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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룬다티 로이,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

딸기21 2007. 1. 15.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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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 The Ordinary Person's Guide to Empire (2004)
아룬다티 로이 (지은이) | 정병선 (옮긴이) | 이후 | 2005-09-29

 

 

 

 

 

위기가 소비되면서 닳고 닳아버리는 것보다 더 슬픈 일도 없습니다.(그런 사례를 확인하려면 2002년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과 인도의 구자라트 주를 보십시오.) 

위기 보도는 우리에게 이중의 유산을 남겨주었습니다. 정부들이 위기관리의 기예(위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기술)를 갈고 닦는 동안 저항운동 진영은 계속해서 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일종의 혼란스런 함정에 빠지고 있습니다. 

... 스펙터클로서의 위기가 오랜 전통을 가진 진정한 시민 불복종의 원리와 단절하고, 점차로 실질적이기보다는 상징적인 저항의 도구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 오늘날의 고민입니다. ... 저항운동과 정당의 선거 캠페인이 모두 스펙터클을 좇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추구하는 스펙터클의 종류가 무척 다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13~15쪽) 

 

부시 때리기는 재미있다. 그가 쉽고도 그럴싸한 표적이기 때문이다. 그가 위험하고, 거의 자멸의 길로 가는 조종사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부시라는 인물 자체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은 그가 조종하는 기계이다. (44쪽)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기에 처해 있는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대에 민주 정체 국가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민주주의 국가는 인도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민주주의 국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는 미국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교훈적인 사례, 온갖 계획들이 시도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는 이라크입니다. ... 제국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60~61쪽) 

 

민중의 권리가 공격당할 때면 여러분은 언제나 그들과 연대해 왔습니다. 그들이 여성이든 아이든, 박해받는 시크교도든 무슬림이든, 노동자든 관개용수를 거절당한 농민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인간성에 대한 예민하고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감각이 다가올 시대에 우리의 무기가 되어야 합니다. ... 미국의 이라크 점령과, 우리의 들판, 가정, 강, 일자리, 기간 시설, 자연자원을 강탈하는 행위가 동일한 과정의 산물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86~87쪽)

 

부커상 수상작인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이 번역돼 나왔을 때 어쩐지 끌려서 사놓고 결국 못 읽은채 책은 어디론가 없어져버렸다. 그 뒤 몇 년이 지나면서부터, 로이의 이름은 점점 더 자주 들려오기 시작했다. 세계화의 횡포에 반대하는 투사,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운동가, 다보스 포럼에 맞선 빈자들의 세계운동 ‘세계사회포럼(WSF)’에 참석하는 대표적인 지식인 등등. 

 

로이의 이름에선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는 로이의 강연과 기고문들을 모은 것인데, 그동안 외신에서 많이 보았던 사건들과 이슈들로 되어 있어서 내 입장에선 읽기 편했고 되새김질하는 재미도 있었다. 날카롭다. 

 

내 친구 누구는 반다나 시바와 아룬다티 로이가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두 사람’이라고 한 적 있다. ‘인디라 간디가 저 세상에서 웃겠다’고 말하고 넘어갔는데, 아무튼 로이와 반다나 시바의 이름은 따로 떼어놓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이 책은 모음집이라서 반다나 시바의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같이 하나의 사상체계-대안의 세계관으로서 정리가 잘 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통렬하면서도 힘이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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