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우드로 윌슨의 '14개 조항'

딸기21 2011. 11. 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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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은 미국 28대 대통령(1913-1921 재임)이자 프린스턴 대학 총장을 지낸 학자이고, 또 교육자이기도 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국사 교과서에서 윌슨의 이름을 처음 봤습니다. 윌슨은 한국 학생들에게는 1919년 3.1 운동과 짝을 이뤄 등장하는 이름이죠. 윌슨의 이른바 14개 조항, '민족자결주의'가 3.1운동에 영향을 미쳤고, 3.1운동은 다시 중국의 5.4운동을 촉발시켰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윌슨의 14개 조항, 1차 대전 후 체제의 '이상'을 담다

윌슨1918년 1월 8일 미 의회 상하원 양원 합동회의에 참석해 1차 대전(1914-1918)을 끝낼 ‘강화(講和) 조건’에 대한 구상을 밝혔습니다. 이 연설에서 밝힌 14개 조항은 윌슨이 생각한 평화의 기본 조건인 셈이었습니다. 이 조항들은 전후 체제의 '이상'을 설명하는 이론적인 틀이 됐고, 1920년 유엔(United Nations)의 전신 격인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 만들어지는 토대가 됐습니다.

윌슨이 의회에서 '14개 조항'을 설명하는 모습입니다. 사진은 에머슨 켄트 닷컴이라는 곳에서 퍼왔습니다. 
(이 사이트는 History for the relaxed historian 을 내걸고 있네요. 재밌군요)

 

‘민족자결주의’로 알려진 윌슨의 14개 조항은 열강에 점령돼 있던 식민지 민족들에게 희망을 안겨줬습니다. 이 연설 이후 일제 식민지 점령 치하였던 한반도에서도 실제로 3.1운동과 같은 전국적인 반(反) 식민지 대중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윌슨이 구상한 체제는 '이상'이었을 뿐, 현실에서의 국제연맹 체제는 어디까지나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체제였습니다. 국제연맹 체제를 떠받치는 '국제사회'는 1차 대전 승전국들만의 세계였지요. 그들이 연합해 우세한 힘을 가짐으로써 침략세력이나 평화에 반대하는 세력의 도발을 억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작 미국은 가입하지도 않은 '전후 국제연맹 체제'

그렇다고 무조건 평가절하할 수는 없습니다. 전후의 현실 논리에 입각해있으면서, 동시에 윌슨은 국제연맹을 이상주의적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는 국제연맹이 개별 국가들보다 우위에서 세계의 자유를 수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윌슨은 “국제연맹은 비상 상황에서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진 형식적인 기구가 아니다”라면서 “국제연맹을 생명력 있는 기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 의견을 조율하면서 최선의 판단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상원의 가입안 거부에 부딪쳐 국제연맹에 들어가지도 못했지요. 이 때문에 국제연맹은 역사적인 국제평화기구의 출범이라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하고 형식적인 기구로 전락했고, 2차 대전이라는 더 큰 참화를 막아내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럼 
윌슨의 14개 조항을 살펴볼까요. 좀 길지만, 전문을 옮겨봅니다.
(제가 해석한 거라서... 틀린 부분이 있다면 지적 환영합니다~)
 

1. 협의는 공개적으로 진행돼야 합니다. 협의 이후에 어떤 종류든 비밀 국제조약이나 회담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외교는 항상 솔직하고 공개적인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Open covenants of peace must be arrived at, after which there will surely be no private international action or rulings of any kind, but diplomacy shall proceed always frankly and in the public view. 
 
2. 평화 시와 전시를 막론하고 영해 이외의 공해에서는 항해권을 완전히 보장해야 합니다. 다만 국제협약에 따라 국제사회가 공해를 전체 혹은 부분적으로 봉쇄했을 경우는 예외입니다.

Absolute freedom of navigation upon the seas, outside territorial waters, alike in peace and in war, except as the seas may be closed in whole or in part by international action for the enforcement of international covenants. 
 
