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아기 늑대 세 마리와 못된 돼지- 이것은 과연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딸기21 2007. 2. 13.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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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늑대 세 마리와 못된 돼지
The Three Little Wolves And The Big Bad Pig (1993)

유진 트리비자스 (글) | 헬렌 옥슨버리 (그림) | 김경미 (옮긴이) | 시공주니어




오늘 낮에 장자 책 보다가 알았는데, 예전에 ‘계집 희’로 부르는 한자 姬가 컴퓨터에서 입력하려고 보니 ‘아가씨 희’로 바뀌어 있다. ‘놈 者’가 ‘사람 자’로 바뀐 것은 좀 지나간 것 같은데 ‘아가씨 희’는 아무래도 좀 웃기다. 이런 것도 일종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PC)’ 차원의 변화라고 볼 수 있을텐데, 뭐 이런 건 환영이다. 


그런데 동화 뒤집어보기 라든가, 그런 것들,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바로잡거나 계급적/성적/인종적 차별 등등 각종 차별적인 것들을 없애려는 노력은 찬성하는데, 가끔씩 좀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있다. 뭐냐면 동물에 대한 거다. 


이솝이야기에서 바보같은 양들은 착한걸로 나오고 여우는 나쁜 걸로 나온다고, 그래서 ‘외양’에 따라 사람/사물을 평가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일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양들은 멍청하고 못됐는데 왜 그것들을 순하다고 하는거야. 길 잃은 어린양은 눈이 나빠서 길을 잃은 거라니깐... 


암튼 양은 양이고, 돼지는 돼지고, 늑대는 늑대다. 이 책은 제목을 보면 딱 알 수 있듯이, 아기돼지 삼형제를 뒤바꿔서 ‘아기 늑대 세마리와 못된 돼지’로 만들었다. 동화책의 줄거리는 내가 보기엔 솔직히 좀 기묘하다. 철골 콘크리트 주택에 다이너마이트까지 등장하는 것은 ‘현대화’ 수준이 아니라 완전 ‘오버’로 보이고, 마지막 부자연스런 화해와 어울리지도 않는다. 


줄거리 차치하고, 돼지가 늑대를 괴롭힐 수 있을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는 표독스런 독재자 돼지가 나오고 토머스 해리스의 ‘한니발’에는 시칠리아산(코르시카산이던가 -.-a) 식인 돼지가 나온다마는, 자연상태의 돼지가 늑대 세 마리한테 덤빌 수 있을까?


민담에 호랑이가 ‘떡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것은, 호랑이가 육식동물이고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마음이 나쁘거나 못생겨서가 아니다. 토끼가 나타나서 ‘토끼풀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할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다 자연계의 모습을 반영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러니까 호랑이 조심해라, 하는 일종의 집단적 지혜가 쌓이고 쌓여서 교훈들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걸 ‘뒤집어보자’고 하니깐 이 돼지와 늑대 이야기처럼 어색한 부분이 생기는 것 같다.


우리 애는 겁이 많고 걱정도 많다. 사자 호랑이 악어 걱정에다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아기사슴 밤비’ 보고 난 뒤부터는 독수리 걱정까지 생겼다. 엄마 사자가 나타나면 어떡해요, 아냐 사자는 서울에 안 살아, 그럼 우리가 서울 밖으로 나갈 땐 어떡해요, 이렇게 걱정이 꼬리를 물고, 무서운 동물들 그림자만 나와도 무서워한다(그러면서 고기먹는건 또 왜그렇게 좋아하는지) 


그런데 “아냐 아냐 사자는 사실 착해, 안 잡아먹어” 이렇게 가르치는 것은 옳지 않을 것 같다. “사자가 사람이나 다른 짐승을 잡아먹긴 하지만, 사람들이 사자 더 많이 죽였어!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 그 쪽이 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까. 요새 뒤집어보는 동화책들이 많은데 이 책 읽으면서 ‘뒤집으려면 잘 뒤집어야지.. 부침개 타겠다’ 이런 생각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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