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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일곱 딸들 -완전 내 취향!

딸기21 2006. 8. 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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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일곱 딸들  The Seven Daughters of Eve
브라이언 사이키스 (지은이) | 전성수 (옮긴이) | 따님 | 2002-02-20



딱 내 취향인 책이다. 요사이 과학으로 다시 쓴 역사, 혹은 거창한 말로 하자면 ‘과학과 역사의 만남’을 시도한 것들을 아주 재미있어하고 있는데, 이 책은 그 시초 격에 해당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명성은 들었지만 이제야 읽었다. 꽤 상당히 매우매우 재미있었다.


옥스퍼드대학에 있던 사이키스의 연구팀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모계 유전된다는 점에 착안, 유전자 계보(클러스터)를 파악하고 돌연변이를 검사했다. 그렇게 해서 엄마의 엄마의 엄마를 추적하는 방법으로 유럽인의 조상이 7명의 여성들(이브)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밝혀냈는데, 전세계로 치면 33명의 여성들이 현재 거주하는 모든 지구인들의 조상이 된다. 


미토콘드리아 이브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 책에서 워낙 많이 언급되는 것인데다, 지난번 황우석 파동 때 스너피(아프간하운드)가 진짜 체세포 복제동물인지 아닌지를 체크한다며 했던 것도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검사한 거였다. 과학에 관심 없는 이들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래저래 DNA 얘기에 우리가 귀를 닫고 살 수는 없는 형편이 된 것은 분명하다.


선사시대를 복원하는 일에서도 빗살무늬토기 따위를 놓고 인간이 어디서 왔을까 하는 식의 연구방법은 이제 효력이 다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DNA 분석 이용해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 큰 흐름인 듯하다. 한 10년, 20년 사이에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 체계적이고 엄밀하다는 의미의 ‘과학적’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과학분야에서 새롭게 생겨난 방법들을 가지고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들이 활발한 모양인데 윌리엄 맥닐이나 루카 카발리-스포르차(이 책에선 계속 ‘스포르자’라고 번역했다)나 재레드 다이아몬드나, 모두들 이런 작업들을 대중적으로 소개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아프리카기원설과 다지역기원설(네안데르탈인이냐 호모 사피엔스냐) 하는 문제에서는 최근 과학저널 인용한 외신들 봐도 그렇고 아프리카기원설이 거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 책에 실린 미토콘드리아 이브를 찾는 작업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사이키스네 연구팀이 그 연구를 할 적만 해도 두 주장이 팽팽했기 때문에, 이 논쟁에 대해 담은 부분은 지금하고는 벌써 조금 시차가 느껴진다.


아프리카기원설-다지역기원설 정도로 대립의 폭이 큰 것은 아니지만, 사이키스 팀과 카발리-스포르차 팀의 대립도 꽤 대단했던 듯하다. 이것은 인류의 기원 정도에 해당되는 거창한 논쟁은 아닌데, 사이키스 팀은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 현생 유럽인 80%가 과거 수렵채집인들을 뿌리로 하고 있다고 하고, 카발리-스포르차 팀은 (구체적인 수치는 없지만) 유럽인들 대부분이 중동 비옥한 초승달에서 건너온 농경인들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했다. 카발리-스포르차의 책 중에서는 국내에 번역된 ‘유전자 사람 그리고 언어’를 재미나게 읽었는데 인류의 이동 중 유럽 부분에서 굉장히 중요한 축으로 ‘초승달→유럽’으로의 이동을 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이키스는 이 논란이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자체의 유효성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면서 피가 말랐던지 그 부분을 상세하게 썼는데 나중에 카발리-스포르차도 인정을 했던 것으로 나온다. 카발리-스포르차의 책을 워낙 재밌게 보았던지라 이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고, 또 카발리-스포르차에 대한 캐릭터 묘사(“루이지 루카 카발리-스포르자 교수는 그 명성에 못지 않게 뛰어난 품위를 지녔다. 70대 후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꼿꼿한 자세와 깔끔하게 빗어올린 백발의 그는 낮에는 학회와 바삐 돌아가는 회의실에서, 밤에는 저명 인사들만 접대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언제나 행동이 자연스럽다. 그의 연구분야에서 그가 미친 영향과 기여는 아무리 과장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159쪽)도 재미있었다.


뒷부분에는 유럽의 엄마들인 일곱 이브에게 이름을 붙여서(우설라, 제니아, 헬레나, 벨다, 타라, 캐트린, 재스민) 각각을 연대 순으로 유럽 곳곳에 배치를 했다. 수렵인에서 농경인까지를 아우르는 그들의 생활을 가상으로 복원했다. 꼼꼼히 읽지 않고 이 부분은 슬렁슬렁 넘어갔는데 그런대로 참신한 시도였던 듯하다.


책 전반을 감도는 ‘영국식 유머’도 재미있었다. 
“해물 오믈렛에 블루 라군은 내 비위에 전혀 맞지 않았다. 큐라소(블루라군 칵테일을 만들 때 쓰는 술 이름)의 푸른 색깔을 내기 위해 무엇을 사용하는지는 모르지만 위 속에 들어가서도 그 색깔이 바뀌지 않는다는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을 금방 알게되었다.” (106쪽) 술 먹고 토했다는 얘기를 이렇게나;;


리처드 도킨스 식의 다소 씨니컬하면서도 재치있는 문체 덕에 내내 웃으며 책장을 넘겼지만 저자의 사고방식은 균형잡혀 있고 학자치고는 저널리스틱하면서도 멋진 부분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백인들의 수탈에 시달려 DNA검사 따위엔 학을 뗀 호주 원주민들에 대한 아쉬움이 담긴 그의 문장. 


“언제 어떻게 최초의 원주민이 호주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유전학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 역사가 나와 같은 유럽인의 것이 아니라 호주 원주민들의 것임은 분명하다. 그것은 그들의 역사이지 나의 역사가 아니다. 물론 나로서는 그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우리에게도 들려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298쪽)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어떤 사회과학자들의 책보다도 설득력이 있는 것이, 인종이라는 허깨비 개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이런 과학자들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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