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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엄마, 노는 딸] 지브롤터를 건너 모로코로!

딸기21 2013. 8. 11. 23:38

2012년 10월 20일, 토요일 


그라나다의 호스탈에서 체크아웃. 스페인 온 이후 처음으로 택시를 타고(7.5유로) 버스 터미널로. 버스타고 다시 알헤시라스 Algeciras로. 이베리아반도의 남단, 북아프리카와 마주보고 있는 작은 항구도시다. 


당초 계획은 ‘모로코로 건너간다’는 것 말고는 없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어찌어찌 항구를 찾아간다, 다행히 표가 있으면 배를 타고 모로코로 건너간다, 탕헤르의 항구에 내려 기차역으로 찾아간다, 다행히 표가 있으면, 금상첨화로 야간열차의 침대칸 표가 있으면 기차에서 자면서 남쪽 마라케시로 이동한다는, 구체적이고도 막연하고 아무 준비 없는 계획 아닌 목표뿐이었다. 


그런데 일정이 이상할 정도로 착착 진행되어, 어느 새 우리는 탕헤르의 기차역에서 야간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그라나다를 떠나 버스에 몸을 실을 때만 해도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호스탈에서의 전날 밤은 몹시 추워서 점퍼를 입고 잤다. 그런데 지중해를 바라보며 몇 시간을 달려 알헤시라스에 도착하니 날씨는 좋았다. 요니가 "맑혀놓았기 때문"에. 맑은 날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날씨를 “맑혀놓았다”고 주장하는 귀여운 녀석과 함께 하는 행복한 여행. 


다행히도 알헤시라스의 페리 터미널은 버스 터미널에서 걸어서 5분 거리. 이 도시는, 잘은 몰라도, 모로코와 스페인을 오가는 사람들 덕에 유지되는 항구도시인 듯. 페리 터미널 옆에 늘어선 여행사 중 한 곳을 들러 페리 탑승권 2장을 48유로에 샀다. 2시에 떠날 예정이던 배가 30분이 지나도록 머물러있던 걸 빼면 계획대로 모든 게 이뤄졌다.


마라케시의 '아름다운 궁전', 바히아에서.


지브롤터를 건넜다. 지브롤터 해협이라니, 이건 너무 멋지잖아! 


내 인생의 스케줄 어느 구석엔가 ‘배를 타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탕헤르로 향하다’라는 것이 박혀 있었을 줄이야. 어울리지도 않는 예정설을 떠올리며 배 안에서 커피와 값비싼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다. 


모로코로 들어가는 입국심사는 이 배 안에서 이뤄진다. 워낙 큰 배라 움직이는지도 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는데, 1시간 남짓 가는 동안 20분 이상을 입국심사 줄 서서 기다린 듯. 모로코 님들도 스페인 님들처럼 대략 느리며, 세월아 네월아 농담 따먹고 사이사이 자기 휴대전화도 받아가며 처리를 합디다... 뭐 아무려면 어때. 


탕헤르의 기차역은 페리 터미널에서 택시로 45분 걸렸다. 페리 터미널이 탕헤르에 두 곳이 있는데, 페리는 탕헤르 시내에 있는 오래된 작은 터미널이 아니라 멀찌감치 떨어진 커다란 새 터미널에서 오간다. 터미널에서 택시에 합승. 승객 수대로 택시비를 나눠 내는 시스템. 그런데 합승한 사람들과 기사 아저씨는 몇 년 만에 만난 가족인 양 어쩜 그렇게 왁자지껄 수다를 떠는지. 45분 내내 그들은 정말 즐겁고 흥겨워 보였다. 


탕헤르 그랑 갸르에서 기차표를 샀다. 모로코의 주요 도시에는 기차역을 최근 몇 년 새 대부분 새로 지었기 때문에 낡은 역과 커다란 새 역(그랑 갸르)이 대부분 공존하고 있다. 주요 노선들은 그랑 갸르를 지나감. 표는 샀지만 타기까지 무려 5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역 주변에 갈 곳도 없고 나가봤자 돈만 들고 또 탕헤르는 어차피 나중에 다시 와 구경할 거라서 역에서 버팀. 


