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필리핀 기자의 태풍피해 체험기 “내 가족들이 약탈을...”  

딸기21 2013. 11. 14.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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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아우들은 무사했다. 조카들도 무사했다. 안도의 눈물이 내 눈에서 흘러내렸다. 하지만 잠시 뒤, 내 가족들은 무너진 가게들을 뒤지며 ‘약탈’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들을 말리며, 무엇이라 설득한단 말인가.”

 

필리핀 주요 언론인 마닐라타임스의 로베르트손 라미레스 기자는 슈퍼태풍 하이옌으로 최악의 피해를 입은 타클로반 출신이다. 고향이 태풍에 강타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애타는 마음으로 집을 찾아간 라미레스 기자가 태풍 피해 체험기를 14일 이 신문 인터넷판에 올렸다.

 

라미레스의 기자의 집은 타클로반 공항 부근에 있다. 그는 “타클로반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9일 듣고서 미칠 것만 같았다. 내 가족은 괜찮을까, 목숨은 건졌을까. 전화는 터지지 않았고, 전력도 끊겼다고 들었다. 어떻게든 고향으로 달려가야 했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그는 일요일인 10일 군용기라도 얻어탈 수 있을까 해서 마닐라 외곽 파라냐크에 있는 비야모르 공군기지로 향했다. 민간 항공기 표를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00여명의 경찰 파견대와 몇몇 민간인들과 함께 C130 수송기에 올랐다. 밤 늦게 세부에 도착했지만 타클로반으로 가는 하늘길도, 뱃길도 모두 막혀 있었다. 평소엔 비행기와 페리가 다니지만 파도가 3m 높이로 치솟았다. 다음날 아침엔 운 좋게 군 수송기가 떴다. 타클로반의 다니엘 로무알데스 공항에 착륙해보니, 공항은 산산이 무너져 있었고 터미널은 바닷물에 쓸려나갔다. 

 

라미레스는 고향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집이 있는 바랑가이(마을)로 향했다. “가면서 세어본 것으로만, 길에 있는 주검이 100구가 넘었다. 혹시나 내 가족이 있을까 싶어 시신들을 주시하며 가야했다. 강해져야 한다고, 내 자신에게 거듭 되뇌었다.” 집에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었고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정신없이 폐허를 뒤지고 있는데 “식구들 모두 무사하다”는 외침이 들려왔다. 알고 지내던 마을 주민은 식구들이 이웃집에 가있다고 알려줬다. 이웃집으로 달려가 부모와 아우들, 조카들과 상봉하는 순간 안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가족들 앞에는 힘겨운 생존 투쟁이 놓여 있었다. 부모님은 라미레스에게 “아우들이 부서진 가게들을 돌며 약탈을 해왔다”고 했다. 주민들의 약탈을 비판하는 기사를 써야 할 처지인 기자 라미레스에겐 당황스런 순간이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약탈을 해서는 안된다고, 그러다가 체포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의 가족들 역시 외부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약탈을 하느니 굶으며 기다리는 게 낫다고 말하는 순간, 배고픔에 시달리는 어린 조카들의 얼굴이 보였다. 아우들이 왜 약탈을 하러 나갔는지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마 약탈에 가담할 수는 없어, 라미레스는 보건사회개발부와 지방정부의 배급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하며 집을 나섰다. 20km를 걸어서 타클로반 시청으로 갔다. 수백, 아니 수천명이 먹을 것을 배급받고자 줄을 서 있었다. 시청조차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빈 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낯익은 고향마을 이웃집이건만 어둠이 깔리자 개들이 짖고, 분위기가 흉흉했다. 바람에는 시신 썩는 죽음의 냄새가 실려왔다. 조카는 심장에 문제가 있어서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하는 처지였다. 

 

라미레스는 다시 군의 도움을 받아 가족들과 함께 마닐라로 왔다. 그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떠나기로 마음먹은 주민들은 타클로반이 있는 레이테섬을 벗어나 이웃한 사마르섬, 세부섬, 혹은 마닐라로 가기 위해 지금도 애타게 배편과 비행기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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