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6일 화요일.
숙소에서 짐 빼들고 개선문 들렀다가 Barcelona Nord 터미널로. 10시에 버스타고 4시간 달려 오후 2시에 발렌시아 도착. 발렌시아는 내게 ‘아이마르가 뛰던 팀이 있는 도시’, 그리고 오렌지와 바다가 있는 도시- 모두 TV에서 본 이미지들이다. 그런데 현실은? 바다... 그것이 어드메뇨.
터미널에서 친절한 시민님들의 도움을 받아 8번 버스 타고 Reina 광장으로 향했다. 발렌시아의 숙소는 미리 잡아놓지 않은 탓에, 일단 방 얻는 것부터 시작. 광장 골목에서 맛없는 빠에야 15유로에 먹고, Hostel El Cid에 방을 얻었다. 짐 들고 돌아다니기 귀찮아서 가장 먼저 눈에 띈 호스텔에 그냥 눌러앉았다. 1박에 35유로. 더 깎을 걸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암튼 겉보기엔 엄청 작아도 방 안은 깨끗.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용이지만 방 안에 세면대도 있고 더블베드에 새로 칠한 깔끔한 방이라 맘에 들었다. 그런데... 5층인데 리프트가 없어. ㅠㅠ 발렌시아, 너무 맘에 든다. 첫 방문지였던 마드리드와 두 번째 여행지인 바르셀로나에선 많이 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하루 묵는 발렌시아에선 마음 편히 동네 한 바퀴 돌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론야라는 유적은 문 닫은 탓에 겉에서만 보고, 부근의 중세 건물들과 대성당을 기웃거렸다. Ajundment 라고 쓰여 있는 오래된 건물에 들어갔다. 입장료 3유로, 요니는 어린이라서 공짜. 혼자 여행하고 있다는 브라질 여성과 함께 구경했는데, 크지 않은 건물 한 채이지만 참으로 즐거웠다.
이 곳, 정말 매력적이잖아! 골목마다 어쩌면 그렇게 정감 가고 이쁜지. 사람들도 바르셀로나같은 관광객 집결지보다 훨씬 친절하고, 거리는 깔끔하고. 무려 길바닥이 대리석... 발렌시아 중심가의 위용. ㅎㅎ 그날 적어둔 느낌 한 토막. “지구인이라면 지금 발렌시아의 날씨를 보고 칭송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사랑스런 도시다.” 레이나 광장에서 산타마리아 대성당으로, 다시 탑 밑의 성당으로,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오렌지 주스 한 잔 사마시고, 그렇게 요니와 느릿느릿 걸어 다녔다. 여행 내내 진짜 예뻤던 우리 요니. 이런 골목들을 아이와 함께 돌아다니는 건 정말이지 너무 즐겁다! 저녁엔 점심 먹었던 식당에 다시 들러 오징어 튀김과 하몽을 11유로에 사먹었다. 이튿날, 10월 17일 수요일. 아침 일찍...이라고는 볼 수 없는 8시 10분에 일어나서 짐 정리하고, 요니 깨워 샤워 시키고. 빵과 치즈와 바나나로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걸어 지하철로.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에 아주 사소한 문제로 요니와 트러블. 이번 여행에서의 첫 마찰. 예전엔 엄마의 권위(요니는 인정하지 않겠지만;;)로 내가 화내고 요니는 야단맞는 위치였으나, 1년간의 홈스쿨링 특히 이 여행을 계기로 역학관계가 크게 바뀌었다. 요니는 명실상부 꼬맹이가 아닌 한 명의 여행자! 자기 짐 자기가 챙기고 자기 할 일 자기가 하는 작은 사람... 엄마가 화내면 요니도 화내기 때문에 결국은 엄마가 사과.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둘이 다시 꼭 껴안고서 Turia 버스 터미널로.
다음 목적지는 지중해의 휴양지 알리칸테 Alicante. 두 시간 반 달려 알리칸테로 왔다. 여기서도 얼렁뚱땅 호텔을 잡고~ 이름하여 Hostal Santa Lucia. 방 안에 욕조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와이파이도 되면서 하루 30유로. 테라스에서 늦은 점심을 차려먹었다. 그런데 매우 지저분하고, 심지어 남이 버리고 간 양말 쪼가리도 굴러다님. 더운물은 나오다 말았음. 뭘 바래, 이 가격에. ㅋㅋ 지중해에서 파도타기 하고 놀았다! 바다가 어찌나 맑던지. 아이유 노래처럼 오늘따라 왜 하늘은 또 파란 건지, 오늘따라 왜 바람은 또 완벽한지. 스페인 중부인 마드리드에서 잠시 북쪽 바르셀로나로 갔다가 지중해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는 중인데, 마드리드가 가장 추웠고 갈수록 따뜻해지고 있다. 한여름 땡볕은 아니지만 시원하면서도 따뜻한 바다에서 느무느무 즐겁게 놀았다!
수영복도 없이 물속에 뛰어들 땐 좋았지만... 딱 하루 입은 내 4유로짜리 흰 셔츠는 요니의 수영복이 되어 장렬히 전사. 그리고 아가씨에서 다시 꼬맹이로 돌아간 요니는 맨발로 알리칸테의 거리를 걸었다. 방에 돌아와 옷 갈아입고, 빨래해서 널어두고 저녁 무렵 다시 거리로. 바닷가 언덕에 있는 산타바바라 요새에 올라간 건 일곱 시가 넘어서였다. 유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관리인이 미리 묻는다. 시간이 늦어서 하행편은 없을 텐데 그래도 괜찮으냐고. 요새를 거닐다가 라이트업과 도시 야경 보며 걸어 내려왔다. 수퍼마켓에서 귤과 식빵과 햄을 사놓고, 바닷가에서 간만에 생선으로 저녁식사. 저녁 먹고 들어오니 밤 열 시. 우리도 어느새 스페인 사람 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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