벽에 전기 아울렛도 있네? 스페인과 모로코의 공통점 또 하나, 공공시설에서 아울렛에 내 충전기 꽂아놓고 살금살금 전기를 빼내 써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요. 흐흐흐. 바닥에 주저앉아 갤탭이랑 아이폰 충전하며 놀았다. 내일은 마라케시!! 


10월 21일 일요일 


드디어 마라케시. 위치 좋은 곳에 호텔 잡는 데 성공. 아미라 호텔이라는 작은 여관인데, 나중에 돌아와서 아고다 사이트에서 확인해보니 엄청 평이 좋더라고. 아주 만족스러운 호텔이었다. 리셉션의 남자분들 잉글리시 잘 되지, 옥상에 앉아 바람 쐴 카페테리아도 있지, 마라케시 구시가지 수끄(가게)들 늘어선 제마 엘 프나 광장 골목에 있어 위치도 최적! 사하라 투어도 예약 완료. 다만 생각처럼 물가가 싸지는 않았다.


다르 시 사이드의 작지만 상쾌한 정원.


마라케시와 사하라, 모로코 관광에 대한 간략한 안내는 모로코여행 간단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짐 풀고 잠시 쉬다가 광장 골목들 구경하러 나갔다. 가게들 줄지어선 거리 안쪽의 바히아 궁전. 바히아는 아름답다는 뜻. 궁전이라 할 정도는 안 되고 저택 정도? 그래도 예쁘다. 관람료 10디함(1500원)의 착한 가격. 

그리고 부근에 있는 Dar Si Said 관람. '다르'는 집이라는 뜻, 다르 시 사이드는 사이드라는 어떤 돈 많고 높은 부자 어르신의 집이라는 뜻. 지금은 알흠답고 깔끔한 정원을 가진 관광지로 변모. 여기서도 저기서도 아랍식(혹은 이란식?) 정원이 눈에 띈다. 건조한 여름날의 더위를 식혀주는, 물과 나무가 있는 정원. 

장식 잔뜩 들어가 있고 색채가 아름다운, 알함브라와 비슷한 양식. 북아프리카-이베리아 이슬람 아랍왕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기 때문. 모로코는 원래 베르베르의 땅이었는데 아랍계가 이슬람과 함께 들어왔다.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손자가 메디나(사우디아라비아의 도시) 구세력의 탄압을 피해 모로코로 들어와 모로코 이슬람의 효시가 됐다고 하는데, 모로코 이슬람은 무함마드 직계의 도래라는 것을 강조하곤 한다. 

하지만 이집트 같은 나라와 다르게 끝까지 아랍인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지는 못했다. 그 대신 이슬람을 받아들인 베르베르계가 11세기에 알모라비드 왕조를 세웠다. 이슬람권 변방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예. 이들 변방의 무슬림들은 마라케시를 수도로 삼고 세력을 확장해, 마그레브(북아프리카)를 넘어 알 안달루스 즉 이베리아 남쪽까지 뻗어나갔다고.


골목 안 Jama 레스토랑에서 환상적인 따진으로 점심 식사. 요니는 거의 질그릇을 숟가락으로 파들어갈 정도로 싹싹 긁어먹었다. 양고기 따진 60디함에 수프 20디함, 합쳐서 80디함. 알고 보니 광장 주변 가게들에선 양고기 따진이 절반 값인 30디함. 하지만 뭐 어때, 맛있었는걸. 


역시나 작지만 즐거웠던 마라케시 박물관.


점심 먹고 마라케시 박물관을 구경했다. 오래된 물건들도 있지만 재미난 모로코 현대회화도 같이 전시하고 있어서 더 즐거웠다. 


하지만 마라케시 관광의 핵심, 정확히 말하면 비무슬림이 들어갈 수 있는 관광 포인트 중 핵심은 박물관과 거의 붙어 있는 벤 유세프 메데르사. 원래 이슬람 학교는 마드라사라 부르는데 여기서는 메데르사. 이슬람 교육기반인 기숙학교인데 지금은 관광지가 돼있다. 이런 마드라사의 학생들을 탈레브, 그들의 무리를 탈레반(학도들)이라 하고, 그들을 가르치는 스승을 물라라 부른다. 지금은 '탈레반=테러범'이 돼있지만. 


