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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를 빌미로 미국 정보기관들은 어떻게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었나

딸기21 2013. 11. 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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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32㎞ 떨어진 메릴랜드주 포트미드. 이곳 ‘295사우스 도로’에는 ‘국가안보국(NSA) 직원들만 출입 허용’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무소불위의 정보권력을 누려온 국가안보국이 있는 곳이다. 140㏊의 부지 안에는 검문소와 경비초소만 100개가 넘게 설치돼 있다. 

 

1950년대 워싱턴 해군기지 내 암호해독센터에서 출발한 국가안보국은 1960년대 초 포트미드로 이전했다. 저널리스트 제임스 뱀포드가 국가안보국을 추적한 저서 <비밀의 몸통(Body of Secrets)>에서 “검은 유리로 된 루빅스큐브”라 묘사한 위압적인 외양의 본부 건물은 1963년에 지어졌다. 2007년 볼티모어선은 국가안보국 본부가 전력을 너무 많이 써서 곧 에너지난을 맞을 것이라 보도했고, 실제로 2011년 메릴랜드주 최대 전력 소비자임이 확인됐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국가안보국이 막대한 전기를 써가며 무슨 일을 해왔는지 폭로하기 한 달 전인 지난 5월, 이 기관은 포트미드의 한편에 ‘고성능컴퓨팅센터2’ 건물 착공식을 했다. 150㎿의 발전시설이 딸린 이 건물은 2016년 완성될 예정이다. 이 건물뿐만이 아니다. 스노든 파문으로 궁지에 몰린 뒤에도 ‘조용히’ 유타주의 캠프 윌리엄스에 국립사이버안보이니셔티브(CNCI) 데이터센터를 완공했다. 


지난해 3월 미국 잡지 와이어드는 “국가안보국이 유타주에 미국 최대의 스파이 센터를 짓고 있다”고 폭로했지만 키스 알렉산더 국가안보국 국장은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알렉산더 국장의 말은 결국 거짓으로 드러났다. 막대한 양의 미국인 통신감청 정보를 쌓아두기 위한 이 센터 건설에 15억달러가 들어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2001년 9·11테러 두 달 뒤, 미국은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잡겠다며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하지만 미국을 비웃듯 빈 라덴은 잡히지 않았고, 탈레반 지도자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도 번번이 건재를 과시했다.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의 정보망이 무너졌다는 진단이 쏟아져 나왔다.

 

2013년 6월, 미국이 10여년간 구축한 대테러 정보망의 실체가 공개됐다. 에드워드 스노든이라는 내부고발자를 통해 미국 정보기관이 구축해놓은 글로벌 감시체제의 윤곽이 일부나마 드러난 것이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미국의 국가기관이 잠재적 적으로 여기고 첩보수집 대상으로 삼은 것은 빈 라덴과 알카에다 테러범뿐만이 아닌 ‘이 세상 모두’였다. 자국민과 남의 나라 국민, 불특정 다수가 테러 감시라는 명목으로 미국 정보기관의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 프리즘, 엑스키스코어, 템포라 등 낯선 프로그램 이름들이 공개됐다. 감시 대상은 전 지구적이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는 이름으로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서방국가들도 감시망을 피해갈 수 없었다.

 




미국에서 대량 정보수집이 시작된 것은 2차 세계대전 때인 1940년대였다. 미국 대외 정보협력의 시초는 1946년 영국과 비밀리에 체결한 ‘영·미 통신정보협정’(BRUSA)이다. 두 나라 정보기구가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 정보를 수집, 공유한다는 것이 이 협정의 골자였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이미 미국은 자국 내 전화통화를 감청, 데이터를 수집하는 샴록(SHAMROCK)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당시 웨스턴유니언, RCA글로벌, ITT월드커뮤니케이션스 같은 통신 대기업들이 정부를 도와 시민 감시의 도구가 돼줬다.

 

국가안보국이 설립된 것은 1952년이다. 합동참모본부 산하에 1949년 무력안보국(AFSA)이 만들어져 정보 수집·분석을 맡았으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이 기구를 해체하고 새로운 정보기관인 국가안보국 창설을 지시했다. 국방부 정보국(DIA)과 중앙정보국(CIA)이 기본적으로 외국인들의 첩보활동을 적발해내기 위한 기구로, 휴민트(HUMINT·사람을 통한 정보활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국가안보국은 사람이 아닌 ‘정보’ 그 자체를 수집해 축적·분석하는 시긴트(SIGINT)를 위한 기구다.

 

정보수집이 지구적인 차원으로 확대된 것은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에셜론’ 프로그램이 가동되면서였다. 1988년 영국 잡지 뉴스테이츠맨이 에셜론의 존재를 폭로했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많이 끌지는 못했다. 이 프로그램은 영어권 5개국, 즉 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 간의 정보 공유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었고, 주 타깃은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었다. 냉전이 끝난 1990년대에 에셜론은 위성통신과 인터넷을 파고들어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로 확대됐다. 


