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대형 쇼핑몰에서 21일(현지시간) 소말리아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이 인질극과 총격전을 벌여 수십명이 숨졌습니다. 한국 여성 1명도 이날 공격으로 사망했습니다.
쇼핑객들이 몰리는 토요일인 이날 정오 무렵 나이로비 웨스트랜드 지역에 있는 웨스트게이트 쇼핑몰에 무장괴한 10여명이 들이닥쳐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괴한들은 22일까지 쇼핑몰 내부에서 최소 수십명의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고 진압경찰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현지일간 더스타 등은 이날 공격으로 인질범 중 일부를 비롯해 50여명이 숨졌으며 100여명이 다쳤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CNN방송은 부상자가 300명에 육박한다고 보도했습니다. 사망자 중에는 캐나다인 2명과 프랑스인 2명 등 외국인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웨스트랜드는 주케냐 한국 대사관이 있고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며 사건이 벌어진 쇼핑몰은 교민들이 자주 찾는 곳입니다. 공격 당시 쇼핑몰에 있던 교민들은 대부분 무사히 빠져나왔으나, 영국인과 결혼해 나이로비에 거주하던 한국 국적 강문희씨(38)가 숨졌다고 외교부가 밝혔습니다. 케냐 주재 한국 대사관은 총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간 강씨의 남편으로부터 “아내가 실종됐다”는 신고를 받고 나이로비 국립시신안치소를 방문, 강씨의 시신을 확인했습니다.
이날 공격은 1998년 알카에다가 나이로비 시내 미국대사관을 폭탄 공격해 200여명이 사망한 이래 케냐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테러입니다. 현장에서 빠져나온 생존자들은 복면을 쓴 괴한들이 케냐의 공식 언어인 스와힐리어나 영어가 아닌 아랍어 또는 소말리아어를 썼으며, 무슬림이 아닌 이들을 골라 처형하듯 사살했다고 전했습니다.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은 22일 대국민연설에서 자신도 이번 공격에 가족을 잃었다며 “테러범들을 반드시 물리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테러범들을 규탄했습니다.
소말리아 내전의 사생아, 알샤바브
이날의 인질극은 ‘하라카트 알샤바브(청년운동)’의 짓으로 보입니다. 이 단체 스스로 이날 공격을 자신들이 저질렀다고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알샤바브는 소말리아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입니다. 내전으로 사실상 국가가 무력화됐던 소말리아에서 샤리아(이슬람 성법)에 따른 극단 통치를 주장하며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이들을 무차별 억압·살상해 악명 높습니다.
정식 명칭은 ‘하라카트 알샤바브 알무자히딘(HSM)’ 즉 ‘청년 전사 운동’입니다. 소말리아식 아랍어로는 발음이 좀 달라서 ‘사라카다 모자히딘타 알샤바브’라고 위키피디아에 나와있네요. 이들을 통칭하는 ‘알샤바브’는 아랍어로 ‘청년’을 뜻합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소말리아는 여러가지 이유로 극심한 내전을 겪었습니다. 일단은 ‘여러가지 이유’라고만 해두죠... 이미 해적들의 선박 납치 등으로 해서 국내에도 소말리아 사정을 얼추 알려졌으니 이만 생략. 아무튼 이 나라에서 내전 시기 잠시 수도 모가디슈를 장악하고 극단통치를 했던 조직이 있습니다. 이슬람법정연합(ICU)이라는 것인데, 2006년 무렵 유엔·아프리카연합·에티오피아 등의 지원을 받은 소말리아 ‘정부군’이 이들을 패퇴시켰습니다.
조직이 쭈그러들자 ICU에서 떨어져나온 것이 알샤바브입니다. 잠시 설명을 곁들이자면, 에티오피아는 동아프리카에서 나름 패권국가 노릇을 하고 있지요. 특히 에티오피아와 인도양 사이, 뾰족 튀어나온 ‘아프리카의 뿔’ 언저리에 있는 소말리아·에리트레아·지부티 같은 나라들은 대략 에티오피아의 영향권 아래에 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이 일대에서 유일하게 ‘기독교 국가’라는 이유로 서방의 애정을 한껏 받고 있기도 하지요.
