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아스완 하이댐

딸기21 2010. 7. 2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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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인들이 수십미터 높이의 기둥들로 이뤄진 룩소르와 카르나크의 신전을 세우고 ‘세계의 불가사의’로 불리는 거대한 피라미드들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나일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범람하는 나일강이 이집트인들에게 비옥한 충적토를 선사해 농경지를 만들어줬던 것, 흘러넘친 강변을 정비하고 관개를 하면서 사람들이 모이고 나라가 생기고 문명이 발전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다.
하지만 나일강은 이집트인들의 생명줄인 동시에 늘 걱정거리였다. 현대에 이르러서까지도 나일강의 홍수는 사람들이 제어하기에는 힘든 상대였다. 이집트를 ‘위임통치’했던 영국은 1889년부터 강이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한 댐을 쌓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1901년 만들어진 것이 아스완 댐이다. 지금은 후대의 아스완 하이댐(High Dam)과 구분하기 위해 ‘로우댐(Low Dam)’으로 불린다.

로우댐만으로는 강의 파괴력을 막을 수 없었다. 인구가 늘어나고 목화밭이 넓어지면서 물을 더 많이, 더 안전하게 쓸 방법이 필요했다. 1952년 청년장교들을 이끌고 혁명을 일으켜 이집트공화국을 출범시킨 가말 압둘 나세르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아스완에 더 크고 더 높은 댐을 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세르와 사이가 좋았던 미국, 영국이 돈을 댔다. 하지만 나세르가 아랍사회주의를 내세워 아랍권을 규합하려 하자 두 나라는 원조를 끊고 등을 돌렸다.



아스완 하이 댐에서 나세르호를 봤을 때에는 증말 바다처럼 넓었는데, 이렇게 보니 느낌이 안 사네.


나세르는 60년 소련의 도움을 받아 다시 건설을 시작했다. 대역사인 만큼 난제도 많았다. 수몰지구에는 9만명 넘는 이들이 살고 있었다. 이들을 모두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했다. 뿐만 아니라 물에 잠길 지역에는 람세스2세가 지은 위대한 유적 아부심벨 신전(아래 사진)이 있었다.
배짱 좋은 나세르는 세계를 상대로 을러대는 방법을 택했다. “우리는 댐이 필요하다. 돈을 주지 않으면 신전을 가라앉힐 수밖에 없다.” 세계인의 유산인 아부심벨이 물속에 가라앉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던 유네스코와 국제사회가 돈을 모아주었고, 문화재 전문가들도 파견했다. 아부심벨 신전을 통채로 옮기는 것만 해도 엄청난 작업이었다. 지금 아스완 댐 위편으로 옮겨진 아부심벨 신전에는 토막토막 잘라내 다시 쌓은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게 24개 유적을 들어올렸다.




70년 7월 21일, 마침내 아스완 하이댐이 완공됐다. 높이 11m에 길이 3830m. 공사비로 총 10억달러가 들어갔다. 문화재 복원에는 서방 전문가들이 참여했지만 댐 건설은 이집트 공학자이자 건축가였던 오스만 아흐메드 오스만이 맡았다. 훗날 정치인으로 변신하기도 했던 오스만이 발굴작업도 지휘를 했다 한다. 돈은 소련이 냈기 때문에 준공기념탑에는 아랍어와 러시아어가 나란히 쓰여 있다.
댐이 완공되어 생겨난 거대한 호수에는 ‘나세르호’라는 이름이 붙었다. 저장된 물을 이용해 연간 이모작의 관개농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자랑스런 댐의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관개농지에서 흔히 나타나는 흙의 염화현상이 심해졌고, 토양 침식이 심해졌다고 한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인류의 유산들은 그대로 저수지 밑에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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