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인 메리나는 방글라데시의 여공이다.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 남서부 작은 마을 빌탈라 출신인 메리나는 열다섯 살 때 수도 다카로 와 6년 동안 의류공장에서 일했다. 하루에 14시간씩 일주일에 엿새씩 일하며 한 달에 40달러 남짓 벌었지만 그나마 이 공장이 메리나에게는 ‘신의 직장’이었다. 지난 4월24일, 공장이 입주해 있던 다카 외곽 사바르의 라나플라자 건물이 무너져내리기 전까지는.
메리나는 사고가 난 뒤 사흘 동안 무너진 건물 더미에 갇혀 시신 썩는 냄새를 견디며 암흑 속에서 버텼다. 세 자매가 한 건물 안의 공장에서 일했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모두 무사했다. 아직 앳된 얼굴의 메리나는 구조된 뒤 병원에서 부모 품에 안겨 “몸이 나으면 공장은 절대로 다시 가지 않을 것”이라며 울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의류공장 붕괴 현장에서 사흘 만에 구조된 메리나가 지난 4월27일
사바르의 한 병원에 입원해 가족들의 위로를 받고 있다. 사바르 | AP뉴시스
메리나가 그 후 정말로 공장에 가지 않았는지, 그래도 돈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다시 다른 공장을 찾아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메리나와 자매들은 운이 몹시 좋았다는 사실이다. 라나플라자 3층 구석에서 100시간 넘게 버텼던 샤히나는 구조작업 중 불이 난 탓에 두 살배기 아들을 두고 결국 사망했다. 샤히나의 아버지는 딸의 주검을 고향으로 옮겨 화장하고 하늘로 떠나보냈다. 그 건물이 무너지면서 숨진 사람은 공식 집계로 1129명. 당국이 사고 19일 만인 지난 5월13일 구조작업을 중단해 잔해에 깔린 시신들은 수습조차 하지 못했으니 목숨을 잃은 이들이 실제 몇 명이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마치 폼페이 화산폭발의 유적처럼 흙먼지에 뒤덮여 꼭 껴안고 숨진 채 발견된 남녀, 콘크리트 더미로 삐죽이 나와 있던 여공의 맨발, 딸을 찾아달라며 공장터 빈 벽에 사진을 붙이는 아버지, 아들이 행방불명됐다며 울부짖는 어머니의 모습은 세계의 양심을 건드렸다.
[2013 세계를 흔든 인물](1) 미 NSA 도청 폭로 스노든
‘사바르 참사’는 모두가 알면서도 외면해온 글로벌 경제의 맨 얼굴이었다. 라나플라자 벽에 금이 간 것을 알면서도 노동자들을 작업라인으로 밀어넣은 공장주들, 집권 여당과의 연줄을 이용해 부실공사와 불법 증축을 한 건물주, 해마다 50만명씩 다카로 밀려들어오는 농촌 출신 저임금 노동자들의 피땀에 기대어 외화를 벌면서도 노동조건은 나몰라라 한 정부, 하청을 맡긴 세계의 의류업체들, 그들이 파는 ‘패스트패션(유행에 민감한 저가 브랜드)’ 제품을 사 입던 소비자들 모두가 공범이었다.
사바르 참사 뒤 방글라데시 곳곳에서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당국은 건물주와 몇몇 공장주를 구속했다. 방글라데시 노동계와 정부, 의류공장 경영자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미국·영국·네덜란드·캐나다·독일 등의 의류업체와 소매체인들은 노동조건이 나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줄줄이 성명을 냈다.
하지만 정말 달라진 것일까. 피해자 가족들은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직도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다. 유족들은 영국 소매체인 프라이마크가 준 200달러씩을 손에 쥐었을 뿐이다. 누가 숨졌는지도 확인되지 않았으니 보상은 요원하다.
사바르 지역의 가난한 아이들은 쓸 만한 물건을 찾으려고 쓰레기장처럼 변한 라나플라자 터를 뒤지곤 한다. 다카트리뷴은 지난 15일 “아이들이 흙더미를 헤집다가 사망자 유골들을 찾아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직까지 200명 이상이 실종신고된 채로 남아 있고, 실종자 가족들은 유전자 감식 절차가 늦어지는 것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동료 여성을 황급히 들어 옮기고 있다. | 다카|AP연합뉴스
방글라데시 최저임금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 | 주간경향
‘RMG(ready-made garment)’라고 통칭되는 의류산업은 방글라데시의 주력산업이고, 월 급여를 100달러 수준으로 올려달라는 노동자들의 시위는 몇 달째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100달러는 너무 많다”며 이달부터 최저임금을 66달러로 인상한다는 방침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라나플라자 부근의 한 의류공장에서는 지난달 말 성난 노동자들이 폭도로 변해 불을 질렀다.
10만원 남짓한 월급을 손에 쥐어보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바람은 여전히 꿈으로 남아 있다.
'딸기가 보는 세상 > 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이번엔 “호화 장례식 하지마” (0) | 2013.12.20 |
---|---|
"인도 여성들은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 발리웃 스타 말리카 셰라와트의 열변 (0) | 2013.12.19 |
힘없는 동티모르 자원 빼앗으려 도청한 호주 (0) | 2013.12.05 |
필리핀 기자의 태풍피해 체험기 “내 가족들이 약탈을...” (0) | 2013.11.14 |
스톰체이서가 본 슈퍼태풍 하이옌 “지옥보다도 처참했다” (0) | 2013.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