아름다운 메데르사. 변방일수록 반작용으로 근본주의적 속성이 강경해지는 법. 이슬람의 변방인 모로코에서는 근대 이후로 끊임없이 이슬람주의자들의 근본주의적인 요구가 있어왔다. 특히나 아랍계의 친서방 근대화 움직임에 반발하며 이슬람 근본으로의 회귀를 주장한 것은 베르베르 세력이었다고 한다. 거리에서 보이는 모습으로는 이집트보다 훨씬 보수적인 듯. 계절이 가을이기도 하지만 살갗을 내놓은 여성들을 볼 수 없다. 물론 극단주의자들은 모로코인들에게도 이해 못할 족속으로 여겨진다지만, 여전히 국왕이 실권을 쥔 이 나라가 보수적인 곳인 것만은 사실인 듯.


마라케시의 자랑거리, 벤유수프 메데르사.


이렇게 멋진 곳에서 공부가 잘 됐을까? 공부 안 하고 딴짓하면 선생님에게 혼났겠지? 

이슬람 시설에서 가장 많이 찍게 되는 건 역시나 문, 창문. 



요니는 이 곳에서도 '링(무섭게 널부러지기)' 놀이를... 


요니는 모로코가 너무 좋단다. 스페인으로 꼭 다시 가야하냐고 묻는다. 최대한 모로코에 머물다 돌아가기로 했다. 여기 여자애들은 정말 이쁘다!! 요니 가로되 "제가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ㅎㅎㅎㅎㅎㅎㅎ 너보다 예쁜 아이들이 천만 명은 되는 것같아. 하지만 엄마에겐 네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예쁘단다. 


다른 나라에선 대략 관광객들 들어가게 해주던데... 이슬람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집트 카이로의 알 아즈하르 성원조차도 여행자가 모스크에서 쉬어가는 걸 허락하던데... 이란의 시아파 사원들도 누구든 쉬어갈 수 있다던데... 모로코는 아니다. 카사블랑카의 모스크 하나만 관광객들에게 개방한다고. 하지만 그건 국왕이 권위를 과시하고자 새로 지은 모스크일 뿐 역사의 두께가 내려앉은 유서깊은 모스크가 아니잖아. 젠장. (어차피 카사블랑카에는 가지도 않았지만) 


햇볕 피해 경건한 모스크 안에서 잠시 쉬어가는 그 순간의 기쁨을 요니에게 알려주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저녁식사는 호텔 직원이 소개해주고 친절히 안내까지 해준 광장의 N'ZaHa 식당에서 역시나 따진으로. (이 여행 내내 요니는 양고기 따진을 입에 달고 살았으며, 지금도 양고기 따진을 목이 메이도록 외치고 있다는.... ) 


저녁 먹고 잠시 호텔 들어왔다가 다시 광장으로 나갔다. 마라케시의 제마 엘 프나 주변은 방콕의 까오산로드처럼, 관광객들이 넘실거리는, 여행자들의 천국. 특히 어스름이 깔리면 제마 엘 프나는 북새통. 


하지만 사실은 이 곳에서도 근래 폭탄테러가 일어났다는 슬픈 이야기가... 아시나요? 이슬람 극단주의에 경도된 자폭테러가 문득 일어나기 시작한 대도시에는, 어김없이 그 몇년 전부터 급속 확장된 슬럼들이 있다는 것을. 마라케시는 모로코의 중심 도시 중 하나이지만, 일자리 없는 청년들이 북적거리는 슬럼이 그 일대에 급격하게 커지고 있다고 한다.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반감, 세계화와 워싱턴 컨센서스가 강요한 폭력 및 경제적 실패, 그 속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 그들을 끌어당기는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대안 아닌 대안'... 이것들이 결합하면? 테러리즘. 


무거운 이야기는 이 정도로 끝내고. 


낮동안 이곳을 지나는 이들의 몇십배가 넘는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온다! 까오산과 다른 점은, 여기는 '외국인 관광객'들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모로코인들을 위한 축제의 마당이고, 그 속에서 이방인들도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 밤늦게까지 광장은 퍼포먼스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특히나 이 날은 일요일이라 근처에 사는 모로코 사람들까지 온통 놀러나와 광장이 엄청 떠들썩했다. 


악기 들고 나와 연주하는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사진도 찍고, 구경값도 내고. ㅎㅎ 10디르함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