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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월츠, '국제정치이론'

딸기21 2007. 1. 12.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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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이론 

케네스 월츠 (지은이) | 사회평론 | 2000-07-28



국제정치에 대한 책을 보다보니 하도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읽지 않으면 돌멩이처럼 발길 잡아챌까봐 읽어치웠다. 번역이 정말 꽝이긴 하지만(쪽 번역 의심도 좀 들고) 책 자체는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케네스 월츠는 ‘국제정치는 국내정치랑 다르다’면서 국제정치에만 통하는 나름의 룰을 만들어내 국제정치학이라는 학문 같지 않은 학문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세력균형 힘의 논리 그런 것들이다. 백년 이백년 전에 유럽 나라들이 편먹었다 갈라졌다 하면서 싸움질하던 때에 세력균형론이 득세를 했었는데, 월츠는 그걸 냉전 시대의 논리로 재해석해서 근사한 틀을 나름대로 만들어 붙였다. 냉전 버전으로 본 20세기 신(新) 세력균형론, 이름 하여 신현실주의다. 국제정치 이론가들을 현실주의 이상주의로 흔히 나누는데 월츠는 그중 현실주의의 아버지 혹은 맏형 정도 되는 모양이다.


앞부분에 ‘이론’이란 무엇인가, 개념틀을 설명하는데 번역도 개판이고 주절주절 설명이 많아서 지겨웠다. 국제정치 공부하는 사람들, 혹은 이론 이런 것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라면 ‘유명한 학자는 논문 이렇게 쓰는구나’ 하면서 읽어볼만 하겠지만 나같은 평범한 독자들에겐 재미가 없었다. 그 부분 넘기고 나니 그런대로 재미있어졌다.


문제는 월츠가 자신만만하게 ‘국제정치이론(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라고 이름 붙였던 그 이론이 냉전시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보니, 지금에 와선 좀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이 책이 나온 것이 1979년이니까 베를린 장벽 무너지기 10년 전이다. 그 때만 해도 월츠의 눈에는 양극체제가 가장 아름답고 균형 있고 안정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극 중에선 양극이 제일 안정되다, 이러면서 심지어 자연계의 법칙으로까지 격상시키는데 이 부분 좀 황당했다. 다극보다 양극이 안정돼 있다? 자연계에서 이런 원리를 찾는다면 세상엔 왜 ‘양성(兩性)’이 있느냐 하는, 그정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제갈공명은 세상이 삼발이 같다고 했다는데 월츠가 삼국지를 읽으면 뭐라고 했을까.


요는 냉전이 끝났다는 점이다. 월츠는 ‘극의 숫자’를 세는 것이 국제정치에서 매우매우 중요하다고 얘기하는데 아무리 봐도 지금은 내 눈에는 일극 체제 같다. 어떤 이들은 일극이 제일 아름답다며 팍스 로마나, 팍스 아메리카나 그런 소리를 하는데 월츠가 옳은지 제갈공명이 옳은지 팍스~ 이 쪽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냉전시절이랑 지금이랑 어느 쪽이 안정돼 있나?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안정의 기준은 무엇이며 평화의 기준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백악관 입장에서는 냉전시절 러시아가 다루기 편했는지, 혹은 21세기 후세인과 알카에다가 다루기 편한지를 놓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논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세상의 평화와 우아함과 안정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다극은 불안정하다, 양극은 안정적이다- 이 기준으로 논하자면 오늘날의 일극시대는 그러면 뭐란 말인가.


월츠가 21세기 초엽의 이 세계를 과연 몇 극 체제로 보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 부분 후속 공부는 못 해봤다. 딱히 월츠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파고들려는 마음도 없고. 다만 월츠 식으로 보자면 아마도 오늘날의 조지 W 부시 하는 짓을 마음에 들어할 것 같지는 않다. 월츠가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학자들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하는데, 전통적인 현실주의자답다는 생각도 든다. 그것이 논리적인 귀결이다. 브레진스키도, 키신저도 부시의 이라크전쟁에는 반대했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현실주의자들의 세상이 텍사스 사이비 카우보이식 근본주의보다는 그래도 쿨한 것 같기도 하다.


국가를 하나의 행위자로 설명하면서 너무 인성화해놓은 감이 있다. 국제정치와 국내정치의 논리는 다르다는 것은 알겠는데,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들 행동하는지를 국내정치와 100% 갈라놓을 수 있을까. 또 오늘날 국가보다 때로는 더 세어보이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흐름 같은 것들은 반영돼 있지 않다 보니 역시나 이젠 유효성이 떨어지는 듯하다고 할까. 재미있는 분석틀들이 나오고 단순명료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설명이 되어있긴 한데 옛날책 읽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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