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인간동물원- 빌딩 숲 속 인간은 어째서 들판을 갈망하는가

딸기21 2007. 3. 25. 11:46
728x90

인간 동물원 The Human Zoo (1969,1996)
데즈먼드 모리스 (지은이) | 김경수 (그림) | 김석희 (옮긴이) | 물병자리 | 2003-12-16



‘털없는 원숭이’를 예전에 친구에게서 빌려와 놓고 몇 년을 못 읽다가 그냥 다시 돌려주었고, ‘벌거벗은 여자’를 2004년에 읽은 뒤 다소 실망했던 적이 있다. 데즈먼드 모리스의 책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는 편인 것 같은데 기대 밖으로 이 책은 재미있게 읽었다.

‘털없는 원숭이’가 나온 것이 1967년이고 이 책은 1969년 작이라니 꽤 오래됐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는(다른 분야도 그렇기야 하겠지만) 책의 출간시점이 아무래도 중요한데, 이런 종류의 책을 38년이 지나 읽다 보면 시기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를 들자면 이 책에는 ‘세계인구 30억명의 절반은 코카소이드(백인)이고 몽골로이드(황인)가 11억명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모리스가 인용한 통계가 대략 1960년대 중반의 것이라 한다면, 반세기 좀 못되는 기간에 지구의 인구는 두 배로 늘었고 특히나 중국 인도의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서 오늘날 몽골로이드의 시대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또 모리스는 동성애자를 박해하지 말자고 하는데 정작 동성애를 하나의 질병 혹은 이상증세 취급을 하니 이것 또한 지금의 논리와는 좀 다르다. 아마도 모리스가 지금 비슷한 책을 쓴다면 표현이 상당히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어쨌든 오래 지난 책을 보는 것도 재미는 있었다.

동물학자로서 동물을 꾸준히 관찰해온 저자는 ‘인간이라는 동물’과 다른 동물들을 꼼꼼이 비교하고 인간의 동물적 특성과 그것을 넘어선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을 살핀다.   

모리스의 시각에서 동물적 특성으로 인간을 해석할 수 있는 한계는 ‘부족사회의 인간’까지다. 침팬지를 비롯한 유인원 종류들의 사회생활과 기본적으로 비슷한 단계인 부족사회 시절에서 인간의 몸은 그다지 많이 진화해오지 못했다. 갑자기 진화가 느려져서가 아니라, 부족사회에서 도시사회에 이르기까지 인간 사회의 진화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진화가 사회의 진화를 미처 따라오지 못한 탓에, 부족사회 시절의 본능에 여전히 좌우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이 거대한 도시사회에서 어렵사리 적응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족사회의 배경은 아프리카의 사바나, 너른 들판이다. 거기가 우리의 ‘생물학적 거처’이다. 그런데 인간은 생물학적 배경을 벗어나 문명이란 걸 만들었다. 부족을 거대한 집단으로 불리고 키우고 그러면서 싸우고 몸부림치고, 급기야는 이렇게 빌딩들로 둘러싸인 거대도시들을 만들었으니,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는 안 맞아도 한참 안 맞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대한 도시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상승을 꿈꾸면서도 또한 해방을 동경한다.  

저자는 농경 시작 이후의 인류를 ‘초(超)부족화’ 단계로 규정하면서 문명과 도시의 발달 과정을 살핀다. 부족-초부족 개념을 사회문화적인 다양한 측면으로 확장해 지위-초지위(인류의 공격성과 지배·권력관계의 발전), 섹스-초섹스 같은 대립쌍들을 만들어 보여주고, 인종문제와 동성애 문제, 과학기술과 문화의 발전을 가져온 창의성의 기원과 창의성을 억압하는 교육 문제 등등을 초부족화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런 주장 뒤에는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과 인간의 행동에 대한 비교분석이 깔려 있다. 

저자는 사람들이 현대 도시에서의 치열한 생존경쟁을 ‘정글’에 빗대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차라리 ‘동물원’이 맞는 비유라고 주장한다. 동물행동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 사회를 분석한 것이 좀 너무 많이 나갔다 싶은 부분도 없지 않지만(예를 들면 교육체제 논란 같은 것) 재미는 있었다. 역시나 인간도 동물이니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