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이웃동네, 일본

도쿄에 온 이래, 머리 손질이라고는

딸기21 2004. 10. 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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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온 이래, 머리 손질이라고는 전혀 않고 있다. 퍼머하는 값이 비싸기도 하지만, 뭐 별로 가고픈 마음도 없고. 외국에 나온 한국 아줌마들이 흔히들 하듯이, 그냥 질끈 동여매고 지낸다. 그 덕에, 신경 안 쓰고 지내는 동안 머리카락이 꽤 많이 자랐다(머리 속도 좀 자라면 좋겠지만). 어릴적부터 어깨에 닿는 정도 혹은 단발머리에 머물러온 터라, 별로 머리를 길게 기른 적이 없었다. 좀 있으면(서울에 돌아갈 5개월후 쯤에는) 내 인생에서 어쩌면 최장의 머리카락이 될 수도 있겠다.


웅웅웅 긴머리가 되었다고 해서 스타일이 좋아진 것은 절대로 아닐 뿐더러, 요즘 머리가 엄청 빠진다. 난 의외로 둔한 구석이 있다. 스트레스를 만땅으로 받을 상황이어도 잘 모르고 지낼 때가 많다. 머리가 둔한 부분을 몸이 상쇄해준다고나 할까(그런 상쇄는 없어도 좋으련만). 스트레스 받으면 먹는 양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심한 경우는 거식증 수준으로 불규칙한 식생활을 할 때도 있다. 혹은 머리카락이 왕창 빠지거나, 악몽을 꾼다. 

문제는, 이런 '스트레스 자각증상'이 나타나는 것이-- 통상, 스트레스성 생활이 끝나고 2~3개월은 지난 뒤라는 것이다. 어라, 머리카락이 요새 왜이렇게 빠지지, 새치가 많이 생겼네, 그러고보니 요새 내가 밥을 엉망으로 안 먹었네, 에구구 왜이렇게 연일 악몽일까나... 싶어서 돌이켜보면, 두어달 전까지 무쟈게 스트레스받는 생활을 했다든가, 뭐 그런 식이다.

그렇다면, 현재 머리카락이 엄청 빠진다는 것은, 두어달 전까지 내가 스트레스 잇빠이(일본어...죄송) 받고 있었다? 그건 아니다. 게다가 밥 엄청 잘 먹고 있고, 살도 통통하게 올라 있고, 악몽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최근 부쩍 늘어난 흰머리(더이상 새치라고 우기기도 처량하다)와 탈모의 원인은 결국 내가 '늙어간다'는 것 아닌가. 이런! 늙어가다니! 철없이 내 주위를 빙빙 돌던 시간이 드디어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연륜'이라는 멋지구리한 나이테를 가지게 될 것이고, 인생의 진정한 재미를 느끼게 된다는 얘기로구나. 장하다, 딸기. 90평생의 3분의1을 넘어서니 세상도 나도 점점 더 재밌어지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딸기가 실망하지 않도록 점점 더 재밌어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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