정부들이 이민을 막는 것도, 자국 내 극우파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오들오들의 옛날 글] 유럽, 두 마을 이야기


가디언은 영국 내 이주노동자는 오히려 인도계가 훨씬 많다며 “인도계냐 동유럽계냐, 캐머런은 지금 이주자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유럽국들은 루마니아같은 가난한 회원국 때문에 역내 복지비용이 올라간다고 주장하지만, 루마니아 ‘인사이더’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연합의 자금지원을 많이 받은 나라들은 폴란드·스페인·프랑스 등 경제위기를 맞은 덩치 큰 나라들이었고 루마니아는 12번째에 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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