이때도 ‘국가안보’는 외피였을 뿐이다. 국가안보국은 ‘미나레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를 감시했고, 영국 대외정보국(MI6)은 흑인투사 넬슨 만델라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해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정권에 알렸다. 국가안보국은 영국 다이애나비가 사고로 숨지기 직전까지 다이애나의 통화 내역을 감시해 영국 측에 건넨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국가안보국의 권력이 지금처럼 커진 것은 9·11 이후였다. 원래 이 기구의 미국 내 정보수집은 엄격히 제한돼 있었으나 조지 W 부시 정권은 자국민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시민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허용한 애국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미국보호법’(PAA)이라는 이름의 법을 만들어 국내외 정보수집 활동 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국가안보국의 정보수집 범위가 너무 넓고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은 이미 2000년대부터 터져나왔다. 2005년 법무부 관리였던 토머스 탬이 스텔라윈드(STELLARWIND)라는 시민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했고, 이듬해 1월1일 뉴욕타임스는 “부시는 미국이 법원 허가 없이 전화를 도청하게 만들었다”며 광범위한 도·감청을 고발하는 기사를 실었다.

 

2006년 8월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국가안보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은 이 기구의 도청이 불법이며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부시는 “미국을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제한적인 프로그램”이라고 주장했다. 이 변명은 지난 6월 스노든의 폭로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에서 그대로 되풀이됐다.


지난해 존 잉글리스 국가안보국 부국장은 고용된 직원 수를 묻는 질문에 “3만7000명에서 10억명 사이”라는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스노든의 폭로는 이것이 농담이 아님을 보여줬다. 포트미드 등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 수는 3만7000~4만명 규모이지만, 그들은 지구상의 모든 통신에 접근하며 무제한 도·감청을 하고 있었다. 

 

이런 정보수집을 위한 예산은 대테러전과 함께 부풀어올랐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8월 스노든 파일에 들어있던 178쪽의 예산보고서를 분석해 정보 수집·감시에 들어가는 미 정부의 ‘검은 예산’(Black Budget)’이 연간 526억달러(약 75조400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CIA 예산은 올 회계연도에 147억달러로, 2004년에 비해 56% 늘었다. 국가안보국의 올해 예산은 108억달러로, 같은 기간 53% 증액됐다. 인적자원·정찰무기 등을 활용하는 CIA의 경우 정보수집 비용이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한 반면, 국가안보국은 정보 분석과 시설·장비 운영에 예산의 3분의 2를 썼다. 미 정부가 부채를 줄이겠다며 복지예산을 없애는 동안에도 정보기구들이 쓰는 돈은 계속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NSA 도청 후폭풍 ‘국가의 시민감시’] 불법 알린 내부고발자들


NSA 조직은 어떻게 방대해졌나


에드워드 스노든이 공개한 파일 중에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조직구조와 예산 등에 관한 것들도 들어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가디언 등이 폭로한 내용을 보면 1990년대까지 이 기구는 운영국, 기술국, 정보보안국 등 5개 부문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테러와의 전쟁’을 거치며 10여년 새 구조가 세분화되고 기능은 방대해졌다. 

 

국가안보국 안에는 알파벳 글자들로 불리는 여러 국(directorate)이 있다. 여러 외국 시설들에서 정보를 수집한 사실이 드러난 특별수집서비스(SCS)의 경우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 내 F국이 운영한다. G국은 정찰기들이 수집해오는 정보를 취합하며, 정보확인국(IAD)이라고도 불리는 I국은 각종 통신정보의 신뢰성을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J국은 암호정보를 해독하는 곳이다.

 

S국은 신호정보국(SID)으로 각종 신호정보를 취합·분석한다. S국 산하의 S2과는 지역별 정보를 관리한다. 예를 들어 S2A는 남아시아팀, S2B는 중국·한반도팀, S2E는 중동팀, S2H는 러시아팀, S2F는 국제범죄정보 전담팀이다. 이 밖에 인적자원을 관리하는 M국, 기술분야를 담당하는 T국, 지원업무를 맡는 L국 등 여러 분야로 나뉘어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첫 해인 2000년 국가안보국은 신호정보국장과 정보확인국장, 기술국장 등이 참석하는 지도부 회의를 만들어 정보 총괄기능을 강화하게 했다. 이듬해에는 ‘대통령 특별정찰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24시간 운영되는 메타데이터분석센터(MAC)를 설치했다. 이 센터는 인터넷·전화 사용자의 기본적인 인적 정보(메타데이터)를 분석하는 곳이었다. 2004년에는 ‘향상된 분석분과’를 신호정보국 안에 별도로 뒀다. 


1990년부터 1995년 사이 미 정부는 한때 5만명에 이르던 국가안보국 인력과 예산을 3분의 1 감축했다. 하지만 2000년대의 10여년간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사실상 무제한 도·감청을 하면서, 국가안보국은 이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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