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프랑스가 주도하는 시리아 공격이 ‘인도적 차원의 군사적 개입’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정당화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많이 따라붙죠. 한 가지, 미국이 원해서 멋대로 쳐들어가려고 하는 상황은 분명히 아니라는 점. 시리아 내전 사망자가 올들어 10만명을 넘어서고 인도적 참사가 벌어지면서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미국은 계속 시리아와 거리를 두어왔죠.
지난 21일의 화학무기 공격으로 다마스쿠스에서 최소 300여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되자 군사행동으로라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제어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인도적 차원의 개입이라는 측면보다는(그랬다면 이미 지난해 위기가 악화될 때 개입했어야죠!) 미국이 ‘금지선(레드라인)’으로 규정한 화학무기를 사용한데 따른 ‘응징’으로 귀결되는 양상입니다. '인도적 개입'과 '보복 공격'은 종이 한 장 차이...
■ 아사드가 화학무기 썼다는 ‘결정적 증거’ 있나
군사행동이 명분을 확보하려면 무엇보다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 공격을 저질렀다는 결정적 증거, ‘스모킹 건’이 나와야 합니다. 미국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유럽쪽 회원국들도 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반정부 진영이 주장하는 ‘정황상의 증거’만 있을 뿐이죠.
미 백악관이 며칠 내 공개할 것이라 예고한 ‘증거’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가 최대 관심사입니다. 백악관은 유엔 시리아 조사단의 현장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대신, 자체 제시할 이 자료를 근거로 공습을 정당화하고 시리아에 공격을 선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 자료가 결정적인 증거로 인정받지 못할 경우 이라크전 직전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이 유엔에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증거를 내놓겠다”며 큰소리쳤다가 망신 당했던 전철을 밟을 수 있습니다.
그 시절 치욕을 겪었던 파월 전 장관은 지난 25일 CBS방송에 출연해 시리아 내전에 미국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가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이집트와 시리아의 정정불안 속에 미국은 좀더 현명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 국제사회 ‘동의’ 얻었나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26일 “유엔의 동의 없이도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언론들도 이튿날 백악관과 국방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 “유엔이 아니더라도 아랍연맹이나 나토의 지지 속에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10년 전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전세계의 극렬한 반대 속에서도 이라크에 대한 ‘인도적 개입’이라며 전쟁을 감행했지요.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이를 되풀이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동의를 얻기 힘들다는 점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시리아의 경우 인도적 개입 필요성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는 하나,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표를 던질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A Syrian rebel fighter stands on a picture of Bashar al-Assad, in the Old Town of Aleppo, Syria, September 12, 2012. UPI
BBC방송 등은 미국과 나토가 제네바협약을 근거로 시리아를 공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인도주의와 관련된 국제적 규약인 제네바협약은 전시 민간인 보호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협약 또한 ‘유엔의 동의’를 개입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무력 개입의 완전한 근거는 되지 못하겠지요. 다만, 미국 등 '서방'이 아랍을 먹으려고;; 시리아를 차지하려고;; 제국주의적 야심으로 주권을 침해하려 한다는 식의 시각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러시아랑 중국이 몽니를 부리니 안보리 결의를 얻어낼 수가 없어서 어쩔수 없이 우회를 하는 거니까요.
■ 화학전 예방 효과 있을까
명분이 화학전 때문인만큼, 제한적 타격으로 시리아의 화학무기들을 없애고 화학전 재발을 막을 수 있어야 하겠죠. 하지만 가디언 등 여러 언론들은 화학무기 저장시설을 공습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화학무기 저장고가 어디있는지 정확히 알지도 못할 뿐더러, 화학무기는 이동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더군요. 또 화학무기 터뜨렸다가... 더 큰 피해가 발생하면 그보다 큰 낭패가 어디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미군은 아사드 군의 주요 기지를 대통령궁 경비병력 등을 공격하려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뉴욕타임스도 28일 "아사드 측 군 시설이 주요 목표"라고 국방부 관계자들 말을 빌어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아사드 정권의 축출, 즉 무력에 의한 ‘레짐 체인지(체제교체)’를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며 선을 긋고 있습니다.
■ 사상자 수 최소화
정부군 진영과 반정부군 진영이 확연히 구분됐던 리비아의 경우와 달리 시리아는 면적도 좁고 인구가 밀집한 큰 도시들이 해안을 따라 늘어서 있는데다,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뒤섞여 곳곳에서 교전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국들이 공습 목표로 삼고 있는 곳들은 민간인 지역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곳들입니다.
시리아 군의 공식 명칭은 '시리아 아랍군'이고 육군, 해군, 공군, 공중방위군, 정보국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제인스디펜스 등에 따르면 육군은 다마스쿠스에 사령부를 두고 남부와 골란고원 등을 관할하는 1군단, 중부 홈스 일대와 레바논을 관할하며 자바다니에 사령부를 둔 2군단, 터키·이라크 접경지대와 지중해 해안선을 관할하는 알레포의 3군단으로 이뤄져 있다. 군 엘리트 양성소인 알 아사드 군사학교도 알레포에 있습니다.
수도인 다마스쿠스의 방어는 1군단 산하 4사단과 공화국수비대 소속 3개 여단 등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군시설들을 민간인 희생 없이 ‘초정밀 외과수술처럼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겠지요. 민간인 사상자가 클 경우, 개입의 정당성은 사라집니다.
■ 아사드 퇴진을 유도할 수 있을까
화학무기 시설을 무력화하지도 못하면서 정권 축출을 노리지도 않는다면, 공습의 ‘목표’는 대체 뭐냐는 물음이 미국 내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26일 독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일회성 보복으로는 미국의 국익을 지킬 수 없다”면서 아사드 축출을 목표로 전면적 군사개입에 나서야 외교적인 돌파구도 열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브루킹스연구소 군사전문가 마이클 오핸런도 정치전문 온라인언론 폴리티코에 “제한된 개입으로는 아무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미국이 제한적 타격을 선호하는 것은 지상군을 들여보낼 수 없다는 현실적 조건 속에서 불가피하게 개입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사드 퇴진 요구 시위에서 시작된 내전에 개입하면서 아사드를 효과적으로 압박하지 못한다면 군사행동을 바라던 반아사드 진영이나 아랍국들, 미국 내부에서도 회의론이 제기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오바마가 직접 나서 시리아 화학무기 공격에 대해 밝힌 적이 없다는 것은, 이 복잡한 상황을 둘러싼 미국의 고민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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