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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집트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딸기21 2013. 8. 2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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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청년 노점상의 분신으로 촉발된 민주화 시위가 이집트로 번져가 ‘아랍의 봄’이 확산되자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는 2011년 2월 이집트에 특사를 보냈다. 프랭크 와이즈너라는 인물이었다. 영국의 진보신문 인디펜던트의 유명 저널리스트 로버트 피스크는 며칠 지나지 않아 와이즈너의 정체를 파헤친 기사를 썼다. 와이즈너가 미국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당시 이집트 대통령을 변호하는 법무법인에서 일하던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무바라크 퇴진 시위가 한창일 때 무바라크 쪽 로비스트를 무바라크에게 특사로 보낸 것이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였다.

CIA 공작원 아들을 ‘특사’로 보내

하지만 와이즈너에 대해서는 국내 언론들이 스쳐지나간 이야기가 또 있었다. 와이즈너의 아버지는 이름이 똑같은 프랭크 와이즈너(Frank Gardiner Wisner·1909~1965)다. 아버지 와이즈너는 미 해군과 미군 전략사무국(OSS)을 거쳐 정보기관원으로 변신했다. 1948년 미 중앙정보국(CIA)은 정책조정실(OPC)이라는 비밀스런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 OPC를 이끌게 된 것이 와이즈너였다. 매카시즘의 선봉에 서서 온갖 공작을 다 했던 인물, 오늘날 CIA의 모든 어두운 이미지를 만들어낸 인물이 그였다.


와이즈너가 국외에서 벌인 숱한 공작 중에서는 두 가지가 두고두고 회자된다. 첫째는 과테말라의 민족주의자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 정권을 전복시킨 일이다. 농지개혁을 추진했던 구스만은 미국의 무기와 자금 지원을 받은 쿠데타 세력에 밀려 국외로 축출돼 남미 여러 나라들을 떠돌다가 객사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와이즈너의 임무는 이란의 민족주의자 모하마드 모사데그 정권을 축출하고 백색테러로 악명높은 우익 파흘라비(팔레비) 왕정을 복구시킨 것이었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이란의 총리로 1951년 집권한 모사데그는 저술가 겸 행정가·법률가로 명망을 날리던 인물이었는데, 영국계 석유회사를 국유화하는 민족주의 정책을 펼쳤다가 미국의 눈엣가시가 됐고 결국 2년 만에 쫓겨났다.



모사데그 축출 작전은 미국이 중동에서 저지른 ‘친 독재 반 민주 체제전복 공작’의 모델이 됐다. 그런데 그 아들이 근 60년 만에 ‘아랍의 봄’에 대처할 특사로 이집트에 나타났던 것이다. 이집트 민중봉기 며칠 뒤 특사 와이즈너는 유럽 외교관들에게 “무바라크가 권력을 유지하는 게 핵심적(crucial)”이라면서 대놓고 편을 들었다. 그는 이집트 거대 은행의 이사이기도 했다.
미국의 특사 임명, 그리고 와이즈너와 무바라크의 관계는 이집트의 군부 쿠데타와 시위 유혈진압 사태 때 미국이 취한 태도에서 그대로 반복됐다. 지난달 3일의 군부 쿠데타로 인해 선거로 뽑힌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축출된 뒤에도 미국은 군부의 ‘쿠데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무르시의 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의 시위를 지난 14일부터 며칠에 걸쳐 무참히 짓밟아 13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숨지게 했는데도 미국은 원조를 중단할지 여부를 놓고 망설이기만 했다.

올해 책정된 미국의 이집트 원조 예산은 총 14억8000만 달러(약 1조6500억원) 규모로, 그 중 13억 달러가 군사부문에 몰려 있다. 절반 이상은 집행됐고, 5억8500만 달러가 아직 집행되지 않은 상태다. 이 금액은 8월 말까지 미국이 이집트에 인도할 예정인 아파치헬기 10대와 탱크 등의 가격이다.

미국의 올해 이집트 원조 14억달러 넘어

원조를 끊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이집트 군부에 대한 지원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이 이끄는 이집트 군부는 ‘이집트에서 자랐지만 미국이 먹여 키운 자식’이다. 냉전 시기 이집트 군사독재정권은 아랍권이 소련 쪽에 기울지 않게 해주는 버팀목이었으며, 이스라엘이 아랍국들 사이에서 최악의 고립과 갈등으로 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울타리였다. 실제로 미국의 이집트 원조가 본격화된 것은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국교가 수립된 이후다. 무바라크 시절까지 이집트 군부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을 포함해 아랍권의 과격 행동주의자들을 억누르는 역할도 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을 ‘중재’하면서, 이를 위해 팔레스타인 측을 억압하고 가자지구의 하마스를 물밑에서 압박한 것이 무바라크 정권이었다.

다른 중동국들과 달리 이집트는 자원도 미군기지도 없지만, 미국과 중동을 이어주는 교량이라는 점에서 몹시 중요하다. 중동을 관할하는 앤서니 지니 전 미군 중부사령관은 “이집트를 통해 내 관할지역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의 군사원조는 이 틀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돕는’ 것이 아닌 상호의존 관계였다.

군사협력 중단하면 영향력 줄어들까 우려

두 나라 사이에 다소간 균열이 온 것은 2001년 9·11 테러를 저지른 범인들 중 상당수가 이집트 출신이고 알카에다 상층부에 이집트인들이 포진해 있다는 것이 확인된 뒤였다. 무바라크가 2003년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면서 두 나라 사이는 더욱 벌어졌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이집트 군부와 미군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았다. 이집트 군부 지도자들은 미국의 군사학교에 유학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엘시시 국방장관도 2006년 미국 육군 전투학교에서 수학했다.

앞서 오바마 정부는 이집트군과 미군의 합동군사훈련을 일단 연기시켰다. 현재로선 미국이 비군사부문 원조는 예전처럼 진행하되 군사부문 원조는 사안별로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아파치헬기 등의 인도를 늦출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가 군사원조를 전면 중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동 산유국들이 미국 대신 이집트를 원조해주겠다며 이집트 군부에 손을 내밀고 있는 요즘, 군사협력을 끊는 강수를 뒀다가 자칫 영향력이 줄어들까 미국은 우려하고 있다. 원조를 부분적으로 멈출 수는 있어도 미국이 아랍에서 갖고 있는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이집트 군부와의 관계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제럴드 세이브 워싱턴 본부장은 “수니파 대 시아파의 싸움이라면 모르지만, 지금 중동 전역에서는 이슬람주의 대 세속주의 정부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며 미국에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것이 미국이 안고 있는, 국제사회가 아랍-이슬람권을 바라보며 느끼는 고민의 ‘본질’인 셈이다.


2013 09/03ㅣ주간경향 10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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