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이웃동네, 일본

머리로는 '맛의 달인', 입에는 '인스턴트'

딸기21 2004. 9.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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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대형 수퍼마켓에 갈 때마다 눈이 휘둥그레진다. 우리나라에도 백화점 수퍼마켓에 가면 모양 좋은 '완제품 음식'들이 진열돼 있기는 하지만, 서울에 살 때에는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남의 일이었다. 도쿄에 와서 보니 사정이 좀 다르다.

수퍼마켓 1층에서는 방금 지어진 밥이나 초밥, 생선회를 밥 위에 뿌려놓은 '치라시 즈시', 달걀프라이를 얹은 오므라이스와 국수볶음을 도시락 모양으로 예쁘게 담아 판다. 라면이나 밥 위에 얹어먹는 소스 종류는 말할 것도 없고, 냉동식품도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닭고기와 감자 혹은 치즈와 새우를 넣은 고로케, 연근과 완두콩에 어묵을 묶어넣은 튀김, 검붉은 소스까지 뿌려져있는 냉동 햄버거,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당고(꼬치) 모양의 각종 튀김들...


인스턴트 식품의 종류가 많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인스턴트 식품에 의존하는 정도도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높은 것 같다. 놀이방에 모인 엄마들이 아이들 점심으로 '수퍼마켓 도시락'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는 것을 볼 때에는 약간의 문화충격을 느끼기도 했다마는, 독신 샐러리맨이나 외롭게 사는 노인들 뿐만 아니라 보통 가정에서도 '완제품 음식'을 사먹는 것이 이상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이다.

한국에 있을 때, '맛의 달인'이나 '미스터 초밥왕' 같은 일본의 음식 만화 몇편을 본 일이 있다. 고추냉이를 갈 때에 세로방향으로 갈아야 제 맛이 난다거나, 초밥용 밥을 나무통에 잘 지으면 밥알이 서있다거나 하는 식의 비현실적인 얘기도 없지 않았지만, 일본인들의 '맛에 대한 집착'과 탐구정신만큼은 높이 평가해줄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일본 TV들은 유별나다 싶을 만큼 요리 프로그램을 많이 내보내고, 얼핏 사소해보이는 요리 화제들을 가지고 십수회짜리 미니시리즈들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만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일본인들은 '요리에 목숨 건' 내지는 '맛에 죽고 맛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

정작 실생활에서는 요시노야(吉野屋)같은 저가(低價) 체인형 식당을 애용하고, 수퍼마켓에서 파는 인스턴트 식품을 먹고 살면서 머리 속으로는 끊임없이 '궁극(窮極)의 맛'을 꿈꾸는 일본의 음식문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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