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의 산호섬 코코스... 다윈의 여행지가 '도청 기지'로

오늘자 호주의 시드니모닝헤럴드 보도입니다. 

Secret spy station on Cocos Islands 

호주 정보기관이 인도네시아 군 통신을 도청하기 위해 코코스 섬에 비밀 도·감청 설비를 만들었다는 내용입니다. 호주 국방신호국(Defence Signals Directorate·DSD)이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1100km 떨어진 호주령 코코스섬에 전파 감지장치와 위성 정보 수신기지 등을 설치, 인도네시아를 주타깃으로 몰래 정보수집을 했다는 것.

코코스 섬은 인도양에 있는 아주아주 작은 산호섬입니다. 몰디브 같은 섬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해수면 상승에 압박을 받고 있는 아름다운 섬.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이 해발 5m에 불과하고, 섬 자체도 아주 작아요. 산호섬 24개로 이뤄져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섬이라 해야 넓이가 6㎢에 불과합니다. 인구는 600명 정도. 그 중 500명은 말레이 계통 언어를 가진 원주민 후손들이고, 100명 가량은 서유럽 이주자 후손들이라고 합니다. 영국인 선장 윌리엄 킬링이 1609년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이 섬에 방문했기 때문에 한동안 킬링(Keeling) 섬이라고도 불렸다네요. 

그 후에도 200년에 걸쳐 간간이 영국인이 이 섬에 왔지만, 이 섬을 방문한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찰스 다윈입니다. 비글 호를 타고 1836년 이 섬에 들른 다윈은 환초의 생성과정을 연구했는데, 훗날 다윈이 낸 ‘산호초의 구조와 분포’라는 논문에 이 섬의 사례가 들어갔습니다. 다윈은 코코스 섬의 자연사를 연구하기 위해 표본들을 채집해갔다고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은 1857년 영국 제국은 스티븐 프리맨틀이 이끄는 함대를 보내 이 섬을 병합했습니다. 이 때부터 인도양의 외딴 산호섬도 ‘국제정치’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됩니다. 1차 대전 때인 1914년 11월에는 독일 함대와 호주 해군 간 ‘코코스 전투’라 알려진 해상 전투가 벌어졌고, 2차 대전 때에는 일본 전투기들이 이 섬을 폭격하기도 했습니다. 피해는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만... 

2차 대전 때 잠시 실론(현재의 스리랑카)의 지배를 받기도 했던 코코스는 1955년 호주에 귀속됩니다. 1984년 독립 여부를 놓고 주민들이 투표를 했는데, 그냥 호주에 남아있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호주 총독이 주재하긴 하지만 자치를 누리며 평화롭게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말 수상한 시설이 들어선 겁니다. 바로 앞서 언급한 호주의 스파이기지였던 거지요. 

시드니모닝헤럴드는 호주국립대학 정보 전문가인 데스 볼 교수를 인용, 캔버라에 있는 DSD 본부가 이 섬의 기지를 원격 운영해왔다고 보도했습니다. 호주 정부는 이 곳에 도·감청 설비를 설치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지 않고 있지만, 군 관계자들은 인도네시아 육·해·공군의 통신내용을 빼냈음을 인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코코스에서 도·감청을 하고, 캔버라에서는 암호를 해독했다는 거죠. 호주 공군 제3통신대가 이 스파이짓을 떠맡아왔다고 신문은 전했습니다.

앞서 페어팩스미디어 등 호주 언론들이 보도한 것입니다만, DSD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자국 대사관을 기지 삼아 전방위 정보수집을 했다고 합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31일 호주 대사를 불러 공식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호주의 행위는 ‘독자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2차 대전 때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영어 사용 5개국, 즉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개국은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라는 이름의 정보협력 체제로 묶여 있습니다. 이들은 1970년대 이후 이른바 ‘에셜론’을 통한 전세계적인 정보수집을 함께 했고, 얼마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까발겨진 미 국가안보국(NSA) 지구적인 스파이짓에도 적극 동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은 산호섬마저 첩보전의 무대로 만들어버린 호주... 지구상 어디에도 ‘낙원’은 존재할 수 없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