알샤바브의 로고
에티오피아의 개입을 등에 업고 과도정부가 들어선 뒤, 남쪽으로 달아난 알샤바브는 더욱 더 극단화했다는 것이 중평입니다. 특히 2011년 과도정부가 모가디슈를 완전히 장악하자, 알샤바브는 알카에다와 손을 잡았습니다. 심지어 근래에는 ‘아프리카의 알카에다’로 유명해진 나이지리아 극단세력 보코하람, 북아프리카에서 테러와 인질 납치를 자행해온 ‘마그레브 알카에다(AQIM)’ 등과 부쩍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알카에다와 알샤바브
알샤바브와 알카에다의 관계에 대해서 좀더 들여다볼까요. 알카에다(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된 뒤 이집트 출신의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최고지도자로 이 조직을 이끌고 있죠)는 느슨한 점조직처럼, 세계 곳곳의 이슬람 극단조직을 가르치고 지원하는 형식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조직들은 ‘알카에다 연계 조직’이지 알카에다의 지역 지부라든가 그런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라크전 때 상당 기간 미국과 시아파를 공격했던 ‘이라크 알카에다’, 최근 이라크와 시리아 알카에다가 합병해 만들어진 ‘시리아·레반트 이슬람국가’, ‘아라비아반도 알카에다(AQAP)’, 앞서 언급한 북아프리카의 ‘마그레브 알카에다’ 등이 알카에다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고 있지만, 소말리아의 알샤바브처럼 느슨하게 연결된 조직들도 많습니다.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폭탄테러, 2005년 영국 런던 7·7 동시다발 테러를 벌인 사람들은 알카에다 쪽의 자금과 테러기술 지원을 받은 ‘연계조직’의 멤버들이었고요.
알샤바브의 지도부는, 이슬람 극단조직 간부들이 대개 그렇듯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알카에다 ‘테러 캠프’에서 훈련받은 사람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알카에다가 ‘세계의 이슬람화’를 꿈꾸는 조직임에 비해, 알샤바브는 소말리아 특유의 파벌(족벌) 시스템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소말리아를 장악하고 소말리아에서 에티오피아 세력을 몰아내고 소말리아에서 (탈레반 식의) 샤리아 통치를 하는 것이 목표라는 얘기죠.
이 때문에 알카에다와 견해 차이가 있었습니다만, 2012년 완전히 알카에다의 지휘를 받겠다고 선언하면서 알카에다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자금과 무기 등을 지원받기 위해서였겠지요.
‘외인부대’와 외국인 전사들
알샤바브의 무장조직원은 2011년 1만4000여명으로 추정됐습니다. 하지만 케냐가 이후 병력을 소말리아에 보내 진압작전을 벌이면서 조직원이 크게 줄어, 지금은 7000~9000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알카에다가 ‘인정’한 모크타르 알주바이르 고다네가 지금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와히리가 승인한 공식 지도자인데, 조직 내에 여러 파벌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나 장악력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고다네는 소말리아 출신이지만 아프간의 캠프에서 훈련받았고, 알샤바브의 ‘외인부대’ 조직을 이끌고 있습니다. 외인부대라고 하면 주로 예멘, 수단, 아프간,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넘어온 사람들로 구성돼 있지요. 이들 ‘외국계 무자히딘’의 숫자가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200~300명이라는 보도가 있습니다. 자폭테러 공격 같은 일을 저지르는 것은 주로 이 ‘외인부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말리아 ‘민족부대’는 하산 다히르 아와이스라는 사람이 이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과 영국 그리고 케냐 등지로부터의 신병 모집이 상당하다는 겁니다. 2007년 미국에서 최소 40명의 무슬림을 모집해갔다는 얘기가 있고, 2011년에는 뉴욕타임스가 미국 출신 무자히딘들의 소말리아 내전 참가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인들도 빠지지 않습니다. 영국 국내정보를 담당하는 정보기구 MI5의 조너선 에반스 국장은 2010년 영국인 100명 이상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알샤바브에 포섭돼 무자히딘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A new breed of terrorist is born / 케냐 일간 더네이션
이번 사건이 벌어진 케냐는 무슬림과 기독교도들, 아프리카 토착종교를 믿는 이들이 평화롭게 공존해왔던 곳입니다. 그런데 근래 기독교 공동체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이들이 늘고 있고, 이들 사이에 알샤바브로 포섭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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