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안네가 잡혀간 날

딸기21 2010. 8. 3.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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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8월 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내 프리센가 263번지 앞에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 게슈타포 요원들을 실은 차가 멈춰섰다. 곧이어 건물 안으로 들이닥친 게슈타포들은 건물 안 사무실 벽의 책장을 밀어내고 비밀 다락방에 숨어있던 유대인 가족 8명과 이들을 도와준 네덜란드인 2명을 붙잡아갔다.
잡혀간 유대인 가족은 암스테르담에서 향신료 판매 사업을 하던 오토 프랑크와 에디스 프랑크 부부, 그들의 두 딸인 마곳과 안네, 페터 페퍼와 프리츠 페퍼 형제 등이었다. 프랑크 가족은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하고 유대인 체포령을 내리자 42년 프리센가의 사무실 건물 뒤 비밀 다락방으로 은신해 들어갔다.




프랑크 부부의 둘째딸 안네는 13살 생일에 선물받은 일기장에 42년 6월12일부터 44년 8월1일까지 일기를 썼다. 게슈타포에 붙잡히기 사흘 전의 일기가 소녀의 마지막 기록이 된 셈이다. 당시 프랑크 가족을 도와준 것은 프랑크의 비서로 일한 적이 있던 미에프 히스라는 여성이었다. 안네가 일기를 써온 사실을 알고 있었던 히스는 비밀경찰이 들이닥치자 눈치 빠르게 일기장을 서랍 안에 숨겼다. 
프랑크 가족은 다른 유대인 1015명과 함께 짐차에 실려 독일 치하였던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갔다. 그곳에서 ‘선별작업’을 거쳐 끌려간 이들의 절반에 이르는 549명이 곧바로 가스실에서 학살됐다. 아버지 오토는 남성들과 함께 수용되는 바람에 아내, 딸들과 헤어졌다. 안네의 어머니 에디스는 45년 1월6일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안네와 언니 마곳은 하노버 근처의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옮겨졌다가 45년 3월 티푸스와 굶주림으로 숨을 거뒀다.




The apartment block on the Merwedeplein where the Frank family lived from 1934 until 1942



Anne Frank House


살아남은 오토는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를 해방시키자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고, 끈질긴 조사 끝에 베르겐-벨젠에 있었다는 간호사로부터 아내와 딸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던 소중한 가족의 유품이 있었다. 히스가 오토에게 그동안 맡아두고 있었던 안네의 일기를 건네준 것이다. 히스가 없었다면 안네의 일기가 빛을 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47년 오토는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책으로 펴냈다. 정작 히스가 내용을 읽은 것은, 안네의 일기가 책으로 출판되고도 한참 뒤였다고 한다. 자기 집에 보관해놓고는 있었지만 비록 어린 소녀의 일기라 해도 사생활이니 들춰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오토가 2쇄 발행 뒤 읽어보라고 권해서 그제서야 읽어봤다고 한다. 훗날 히스는 “안네가 잡혀간 뒤 곧바로 일기장을 봤더라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내가 없애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털어놨었다. 98년 <안네 프랑크를 회고하며>란 책을 낸 히스는 “안네 가족을 도와준 것 뿐인데 마치 네덜란드의 유대인들을 모두 도우려 노력했던 것처럼 부풀려진 것 같아 부담스럽다”고 고백했다. 히스는 올 1월 101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다른 어떤 기록들보다도 나치 독일 치하 유대인들의 고난을 생생하게 그려낸 안네의 일기는 그후로도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올초 암스테르담에 있는 기념관 ‘안네 프랑크의 집’은 안네의 생전 모습을 담은 유일한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세계에 공개했다. 20초 분량의 동영상은 안네 가족이 비밀 다락방에 숨기 전인 41년 7월 안네가 아파트 2층 창가에서 고개를 내밀고 이웃의 결혼식 장면을 보는 모습을 담고 있다. 결혼식 주인공인 신부는 당시 안네의 아파트 같은 층에 살고 있었는데, 최근 기념관에 이 영상을 제공했다고 한다. 




안네는 수용소에 갇혀있는 동안에도 함께 있던 아이들에게 직접 지은 동화들을 들려줬다고 한다. 수용소 시절 짧은 기간의 안네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함께 있었던 네덜란드 유대인 생존자들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2008년에는 안네가 8살 때 친구에게 쓴 편지가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안네의 일기는 28년간 수감생활을 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대통령을 비롯,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꿈을 주었다. 하지만 지금도 이 일기를 부인하고 홀로코스트를 옹호하는 이들은 남아 있다. 지난달 21일 스위스 바젤 법원은 “안네의 일기는 역사적인 거짓”이라고 주장한 22세 극우파 청년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독일에서도 이런 주장이 심심찮게 터져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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