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니체의 죽음

딸기21 2010. 8. 25. 09:30
그는 19세기를 살았지만 20세기를 예언한 인물이었다. 독일 철학자이자 시인, 저술가, 미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니체. 그는 해체와 부정과 허무의 철학으로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서양의 근대성 전체에 도전했다.

니체는 1844년 독일 작센 주의 뢰켄에서 태어났다. 개신교 목사였던 아버지는 5세 때 숨졌고, 어머니·누이와 함께 조부모 집에서 자랐다 한다. 본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배웠고, 뒤에는 문헌학을 공부했다. 라이프치히로 옮겨간 뒤에는 그리스 고전문헌을 연구하는 한편 쇼펜하워를 읽고 바그너 음악에 심취했다 한다. 
1869년 스위스 바젤대학의 교수가 되어 고전문헌 강의를 시작했으나 이듬해에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 나가야했다. 하지만 입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두통과 질병에 시달리다 바젤로 돌아왔다.




1872년 발표한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 Udie)>은 그의 정신적 고향이던 그리스 고전과 근대를 넘나드는 예술론을 보여준다. 니체에게 그리스는 우아하면서도 역동적인 삶의 원형인 반면, 근대는 천박하고 더럽혀진 시대였다. 그는 이 저작에서 비판의 대상인 근대문화를 ‘그리스 문화가 사라진 이후에서 현재까지’로 확장시킨다. 
니체는 아폴론적인 이상(理想)과 디오니소스적인 충동을 그리스 문화의 두 가지 예술원리로 보았다. 삶의 기쁨과 슬픔, 긍정과 부정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를 통해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승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에게 삶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으로 비쳐졌던 것은 그리스 비극에 나타난 디오니소스적인 충동이었다.

사회가 안정되고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권태에 빠져든다. 그 결과는 말초적인 쾌락, 그리고 문화적인 타락이다. 니체는 따라서 발전된 사회가 필연적으로 허무주의(니힐리즘)으로 향해간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유럽은 이미 역사적 소명이 끝난 봉건주의와 기독교적 위선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니체는 허무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가 오기를 고대했다. 그가 기다린 새로운 사회는 바로 ‘초인의 사회’였다. 그는 한물 간 도덕 대신 인간 본래의 능력을 극대화한 초인이 등장해서 인류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니체의 철학은 훗날 히틀러의 나치즘에 철학적 발판이 되어주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니체의 말년은 우울했다. 건강이 몹시 나빠진데다 시력마저 약해진 니체는 1879년 35세의 나이에 바젤대학에서 퇴직하고 요양생활에 들어갔다. 강연도 그만둔 채 남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를 떠돌며 집필을 하지만 그 시간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1889년 1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정신병원에 들어간 니체는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병적인 상태에서 보냈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던 니체는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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