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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엄마, 노는 딸] 바르셀로나, 라 람블라 거리와 '중세의 골목'

딸기21 2013. 5. 27. 17:00
이틀간 묵으며 나름 정들었던 마드리드의 호스탈 레지오날에서 나와 아베니다 데 아메리카(Avenida de America) 버스터미널로. 바르셀로나로 가는 오전 7시 버스를 끊어놓은 바람에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시내에서 터미널 가는 전철요금 두 사람 3유로다. 왜 스페인 지하철은 어린이 요금할인이 없는 거야 -_- 자판기에서 요니 과자와 음료수를 샀더니 5유로. 왜 이렇게 비싼 거야 -_-.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까지 기차로 2시간, 버스로 8시간. 고속열차를 타고 가면 좋았겠지만 넘 비싸서 포기. 우린 시간이 많으니까...둘이 기차 타면 20만원은 들어가기 때문에, 오기 전부터 그냥 우린 버스로만 다니기로 마음먹었다(그러다 보니 이 여행 내내 정말 기나긴 시간을 버스에서 보내게 됐다). 

대륙처럼 큰 스페인 가운데에 있는 마드리드에서 동북쪽 바닷가의 바르셀로나로 가는데, 보자하니 이게 거의 사막이다. 나중에 남쪽으로 내려가면서도 느낀 거지만, 해안과 산악지대 빼면 내륙은 거의 듬성듬성 관목들 고개 내밀고 있는 사막 지형.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중간쯤 되는 지점에 사라고사라는 유명한 도시가 있지만 거기는 그냥 통과. 왜냐고? 거기 숙박비가 유독! 장난 아니게 비싸기 때문. 사라고사는 대체 왜 그렇게 비싼 거야 -_- 

버스 타고 가는 길에 휴게소에서 크라상과 커피와 도넛과 물로 점심을 때웠다. 7.45유로. 젠장.



드뎌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에는 터미널이 두 곳 있는데, 우리가 내린 곳은 바르셀로나 노르드(Barcelona Nord) 터미널이었고, 우연히도(정말 우연이었음;;) 예약해놓은 힙카르마 호스텔(HIP KARMA HOSTEL)에서 걸어서 5~6분 거리. 8인용 기숙사형 객실에 두 자리 예약해놨는데, 요니와 내 침대가 대각선 건너편 1층과 2층으로 떨어져있다...

이 곳 리프트도 요니가 좋아하는 구닥다리. 그러면서도 도미토리는 새로 단장해 왕 깔끔하다. 알고 보니 이 도미토리, 스페인에서 이런 시설 구하기가 쉽지 않은 거였다.

심지어 위치도 좋다. 마드리드에서는 관광객들&취객들이 넘실거리는 골목에서 밤새 소음에 시달렸는데, 힙카르마는 바르셀로나에서 관광객들 모여드는 람블라 거리와 살짝 떨어져 있어서 조용하면서도, 살금살금 걸어서 놀러나가면 딱 좋은 거리.

짐 풀어놓고 숙소에서 나와,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모여든다는 라 람블라 거리로. 진정 버스커, 버스커들의 거리. 길거리 화가의 기예에 가까운 스프레이 아트를 홀린 듯 바라봤다. 서울 돌아가면 요니 방에 그라피티 허락해 주기로... 내가 요니한테 홀린게야...

라 람블라는 아주 오래전에는 쓰레기가 넘쳐나는 개울;; 바꿔 말하면 시궁창이 있던 곳이라고. 14세기에 바르셀로나가 커지면서 시궁창은 성밖으로 밀려나가고 이 곳이 거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까탈루냐 광장, 리세우 오페라하우스 같은 것들이 길가에 있고, 길 가운데와 양 옆에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그 중 한 곳에서 나름 타파(tapas) 시켜놓고 폼 좀 잡아보려고 했는데... 했는데... 맥주든 뭐든 술을 마셔줘야 분위기가 날 터인데 알콜과는 거리가 먼 체질이라. -_- 요니랑 둘이 앉아 여행수첩 정리하며 잠시 노닥거린 뒤 그냥 일어났다.

라 람블라 거리 웹사이트- 그런데 스페인어도 아니고 무려 까탈루냐어로 돼있네요;;


라 람블라 거리를 따라내려가 포트벨 항구로. 바르셀로나에 온 첫날, 몇시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직 가우디의 근처에도 못 갔는데 이 도시에 반해버렸다.

그 흔한 광고판도 없는 밤의 유적지. 람블라에서 안쪽 골목으로 파고들면 15-16세기에 지어진 역사박물관, 역사지구가 있다. 몇 걸음 내딛는 순간 고즈넉한 중세의 골목으로 옮겨와 있었다. 이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도 요니는 여덟 시간 여행의 수고가 아깝지 않다고 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당시로선 드물게 외국 여행을 다녀오시면서 전화 대기중에 수화기 올려놓으면 음악 나오는 오르골을 사오셨다. 거기서 나오던 노래가 ‘로망스’였다. 흔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곡인지라 내가 그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 감동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앰프 크게 연결해놓은 밤거리의 기타 연주. 로망스를 들으며 ‘중세의 골목’을 걸어다녔다. 그 모퉁이를 지나니 이번엔 거리의 성악가들이 오솔레미오를.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궁합이 잘 맞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아름다운 날씨, 아름다운 거리, 아름다운 시간. 그 거리가 지저분할 수도 있고, 시끄러울 수도 있고, 밥도 제대로 못 먹어 뱃속에선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 하릴없이 걸어야 했을 수도 있고, 다리가 아파 그만 어느 가게 문앞에 주저앉을 수도 있고, 갑자기 소낙비가 내려 어느 건물 처마 밑에서 비를 그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시간과 장소가 있다. 

스페인 여행을 돌이켜보건대,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 모두 우리 모녀와 궁합이 잘 맞았다. 재미난 것은, 스페인을 여행지로 택하면서 머리 속으로 떠올렸던 가장 아름다운 두 곳, 즉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들과 그라나다의 알함브라는 오히려 '가장 실망한 2곳'이었다는 점. 이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바르셀로나에 사흘을 묵으면서 매일 밤 라 람블라와 고딕 골목을 돌아다니며 거리의 악사들과 가수들의 공연을 들었다. 지금도 환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 때의 그 음악과 그 분위기, 그 골목. 내게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가 아닌 ‘중세의 골목이 있는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