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지구
Laboratory Earth: The Planetary Gamble We Can‘t Afford to Lose (1997)
스티븐 H. 슈나이더 (지은이) | 임태훈 (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 2006-02-10
사이언스북스의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10번째권이다. 이 시리즈 목록을 보면 1권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섹스의 진화’, 3권 폴 데이비스의 ‘마지막 3분’, 4권 리처드 리키의 ‘인류의 기원’, 6권 수전 그린필드의 ‘휴먼 브레인’, 7권 리처드 도킨스의 ‘에덴의 강’ 이런 식으로 돼 있다. 과학책 몇권이라도 들춰본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명사급 필진들의 책들이다. 그런데 ‘마스터스’라고 하기엔 좀 뭣하고, ‘유명한 과학자 누구누구의 짧지만 중요한 글’ 거의 이런 식인 것 같다. ‘실험실 지구’를 보면 조그만 판형에 듬성듬성 큰 글씨, 줄간격 늘리고 뒤아래 양옆 공간 넓게 쓰는 플레이 하면서 300쪽에 1만3000원... 하드커버가 아깝다는게 바로 이런 경우다.
스티븐 슈나이더는 여러 종류 책에 언급되는 나름 유명한 인물이니까 교양;; 삼아 기후학 공부하는데 밟아야할 다리를 밟는다 생각하고 읽었다. 사실 기후 문제, 지구온난화 문제 알아보려면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기본’은 항상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거니까 읽고 나서 시간 아깝지는 않았다.
사실 책은 훌륭하다. 그런데 책이 나온 시점이 1997년이니 10년 지났고, 이 분야 연구들이 어제오늘 다르게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감안하면 좀 뒤떨어진 감이 없지 않다. 그런 점에서는 고전이라 부를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기후변화의 그것이 가지는 생태학적 의미를 살피되, “환경과 경제 사이의 균형잡기라는 ‘현실적인 맥락’에서 지침을 얻어낼 것”이라고 머리말에서부터 못을 박고 들어간다. “선한 과학이라면 어떻게 해야 생물보존작업을 경제적, 정치적으로 가장 실천적인 방식으로 진행할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는데 도움이 돼야 한다.” 껄끄러운 번역 때문에 문장이 꼬였는데, 암튼 과학자치고는 참으로 ‘현실적인 자세’라 아니할 수 없겠다.
슈나이더는 가이아이론의 유기체 관점을 이어받아 지구가 살아있다는 전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유기체와 무기체는 서로 연결돼 있고, 기후학자들이 흔히 얘기하듯 이 연결은 양-음의 되먹임 고리를 통해 상호작용을 이끌어낸다(이 책에선 ‘정의 되먹임’ ‘부의 되먹임’ 해놓아서 좀 어색해보임). 이 상호작용에 대해 시생대 고온과 그후 기온(즉 이산화탄소의 농도)의 안정화 과정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들을 설명하고 질소, 황, 탄소의 순환과정 등등 기후변화의 메커니즘을 소개한다. 기후학자들이 모형 만드는 방법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있다. 생물 군집(생태계) 내에서 특정 종의 역할을 다른 종이 대신할 수 있는지, 즉 ‘생태계 서비스’가 대체 가능한지 하는 부분에 대한 설명 같은 것들도 재미있었다.
사실 기후변화 시나리오라는 것들은 ‘경향성’이라는 것을 보여주긴 하지만 모델마다 다른 수치를 보여주기 때문에 믿거나 말거나 혹은 ‘과장됐다’ 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이 부분에 대해서 슈나이더는 “종합평가의 목적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예측해내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변수가 생겼을때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사실 이 책에서 ‘과학적인’ 부분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현실적인’ 부분들이다. 환경문제는 개개인의 사소한 행동이 겹쳐 ‘정말 우연히’ 일어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의 행동이 낳을 수 있는 의도되지 않은 결과를 의식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무”라는 것.
당연한 얘기 같지만, 실제로 주변 사람들과 환경 이야기를 해보면 많은 이들이 기후변화의 영향력을 부인 혹은 평가절하하거나, 겉으로는 알고 있다 하면서 실제로는 모르고 있거나(구체적이지 않은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 “내가 뭘 하리” “경제가 개판인데 기후변화가 웬말이냐” “넌 얼마나 환경 생각한다고 나한테 머라 해” 이런 식이다. 뭐, 나도 속으로는 그런 생각 아예 안 한다고 말할 수 없으니.
이 책에 예일대 경제학자인 윌리엄 노드하우스라는 사람이 고전파 경제학자와 환경 경제학자, 대기과학자, 생태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다는 조사의 내용이 나온다. 21세기 말에 지구평균기온이 섭씨 6도가 일어난다고 가정하더라도(실제로 이건 매우매우 과격한 파국적인 시나리오이며 가능성이 높지는 않은데) 전통적인 경제학자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혹시 지난 10년간 좀 달라지긴 했을까).
저자는 생태학자와 경제학자의 차이를 두 가지에서 찾는다. 첫째 이 거대한 인구, 고도의 과학기술, 거대한 경제규모가 유지될 수 있을까(지속가능성) 하는 점. 생태학자들은 현상태로는 안된다고 말하고, 경제학자들은 아예 ‘안된다’는 전제를 부정하는 것 같다. 두 번째 생태계 서비스(다양한 생물종들이 유기체처럼 얽힌 지구 생태계의 기능)이 뭔가로 대체될 수 있다고 보는가.
생태학자들은 순식간에 파바박 생태계가 적응해서 기온 상승에 맞춘 적자생존이 이뤄지고 종 다양성이 그대로 유지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반면 경제학자들은 과학기술낙관론에 의존해서 앞날에 뭐가 나올지도 모르면서 ‘해결책이 나온다’고 말하고, 그게 합리적인 ‘시장의 법칙’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뭐든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정작 과학자들은 회의를 표시하는데도 말이다!
생태학자 경제학자들 얘기일 뿐 아니라 그냥 우리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각차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아직은 (적어도 한국에선) 대부분 국민이 경제학자들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과학에 관한 ‘정책’을 결정하는 단계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과학은 ‘사회적 과정’이 된다. 여기서 저자는 당연한 결론 즉 ‘작은 실천’을 강조한다. 딱 한 표 차이로 선거결과가 판가름 나는 일은 실제 세상에선 거의 없지만 언제나 정치인들은 ‘당신의 한 표가 중요하다’고 하지요? 그런데 사실입니다. 왜냐면 효과는 누적되는 거니깐... 이렇게 슈나이더는 평범한 원칙을 다시 얘기한다. 요새는 미국도 재생가능에너지 한다 하고 유럽은 아주 앞서나가고 있다. 우리는? 에너지 기후 이런 얘기하면 뜬구름 잡는 웃기는 인간 되고, 잘난척 한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 그래도 지구는 살려야 한단 말이지... 슈나이더가 말하는 ’평범한 원칙‘은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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