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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사람, 그리고 언어- 꼼꼼하게 공부하며 읽어야 할 책

딸기21 2006. 3. 1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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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사람, 그리고 언어 

루이기 루카 카발리-스포르차 지음, 이정호 옮김, 지호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을 때 매우 찬탄하면서 그 바탕이 된 윌리엄 맥닐의 책과 카발리-스포르차의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그동안 나오지 않았거나 절판됐던 두 사람의 책이 작년에 잇달아 출간됐다. 전자는 ‘전염병의 세계사’이고 후자는 바로 이 책 ‘유전자, 사람, 그리고 언어’다. 말하자면 이 책들은 세트로 묶어서 함께 공부하면 좋은 것들이다. 맥닐의 책은 다이아몬드가 언급했던 ‘주저(主著)’에 해당되고, 카발리-스포르차의 이 책은 주저라기보다는 강연 원고를 정리한 것이다. 1994년 미국에서 출간됐다는 ‘인간 유전자들의 역사와 지리학’을 읽을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 책은 번역돼 나오지 않았으니 그냥 이 책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주저’가 아니라고 했지만 책은 아주 재미있었다. 페이지마다 노란 색연필로 밑줄 그은 부분이 많았다. 그만큼 찬찬히 정리해가며 공부할 것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책은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현생 인류의 조상들이 지구상으로 흩어져나간 과정(인류의 ‘팽창’)을 유전적, 언어학적으로 분석한다.

유전자 분석이라는 방법론이 등장한 뒤 필드워크를 통해 특정 생물종을 조사하는 방식의 ‘개미 생물학’(에드워드 윌슨 류)은 분자생물학에 주류 자리를 내준 것 같다. 카발리-스포르차는 ABO식과 RH + - 식 혈액형 같은 기본적인 유전적 대립인자에서부터 지중해빈혈증 같은 종양들까지 포괄하는 좀더 복잡한 단백질 대립인자들을 이용해 인류 조상들의 이동 경로를 살핀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의 초창기 이동 경로를 추측하는 두 가지 축은 유전자와 언어다. 고도의(나로서는 알기 힘든) 수학적 계산을 이용한 ‘유전자 거리’라는 것을 통해 각 대륙 사람들의 유전적 거리와 분기(分岐) 시점을 추정하는데,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특성상 ‘가설’일 수밖에 없지만 가설을 수립해나가는 과정이 구체적이고 재미있었다. 동시에 저자는 언어학적인 분석을 통해 유전자 거리를 보완해간다. 고고학에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오차를 나이테 측정법으로 보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점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를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다.

눈에 띄었던 것은 인류 팽창 경로를 유전적, 언어학적으로 추적하면서 ‘주성분 분석’이라는 방법론을 도입한 점이다. 예를 들자면 유럽인들의 이동 역사를 살피는 데에는 여러 가지 고려할 요소들이 있다. 가장 먼저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것은 중동(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오늘날의 유럽 대륙으로 농업이 전파되고 인류의 대규모 이주가 뒤따랐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첫 번째 주성분’이 된다. 유럽의 북쪽과 남서쪽을 각기 출발점으로 해서 이뤄진 두 번째 팽창은 ‘두번째 주성분’이 되고, 헝가리에 우랄어족을 형성케한 초원 유목지대(흑해 북부)로부터의 팽창은 세 번째 주성분이 되는 식이다. 이렇게 다섯 개의 주성분을 골라 각각 1번부터 5번까지 순서로 가중치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역자 설명을 보니 카발리-스포르차는 특히 수학적 모델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덕택에 이 책은 역사책이면서 생물학 책이면서 뭔가 멋져 보이는 수학모델들까지 등장하는 알찬 저술이 됐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학제간 연구 방식을 직접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에 소개된 연구가 실천적으로는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기 위한 작업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 점에서도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일맥상통한다(다이아몬드가 카발리-스포르차의 작업에 워낙 많이 의존하고 있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한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우월하다는 믿음”이라고 말한 것이 인종주의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 적절한 정의일 것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자신들이 속한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우월한 유전자, 염색체, 또는 DNA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인종들에 비해 월등하다는 믿음이 바로 인종주의다. 현재의 미국 상황이 바로 인종주의적이다. 외국에서 미국으로 전화를 걸 때 맨 먼저 국가번호 1을 눌러야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p.20)

저자는 인종주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뭐, 새로울 것은 없다. 뒷부분 미국에 대한 것은 대단히 ‘포괄적인 해석’이며 다분히 시니컬한 풍자의 냄새를 풍기지만 말이다. 저자는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자신의 불행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려는 욕망"(p.22)이라고 지적한다.

