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과 베트남, 중국 남부 등을 강타한 태풍 ‘하이옌’은 통상적인 초강력 태풍보다도 훨씬 압도적인 위력을 보였다. 세계 기상관측 사상 가장 강력했던 이 태풍을 외신들은 ‘슈퍼태풍(supertyphoon)이라 부르고 있다. 무시무시한 태풍들만 추적하는 전문적인 ‘스톰체이서’조차도 “이런 위압적인 재난은 보지 못했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제임스 레이놀즈(30)는 8년 동안 아시아 지역에서 태풍이나 지진, 화산폭발 같은 자연재난을 찾아다닌 스톰체이서다. 2년여 전 동일본 대지진을 비롯해, ‘간담을 서늘케하는’ 수많은 재해 현장을 찾아가 화면에 담아 영상으로 만들어왔다. 하지만 목숨을 건 모험을 계속해온 그에게도 하이옌은 전에 없는 공포를 안겨줬다. 11일 AFP통신과 CNN방송 등에 스톰체이서 레이놀즈가 본 태풍 하이옌에 대한 인터뷰가 실렸다. 그는 “지옥보다 더 처참했다”며 “욜란다(하이옌의 필리핀 이름)는 내가 목격한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고 말했다.
재난 현장을 촬영해온 ‘스톰체이서’ 제임스 레이놀즈가 10일 유튜브에 올린
필리핀 레이테섬 타클로반 풍경. 유튜브 캡쳐
“과학자들인 이번 태풍이 지금껏 지상에 상륙한 최강의 태풍이 아니겠느냐고들 하는데, 35개 이상의 태풍을 현장에서 목격한 내 개인적인 견해로도 ‘가장 재앙적인 태풍’이었다.” 홍콩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레이놀즈는 태풍이 예보되자 두 명의 동료들과 함께 필리핀으로 갔다. 하이옌에 최악의 피해를 입은 중부 레이테 섬의 중심도시 타클로반에 캠프를 치고 태풍을 기다렸다. 수년 간 태풍을 쫓아다녀본 레이놀즈는 견고한 콘크리트로 지어진 호텔 두 곳을 예약해놨다. 태풍이 강해지고 홍수가 일어나도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 중 한 호텔의 객실 발코니에서 시속 315km로 돌진해오는 태풍을 찍었다. 다행히 건물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폭우 속에 한 시간을 버티다 보니 카메라가 고장났다. “귀가 먹을 것처럼 굉음이 진동했다. 그러더니 호텔 옆쪽을 무언가 거대한 물체가 들이받은 듯 건물이 흔들렸다. 그 순간 거리에 있었던 사람은 곧바로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순식간에 바닷물이 거리로 밀려들어왔다. 스톰체이서들이 구조대원으로 변신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레이놀즈와 동료들은 호텔 로비로 나이든 이들부터 피신시켰다. 객실까지 물이 들어찼다. 매트리스를 임시 뗏목처럼 타고 버텼다.
“다행히 우리 호텔은 괜찮았지만 다음날이 되자 호텔 밖에는 주검들이 널려있었다. 쓰나미같았다. 무너진 집들 잔해 사이에 죽은 이들이 끼어 있었다. 물건들을 꺼내려 애쓰는 사이에 집이 무너져 숨진 사람들로 보였다.” 그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물과 먹을 것과 약품을 찾아 헤매며 약탈을 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레이놀즈는 동료 한 명이 다리에 부상을 입는 바람에, 촬영을 중단하고 현장을 떠나야 했다. 앞으로도 계속 재난 현장을 찾아갈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포기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런 태풍이 들이닥치는 순간 뿐 아니라, 극도로 파괴적인 재난이 한 사회에 미치는 장기적인 영향을 계속 기록해나갈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고 AF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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