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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을 자는 없지만 나설 자도 없는 '시리아 군사개입'

딸기21 2013. 8. 3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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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공습...곧 할 것같다가 또 갑자기 한 걸음씩들 물러나는 분위기입니다.

요 며칠 외신들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지금 당장 미국이 나서서 시리아를 때린다 해도, 사실 막을 수 있는 나라는 없지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이 미국을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을까요. 

막을 의사도 아마 별로 없을 겁니다. 어느 매체에서는 '푸틴 체념설' 하는 표현을 썼던데, 체념인지 뒷궁리인지 몰라도 푸틴이 '행동'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군사행동에 반대하지만, 미국이 행동한다 해도 우리가 (보복) 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인테르팍스 통신의 29일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가 지중해에 대잠수함 함정과 미사일 순양함을 파견해 나름 무력시위를 할 것이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위'겠지요.

Mission All-But-Impossible: Destroying Syria's Chemical Weapons from the Air

이라크전 때도, 리비아 공습 때도 중국의 논평은 정말이지 신기할 정도로, 10년 내내 똑같습니다. 유엔의 조사결과를 기다리자, 군사행동에는 반대한다... 뭐 그러겠지요.

그럼 이란?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하면 이란이 이스라엘을 폭격한다? 그럴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습니다. 이란에 최근 온건파 정부가 들어서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고 있지요. 이란 내 강경파들이 적지 않지만 그들도 미국과 지금 군사적 적대를 하려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누가? 결국 미국 등 서방이 시리아를 공격해도 막을 수 있는, 혹은 적극 막으려 할 나라는 없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공습을 하지 못합니다. 최소한 '당장'은요. 공습을 막을 나라는 없는데, 그렇다고 공습에 적극 나설 나라도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역설입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8일 방송에 나와서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존 케리 국무장관, 척 헤이글 국방장관,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이 차례로 나서서 강경 대응을 할 것처럼 큰소리를 빵빵 친 것인지. 포린폴리시 등이 오바마 정부 인사들의 입방정을 비판해놨던데, 욕먹어 쌉니다.

미국 국민들은 여전히 시리아 공습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허핑턴포스트와 유고브(YouGov)가 2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습에 찬성한다는 응답자는 25% 뿐이었다는 군요. 심지어 반정부군에 무기를 지원하는 '소극적 개입'에 대해서조차 찬성 여론이 13%에 그쳤다고 합니다. 돈 떨어져 시퀘스터(연방재정 자동삭감) 들어간 주제에 무슨 수로 적극 개입을 하겠습니까.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다는 게 그냥 하늘에 금 그어서 "이제부터 너희들 비행 금지다"라고 선언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시리아 정부군의 제공권을 없애버릴 물리적 장치들을 주변에 깔아놔야 가능한 건데 여기에 돈이 많이 들어가겠지요. 이라크 때나 리비아 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최소한 미 해군 항모 몇 척은 주변에 버티고 있어야 하는데 얼마 전 헤이글 국방장관이 "항모 11척 유지도 간당간당하다"고 예산 감축에 울상을 지은 바 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어떨까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며칠 간 좀 많이 '오버'한 느낌입니다. 푸틴에게 전화해서 열 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시리아 군사제재 결의안 초안 내놓고, 공습파들을 규합하는 것 같더니 역시나 한 걸음 물러섰습니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시리아에 대한 군사행동이 시급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군요.

프랑스에서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군사행동의 선봉에 설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리비아 공습 때 라쌀레 전투기들 띄운 뒤 무기수출 늘려 한번 재미를 본 것이 기억에 남았던 건지도), 뒤늦게 분위기 파악을 한 모양입니다. 파리에 공습 로비하러 온 시리아 반정부진영 대표들을 만나서 "정치적 해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공습이 필요없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나자트 발로-벨카셈 여성인권장관 겸 정부대변인은 "행동하기 전에 증거가 필요하다"며 유엔 조사결과를 지켜볼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UK under pressure to produce Syria evidence
Unthinkable to strike Syria if strong UN opposition: UK's Cameron

독일은 뜨뜻미지근입니다. 영국의 제재안을 지지한다고 했지만 '확실한 증거'부터 제시하라는 입장입니다. 다음달에 독일 총선이 실시됩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관심은 시리아가 아닌 총선에 가 있겠지요. 러시아 언론은 푸틴과 메르켈이 전화통화를 하면서 시리아 화학무기에 관한 유엔 조사단 보고서를 안보리가 검토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인 벨기에와 폴란드, 이탈리아도 독일처럼 "군사행동을 하려면 결정적 증거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브라질이나 베네수엘라 같은 남미 '좌파국가'들 또한 예상대로 공습반대 혹은 "증거 내놔라"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마찬가지...

Ghosts of Iraq war force Britain to delay Syria strike
Iraq looms over Syria

중동 국가들은 어떨까요. 자기들이 직접 시리아를 공격할 리는 없지요. 레바논은 불똥 튀는 것 때문에 덜덜 떨고 있고 이라크와 요르단은 서방이 시리아를 공격하면서 자국 영토나 영공을 통과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요르단에 미군들이 이미 들어가 있는데... ‘반대’한다고 하는 군요. 요르단과 이라크는 시리아와 접경한 나라들입니다. 이들이 다 자기네 건드리는 것은 싫어한다는 뜻입니다.

Iraq opposing strike on Syria highlights region's complexity
PM says Italy will not join Syrian operation unless U.N. backs it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 공격을 했다고 비난하며 군사행동 논의에 끼어들고 있습니다. 터키의 인치를리크 공군기지는 미국이 이라크전 때 사용했던 곳이기도 한데, 터키가 이번에도 기지를 내줄지는 미지수입니다. 쿠르드 문제라는 변수가 걸려 있고 자국 내 반미, 반이스라엘 감정이 불타오르는 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이 기지를 쓰려면 미국은 이라크전 때처럼 터키에다가 떡고물을 많이 던져줘야 할 것 같습니다.

막을 자는 없지만 나설 자도 없는 이 형국....지금 세계를 짓누르는 것은 '이라크전의 악몽'입니다. 

'결정적 증거'와 '유엔 동의' 없이 전쟁 치렀다 피 봤던 이라크전 악몽에 함부로 못 움직이는 오바마. 영국 의회와 여론이 막나가는 캐머런의 발목을 잡은 것도 이라크전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죠. 이탈리아, 폴란드, 독일도 대테러전에 병사들 보냈다 낭패를 당했던 나라들입니다.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친미 중동국가들도 이라크전 이후 자국 내 거센 반미·반이스라엘 여론에 몸살을 앓았던 걸 떠올리며 당시 상황이 재연될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고요. 알자지라 방송은 온라인에서 ‘#StrikingSyria 대 #NoWarWithSyria’의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네요

US Facing Test on Data to Back Action on Syria
Congress seeks answers from Obama on Syria

인도적 개입은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시리아의 저 참상을 그대로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하지만 더 큰 피해가 생길지 모르는데 다짜고짜 공습부터 때리고 보면 안 된다는 것, 그 나라 사람들 더 죽이고 전쟁 더 키우고 세계를 엉망으로 만든다는 것. 10년간의 전쟁이 준 교훈인 듯합니다. 이 당연한 교훈을 깨닫는 데에 10년이 걸린 거라고 해도 되겠죠.

이러는 사이에도 시리아 사람들은 고통 받고 있다는 슬픈 현실... 하얀 천에 싸여 있던 아이들의 시신, 그 이미지가 통 머리 속에서 사라지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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