3. 평화에 동의하고 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협력하는 모든 나라들 사이에는 가능한 모든 경제적 장벽을 없애고 동등한 무역 조건을 확립해야 합니다. (우드로 윌슨도 FTA를 바랐던 걸까요 -_-)

The removal, so far as possible, of all economic barriers and the establishment of equality of trade conditions among all the nations consenting to the peace and associating themselves for its maintenance.
 
4. 군비는 (국가 간) 적절한 상호 안전보장을 통해 안보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 수준으로 감축해야 합니다. (이상적이죠? ^^;; 그 후 미국이 군축의 최대의 적이 된 걸 생각하면... )

Adequate guarantees given and taken that national armaments will be reduced to the lowest points consistent with domestic safety. 
 
5. 식민지의 주권 문제를 다룰 때, 관련돼 있는 주민들(영토 조정의 대상이 되는 식민지의 주민들을 지칭합니다)의 이해관계는 그들이 향후 속하게 될 정부(즉 식민지 주민들이 독립하거나 자치를 얻어 새로 세우게 될 정부)의 요구와 완전히 같은 수준으로 무게를 두어야 합니다. 이 원칙을 엄격히 준수한다는 데에 바탕을 두고, 모든 식민지 문제를 자유롭고 열린 자세로, 절대적으로 평등하게 조정해야 합니다. 

A free, open-minded and absolutely impartial adjustment of all colonial claims, based upon a strict observance of the principle that in determining all such questions of sovereignty, the interests of the population concerned must have equal weight with the equitable claims of the government whose title is to be determined.
 
6. 러시아 영토에서 외국군이 철수하는 문제나 혹은 러시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안을 결정하는데 있어, 각국이 완전히 자유롭게 최선의 협조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러시아 스스로 정치 발전과 국가 정책을 독립적으로 정할 권리가 있으며 이를 방해받지 않게 보장해야 합니다. 또한 러시아가 어떤 사회 제도를 택하든지 국제 사회는 진심으로 환영해줄 뿐 아니라, 러시아가 바라거나 필요로 하는 원조를 모두 제공해줄 것입니다. 앞으로 수개월 안에 자매국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러시아를 지원할 것이며, 이는 러시아에 대해 각국이 선의를 갖고 이해하고 있고 이성적이고 이타적인 감정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The evacuation of all Russian territory and such a settlement of all questions affecting Russia as will secure the best and free-est cooperation of the other nations of the world in obtaining for her an unhampered and unembarrassed opportunity for the independent determination of her own political development and national policy, and assure her of a sincere welcome into the society of free nations under institutions of her own choosing; and, more than a welcome, assistance also of every kind that she may need and may herself desire. The treatment accorded Russia by her sister nations in the months to come will be the acid test of their good will, of their comprehension of her needs as distinguished from their own interests, and of their intelligent
and unselfish sympathy.
 
7. 벨기에에 주둔하고 있는 외국군은 철수할 것이며 벨기에의 주권은 곧 회복될 것이며 주권을 제한하려는 어떤 시도도 없을 것이라는 점에 전 세계가 동의할 것입니다. 각국이 서로간의 관계를 정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놓은 법과 체제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데에는 벨기에 처리보다 더 좋은 사례는 없습니다. 이런 치유책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국제법의 구조와 합법성이 손상될 것입니다.

Belgium, the whole world will agree, must be evacuated and restored, without any attempt to limit the sovereignty which she enjoys in common with all other free nations. No other single act will serve, as this will serve, to restore confidence among nations in the laws which they have themselves set and determined for the government of their relations with one another.
Without this healing act, the whole structure and validity of international law is forever impaired. 
 
8. 프랑스 영토는 모두 해방되고 침략 당한 지역도 되찾아야 합니다. 프로이센은 1871년 알자스로렌 문제에서 프랑스에 부당한 행위를 했고, 이 문제는 거의 50년 동안 세계 평화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를 시정해, 모든 이들을 이롭게 하는 평화를 세워야 합니다.

