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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둘러싼 국제정치, '이보다 더 복잡할 수는 없다'

딸기21 2013. 8. 27.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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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정보국장 반다르 빈 술탄 왕자는 22년 동안 미국 대사를 지낸, 친미 사우디 왕정 내에서도 가장 친미적인 인물입니다. 미국 조지 W 부시 일가와 밀착관계여서 주미대사 시절 ‘반다르 부시’라고까지 불렸습니다. 그 아버지가 왕세제였던 술탄 왕자였는데... 부자가 나란히 미국스럽게 놀았고, 부시 일가와는 호형호제...인지는 몰라도 아주아주 가까웠던 걸로 유명하지요.

그런 반다르가 이달 초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밀실 대화’를 나눴습니다. 반다르는 이 자리에서 150억달러 규모의 러시아산 무기를 사겠다는 것, 시리아 내 러시아 군사기지는 앞으로도 그대로 쓰게 해준다는 것,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과 러시아 간 가스공급 계약을 보장해주겠다는 것 등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조건은 러시아가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지지를 끊는 것이었고요. 


푸틴은 확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대화는 러시아 언론에 유출됐고 이어 레바논 일간지 앗사피르가 상세한 내용을 전했습니다. 27일 이란 프레스TV 등은 러시아-사우디 간 ‘밀거래’ 의혹을 다시 한번 크게 보도했습니다. 
같은 날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서방의 시리아 군사공격에 반대한다면서도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말해 이전보다 한층 누그러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 가지 계산들이 오갔을 것은 뻔하지요. 

미국 국무부 차관보를 지낸 제프리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은 26일 테헤란을 방문했습니다. 펠트먼은 자바드 자리프 신임 이란 외무장관과 만나 시리아 문제를 논의했다고 이란 국영TV가 보도했습니다. 유엔 특사 자격의 방문이긴 했으나, 1979년 이슬람혁명 이래 미국 최고위급 인사의 이란 방문이었습니다. 

아사드 정권의 후원자를 자처해온 이란에는 얼마전 온건파 새 정부가 들어섰지요. 자리프 장관은 지난 21일 다마스쿠스 부근 화학무기 공격사건 뒤 "이란은 유엔 현장 조사단이 화학무기 피해가 발생한 지역에 방문할 수 있도록 시리아 측과 논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시리아'라는 화약고는 국제사회를 어디로 끌고갈 것인가. 

현재로선 시리아를 가운데 두고 서방과 아랍권 대 러시아·이란·중국 편으로 진영이 갈린 양상입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셈법은 몹시 복잡합니다. 시리아를 둘러싼 상황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국제정치의 한 단면인 동시에, ‘성공적인 공습’이 왜 쉽지 않은가를 보여줍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7일 케빈 러드 호주 총리와 통화하면서 시리아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호주는 다음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순번제 의장국입니다. 같은 날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스라엘 관리들을 만났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앞서 22일 백악관에서 긴급회의가 열렸을 때만 해도 라이스 보좌관이 군사행동에 가장 회의적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급전개되자 라이스는 초강경 입장인 이스라엘측과 만나 시리아 공습 문제를 논의했네요. 



공습을 한다면 미국과 유럽국들이 주축이 되겠지만 오바마 정부는 중동에서 또 군사행동에 나서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합니다. 돈도;; 없고요. 오는 10월이면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고, 돈 고민 때문에 아마 오바마의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겁니다. 시퀘스터(연방예산 자동삭감)다 뭐다 해서 허리띠 졸라매느라 힘들었는데 시리아 때문에 국방비를 늘리기는 힘들 테니까요. 


반면 2년 전 리비아 공습을 주도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이번에도 적극적입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휴가 일정까지 줄이고 각국과의 논의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캐머런은 27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하면서 아사드 정권에 대한 ‘응징’을 강조했습니다. BBC방송은 캐머런이 긴급 의회 소집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유엔 지지 없이도 무력대응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로랑 파비우스 외무장관이 “국제사회의 무력 대응”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틀에서 유럽국들과 함께 단기간 시리아를 타격하는 방안을 선호할 것 같습니다. 나토의 또다른 축인 독일의 반응은 미지근합니다. 백악관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도 대화하며 시리아 문제에 강력 대응할 필요성을 공감했다고 밝혔으나 독일 측의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군요. 


중동 역내에서는 터키와 이스라엘,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이 군사행동을 지지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독자적으로 수차례 공습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시리아 반정부군 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아사드 못잖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남쪽의 요르단은 서방과 친하지만 시리아 공격 뒤 대규모 난민이 자국으로 밀려올까 우려합니다. 



과거 시리아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던 레바논은 현 상황을 가장 불안해하는 나라입니다. 이미 불똥은 이 쪽으로 튀고 있지요. 현지 일간 더데일리스타는 최근 레바논 내 폭탄테러 등이 많아진 점을 들며 “시리아에 대한 군사대응으로 레바논이 다시 불안해질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미셸 술레이만 대통령을 비롯해 레바논 내 반시리아 진영은 아사드에 반대하지만, 남부 무장조직 헤즈볼라는 아사드를 위해 지원군을 보내고 있습니다. 술레이만 대통령은 현재 정부구성조차 못 하고 있는 형편... 


시리아 북쪽의 터키는 아사드에 반대하지만 소수민족인 쿠르드 문제와 미군기지 제공 문제 등을 놓고 고민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나 나토가 시리아를 비행금지구역으로 만들려면 제공 무기를 시리아 주변에 배치해야 하는데, 터키의 인치를리크 공군기지가 위치가 좋습니다. 이라크전 때에는 미국이 이 기지를 썼는데 터키가 두고두고 그것 때문에 고민을 했죠. 자국 내 반미정서에 기름을 붓는 짓이니까요. 친미 아랍 왕국들 역시, 아사드 축출을 원하지만 역내 정서가 반미·반이스라엘로 흐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습니다. 



아사드를 지원해온 러시아는 계속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서방을 향해서는 시리아에 무기수출을 계속할 것이라 큰소리를 쳐놓고 정작 무기 전달은 미루는 식입니다. 푸틴은 캐머런과의 통화에서 아사드측이 화학무기를 썼다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서방에 맞서고는 있으나, 유엔 안보리에서의 반대표 외에 다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네요. 


중국은 화학무기 사건 뒤에도 “유엔의 조사가 우선”이라며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했습니다. 이라크 때나, 리비아 때나, 시리아 때나... 중국의 언행은 참으로 일관성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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