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와 마틴 루터 킹에게서 배우는 비폭력
마리 아네스 꽁브끄 | 귀 들뢰리 (지은이) | 이재형 (옮긴이) | 삼인 | 2004-06-30
짧은 책인데 사놓고 2년이 넘어서야 읽었다. 간디와 마틴 루터 킹. 간디에 대해서는 전기를 읽고 나서 ‘(존경심을 한껏 담아)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킹 목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어서 새로웠다.
역시 간디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 킹 목사는 여전히 잘 모르는 사람. 하지만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비폭력. 어쩌면 폭력적인 저항은 그 자체가 비폭력보다 비겁한 마음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는 것, 알 듯 모를 듯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압제와 불의가 나를 누를 때 분연히 주먹을 들고 떨쳐 일어나는 것은 나 같은 사람에겐 참 어려운 일일 것 같은데, “맞으면서 싸워라”라니. 하지만 그것을 가능케 함으로써 간디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감동과 비전을 주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문장이 좀 꼬여있어서 부드럽게 읽히는 책은 아닌데, 무시 못할 장점이라면 책이 작고 얇다는 점. 비폭력에 대해 다룬 책들이 많은데, 이 책은 맛뵈기 플러스 약간의 고민을 얹어 시간 내 읽어볼만한 수준인 듯.
▶ 가스실은 존재했다.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스실의 비효율성을 폭로해야만 가스실이 다시 세워지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간디에 따르면 살인은 비효율적인 행위의 전형 그 자체다. 앙드레 말로는 그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시 정부 때의 레지스탕스 활동가들과 합류하는 것을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거부했던 것이다.
“죽이고 싶다는 욕망은 비겁한 자들의 감정이다. 당신은 살인까지 해가면서 도대체 누구를 해방시키겠다는 것인가?” - 간디, <힌두스와라지> (12~13쪽)
▶ 말하자면 레닌과 간디는 달리고 있는 열차에 올라탄 셈이었는데, 레닌은 이미 그의 마음 속에 있던 계획에 따라 열차의 궤도를 바꿔놓기 위한 것이었고, 간디는 소외당한 계층과 함께 여행하면서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기 위한 것이었다. (113쪽)
▶ 페스트가 유행하는 바람에 아슈람은 아름다운 풍경이 공장 굴뚝에 가려진 사바르마티 강가의 아흐메다바드 지역으로 옮겨졌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민감한 적이 결코 없었던 간디는 중앙교도소가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특히 만족스럽게 생각했다. 그는 자기가 앞으로 감옥에 자주 들락거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감옥은 아슈람에서 겨우 몇 발자국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121쪽)
▶ 2002년, 권력을 잡고 있는 군인들 패거리에 의해 반역자로 기소당해 1989년부터 박해를 받아왔던 아웅 산 수지가 석방되었다. 달라이 라마는 1959년 이래 티베트 체류가 금지되어 있고, 그의 조국은 점령자 중국에 의해 고통 받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저지른 죄는 비폭력이다.
비폭력은 하나의 조국이며, 그 시민들은 이 세계의 모든 국가와 모든 종교, 그리고 인류의 모든 세대에 속해 있다. 우리는 이 이상의 가장 오래된 증거를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견한다. 칸다하르에서 걸어서 서너 시간 가량 걸리는 곳에는 기원전 260년 경에 아소카 황제가 불교로 개종하고 난 뒤 암벽에 새겨놓은 칙령이 존재했고, 만일 탈레반의 몽매로 인해 파괴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 열 두 번 째 칙령은 이렇다.
‘바로 이것이 신들로부터 사랑받는 황제의 바램이니: 모든 종파의 신자들은 또한 그들의 종파와 다른 종교의 신앙도 알아야 할 것이다. 진실로 만일 누군가가 다른 종파들을 희생시켜가며 자기 자신의 종파를 찬양한다면 그는 그 자신의 종교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 칙령은 잘랄라바드 근처의 라미얀과 페샤와르 근처의 샤브아즈가르히에서 발견된 다른 칙령들 속에도 들어있다. 위치에 따라 이 문구는 그리스어, 아르메니아어로도 쓰여 있으며 인도어 계열의 프라크리트어로도 쓰여 있다. 불교는 기원후 3세기까지만 해도 이 지역에서 지배적인 종교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6백년이 넘도록 아프가니스탄은 비폭력 전도의 활기찬 중심지 역할을 해냈던 것이다.
동쪽에서 온 대상(隊商)들이 불교를 퍼뜨리기 전에, 이미 서쪽에서 온 다른 낙타몰이꾼들이 이곳에 평화의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 간절한 기대를 바랑 속에 넣어 들고 나타난 사람의 이름은 자라투스트라였다. 그는 말년에 칸다하르 남서쪽으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아문 호숫가에서 휴식을 취했다. 이 호수에서 멱을 감던 그는 이곳에 예언의 정액을 몇 방울 남겨놓았다. 파시교의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한 젊은 처녀가 이곳에 멱을 감으러 왔다가 장차 천 년 동안 지상의 인간들을 선정(善政)으로 다스리게 될 평화의 왕 사오시안트를 낳았다는 것이다. 근처 야산에는 불의 사원이 남아 있고, 여기서는 지금도 승려들이 그가 오는 것을 미리 알려주는 별이 떴는지 보려고 하늘을 살펴본다. 기독교의 전설에 따르면 동방 박사 세 사람이 여기서 출발하여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신의 아들을 경배하러 갔다고 한다. (164~166쪽)
▶ 몽고메리를 하나의 전환점으로 만든 것은, 버스에 타기를 거부하는 형태의 직접적인 비폭력과 법정에서의 사법적 압력 수단을 결합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통합 투쟁 모델은 곧 정치의 영역에서 선거권과 권리 평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 항상 정치와 사회의 영역에 개입하는 길을 찾는 것, 이것이 바로 비폭력 운동의 특징 중 하나다. 왜냐하면 비폭력은 단순히 투쟁 방식을 묘사하는 도구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입장을 취하라는 요구’인 것이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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