(참고로... 알자스로렌 지역은 1871년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 Prussia 과 프랑스 간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한 뒤 프랑크푸르트 조약에 따라 독일 영토가 됐습니다. 1차 대전 이후 잠시 ‘알자스로렌 독립공화국’으로 떨어져 나왔다가 1919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프랑스에 넘어갔습니다. 1940년 나치 독일에 다시 합병됐다가 2차 대전 이후 프랑스로 되돌려진 곡절 많은 땅입니다.)

All French territory should be freed and the invaded portions restored and the wrong done to France by Prussia in 1871 in the matter of Alsace-Lorraine, which has unsettled the peace of the world for nearly fifty years, should be righted, in order that peace may once more be made secure in the interest of all. 
 
9. 이탈리아 국경을 재조정하는 문제는 확실히 구분되는 민족의 경계선에 따라 정해져야 합니다.

A readjustment of the frontiers of Italy should be effected along clearly recognizable lines of nationality. 
 
10. 오스트리아-헝가리 내 여러 민족들을 보호하고 권리를 보장해줘야 합니다. 그들이 자유롭게 자치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합니다.

The peoples of Austria-Hungary, whose place among the nations we wish to see safeguarded and assured, should be accorded the free-est opportunity of autonomous development. 
 
11. 외국군은 루마니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에서 철수하고 점령 지역을 원상 복구해야 합니다. 세르비아는 자유롭고 안전하게 바다에 접근할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발칸에 있는 여러 나라들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민족정체성과 충성심에 바탕을 두고 우호적인 대화를 나눠 결정해야 합니다. 발칸 국가들의 정치적, 경제적 독립과 영토 보전을 국제적으로 보장해줘야 합니다.

(발칸반도의 민족문제는 1차 대전을 촉발시킨 직접적인 계기였죠. 잘 알려진대로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태자 부부가 오늘날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수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계 청년에게 암살당한 이른바 ‘사라예보 사건’이 그 도화선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즉각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범슬라브주의를 내세워 발칸반도로 세력을 확대하던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도우려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프랑스, 영국이 다시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하면서 전쟁이 확대돼 1차 대전으로 치달았습니다.)

Romania, Serbia, and Montenegro should be evacuated; occupied territories restored; Serbia accorded free and secure access to the sea; and the relations of the several Balkan states to one another determined by friendly counsel along historically established lines of allegiance and nationality; and international guarantees of the political and economic independence and
territorial integrity of the several Balkan states should be entered into.
 
12. 현재의 오스만투르크(오토만) 제국(Ottoman Empire) 영토 중에서 터키 지역은 주권을 완전히 보장해줘야 합니다. 하지만 터키의 통치를 받고 있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절대적으로 방해받지 않는 자치적인 발전과 안전을 보장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다르다넬스 해협은 모든 국가의 배들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교역할 수 있는 통로로 영구 개방해야 합니다. 

(이 부분이야말로, 1차 대전의 유럽측 승전국들이 어절씨구나 하면서 환영했을 구절이 아닐까 싶네요.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14세기 이래로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이 있는 아시아 내륙에서부터 서쪽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지역, 북아프리카, 동유럽 발칸반도와 그리스 등 거대한 영토를 지배했습니다. 1차 대전에서 추축국 편에 섰다가 패함으로써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영토의 대부분을 잃고 오늘날의 터키 영토로 줄어들었죠. 

윌슨은 현재의 터키 지역만 남겨두고, 제국의 나머지 영토에 사는 아랍계와 동유럽계 등 비(非)투르크계 민족들은 독립 혹은 자치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윌슨이 말한 '민족자결주의'의 '민족'은 바로 오스만투르크 제국 밑에 있던 민족들, 윌슨이 말한 '자결'은 바로 그 민족들이 오스만투르크에서 벗어나 개별국가로 독립할 수 있다는 뜻의 '자결'이었을 테지요. 이는 오스만투르크와 역사적으로 경쟁해온 유럽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해체됨으로써 미국과 유럽 열강들은 옛 제국 영토인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점령하거나 세력권에 넣을 수 있게 됐으니까요. 이 부분은
'흑운중의 신월국'을 참고하세요.