적어도 서구에서, 최근에는 인종주의를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이 금기시돼 있다. 문득, 어쩌면 지금은 ‘종교’가 이런 ‘불만 떠넘기기’의 도구로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야 아직까지도 ‘근거 없는 인종주의’가 판을 치고 있지만 근래에는 미국 따라하기가 지나치다 못해 ‘이슬람 미워하기’까지 따라하는 듯하다. 모든 분란의 원인을 특정 종교로 몰아붙이는 행태는 신(新)인종주의 내지는 ‘문명충돌주의’로 명명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구조적인 무지 -대한민국의 서구 추종적 교육에서 유래된-에서 나온 단순한 인종주의도 있지만 말이다.

여담이지만 몇 달 전 아프리카에 다녀오면서 “흑인들은 유전적으로 머리가 나쁘지 않으냐”라는 말을 듣고 기겁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생각나서 하는 얘기다. ‘배울 만큼 배운 분이 왜 이러시나’ 싶었지만 대화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던지라 긴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 말을 했던 분이 우리나라의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을 대표한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아무튼 그것이 ‘인종에 무지해 인종주의에 넘어가버린’ 대한민국 사람들의 현실의 일단임은 분명하다.

인류는 기나긴 시간 동안 생물학적, 문화적 변이를 거쳐 왔다. 많은 이들이 문화적 변이와 생물학적 변이를 혼동한다. 아프리카의 대학생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해서 미국인들(유전적으로는 참 의미 없는 기준이다)보다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딱 그런 태도다. 인종주의의 첫 번째 징표는 '이러한 우세함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고 믿는 것’(p.21)이다. 카발리-스포르차는 생물학적 변이 중에도 ‘눈에 보이는 변이와 보이지 않는 변이’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도 여러 가지 함정들이 존재한다. 지구는 둥글다. 유전적 변이는 불연속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세상에는 얼굴이 검은 사람/흰 사람/노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간 정도로 갈색인 사람, 많이 검은 사람, 옅은 갈색인 사람 등등 채도 단계별 색상표처럼 여러 가지 얼굴빛을 한 사람들이 지구를 덮고 있다. 수많은 중간단계들이 이어져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무시하고 단순화의 덫에 걸린다.

인종주의의 가장 강력한 기준이 되는 피부색과 몸의 크기는 인간 진화 전체에선 아마도 최근에야 진화한 형질로 보인다(p.25)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기후의 영향으로 변화된 ‘몸 표면’ 만을 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종적 순수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또한 인간은 이형 접합 즉 서로 다른 유전자들이 만나 섞일 때에 질병 감염 위험도 줄어들고 더 강해진다. 인간이라는 종의 생물학적 복잡성으로 볼 때 ‘인종적 차이들’이라는 ‘몸 표면’의 형질에 관여하는 유전자 수는 상대적으로 아주 적다. 저자의 말마따나, 오늘날 인류는 인공적인 기후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피부색쯤이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외국인 노동자들(요새는 이들을 ‘코시안’이라 부른다고 들었다) 차별을 밥 먹듯 하는 이들이야말로, 골치가 좀 아프겠지만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바스크나 베르베르 등에 대한 내용들도 재미있게 읽었다. 바스크라고 하면 아슬레틱 빌바오나 이천수가 뛰었던 소시에다드 같은 축구팀들, 혹은 EPA 폭탄테러 따위 밖에 모르고 있었다. 유전적, 언어학적으로 유럽인들과 그렇게 많이 갈라지는 줄은 미처 몰랐다.

두어군데 앞뒤 표기가 일치하지 않은 것이 나와 ‘쪼가리 번역’을 의심했는데 번역자가 역자 후기에 “학부생들에게 6장 가운데 4장을 애벌번역을 시켰다”고 설명을 해놓았다. 이탈리아 토리노를 영어식으로 ‘튜린’이라 표기한 것을 빼면 대단히 양심적인 번역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번역자는 유전학자라는데 요사이 언론에서 세포주(Cell Line)라고 하는 것을 ‘세포선’이라고 했다. 유전학자인 저자가 기본적인 용어를 몰랐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세포주’라는 말이 일본어 내려받은 번역인지도 모르겠다.

용어 사용에서는 제목의 Popoli(people)를 ‘사람’이라 옮기고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는데 타당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카발리-스포르차가 다루는 내용은 대개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의 인류에 해당되는 것들인지라 ‘민족’으로 옮기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ethnography를 ‘인족(人族)’이라 한 것도 눈에 띄었다. ‘민속지학’ ‘민족지학’ 등으로 하는 것이 매번 어색했는데 ‘인족’이라는 말이 쓰여도 괜찮을 듯 하다. group을 ‘모둠’이라 하고 슬기사람(호모 사피엔스) 곧선사람(호모 에렉투스) 손쓴사람(호모 하빌리스) 등의 한글 표현을 고집한 것도 칭찬해주고 싶다. (이왕 애쓰는 김에 번역자 註를 맨 뒤에 몰아넣지 말고 해당되는 페이지 말미에 넣었으면 더 편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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