이 조항에 나온 다르다넬스 해협은 지중해 동부 그리스에 면한 에게 해와 터키 북부 내륙으로 파고들어간 마르마라 해를 연결하는 해협입니다. 폭 1~6㎞, 길이 61㎞의 작은 해협이지만 지중해와 흑해, 발칸반도와 아시아를 모두 잇는 전략적 요충지랍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해체하고 터키만 달랑 남겨주되, 그나마도 이 해협은 터키의 통제에서 빼앗아야 한다, 는 것이 이 조항의 요지입니다.)

The Turkish portions of the present Ottoman Empire should be assured a secure sovereignty, but the other nationalities which are now under Turkish rule should be assured an undoubted security of life and an absolutely unmolested opportunity of autonomous development; and the Dardanelles should be permanently opened as a free passage to the ships and commerce of all nations under international guarantees.
 
13. 독립된 폴란드 국가가 수립돼야 합니다. 그 영토에는 이론의 여지없이 폴란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 포함돼야 하며, 자유롭고 안전하게 해상에 접근할 권리도 보장돼야 합니다. 정치적, 경제적 독립과 영토 보전도 국제 협약으로 보장해줘야 합니다.

An independent Polish state should be erected which should include the territories inhabited by indisputably Polish populations, which should be assured free and secure access to the sea; and whose political and economic independence and territorial integrity should be guaranteed by international covenant. 
 
14. 강대국과 약소국 모두의 정치적 독립과 영토 보전을 상호보장해주기 위한 목적으로, 특별한 규약 하에 국가 간 연합기구를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A general association of nations must be formed under specifi c covenants for the purpose of affording mutual guarantees of political independence and territorial integrity to great and small states
alike. 


독일의 바덴 공(公)(Prinz von Baden Maximilian. 1867-1929. 통칭 막스 폰 바덴 Max von Baden)은 바덴 공국의 대공 프리드리히1세의 조카로, 평화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로 유명했습니다. 

훗날 히틀러의 2차 대전 빌미가 된 베르사유 조약

1918년 독일 제국 의회는 1차 대전 패배의 징후가 뚜렷해지자 강화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명망가인 바덴 공에게 제국총리를 맡겼습니다. 동시에 독일은 황제(카이저) 통치 국가가 아닌 의회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입헌군주국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덴 공은 군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항복 요구를 받아들였고, 승전국들과의 강화협상에 나섰습니다. 그 해 11월 9일 베를린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바덴 공은 카이저의 퇴위를 선언하고 총리직을 독일사회민주당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Friedrich Ebert. 1871-1925년)에게 넘겨줬습니다(에베르트는 이듬해인 1919년 혁명세력을 무너뜨리고 독일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뒤 베르사유 조약
을 조인했습니다). 
 

바덴 공은 윌슨의 14개 조항을 바탕으로 한 휴전을 지지했습니다. 1918년 11월 11일 11시, 4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근엄해 보이는 윌슨의 사진


1919년 6월 28일, 파리 강화회의의 결과로
31개 연합국과 독일 사이에 베르사유 강화조약(Treaty of Versailles)이 체결됐습니다. 파리 강화회의는 1차 대전 후의 국제관계를 결정한 회의가 된 셈이죠. 

강화조약에는 윌슨이 주장한 국제연맹 규약도 포함됐습니다. 독일은 이 조약에 따라 해외 식민지를 모두 잃고 1320억 마르크의 배상금을 지불하게 됐습니다(훗날 아돌프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이야말로 평화의 장애물이자 독일을 모욕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2차 대전을 일으켰지요).

윌슨은 국제연맹이라는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협상을 계속했고, 191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미 상원은 "국제연맹이 내정을 간섭해올 수 있다"며 베르사유 조약 비준을 거부했습니다. 윌슨은 타격을 입은 채로 1924년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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