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숱한 비화를 낳은 탕산대지진

딸기21 2010. 7. 27. 21:27
1976년 7월, 중국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 주변의 한 우물에서는 하루에 세번씩 우물의 물이 갑자기 솟구쳤다 가라앉았다. 또 다른 우물에서는 그 달 들어서 가스가 세 차례 새어나와 주민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지진의 전조였다. 탕산은 물론이고 베이징, 톈진, 보하이, 장자커우 등지에서 이상 징후가 속속 탐지되고 있었다. 

국가지진국에서 일하던 왕청민(汪成民)은 탕산 주변 지각작용을 분석해 “7월22일부터 8월5일 사이에 큰 지진이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자거우쾅(馬家溝曠) 지진대의 지진전문가 마시룽(馬希融)과 겅칭궈(耿慶國), 탕산시 지진사무실의 양유천(楊友宸) 등도 상부에 지진 가능성을 보고했다. 


대지진이 일어나기 보름도 더 전에, 이미 이렇게 ‘경보’는 나와 있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에 정신이 팔려 있던 공산당 상층부는 지진 경보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급 관리들의 경고는 묵살됐다. 뿐만 아니라 양유천은 갑자기 ‘노동개조’ 대상이 돼 지진 직전 사무실을 떠야 했다. 


왕청민은 60명을 직접 만나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 이르고 대책을 당부했다. 왕청민에게 귀기울인 사람 중 하나는 칭룽(靑龍) 만족 자치현의 관리 왕충칭(王春靑)이었다. 7월 25일과 26일, 칭룽 자치현 현장 란광치(?廣岐)는 왕충칭의 말을 듣고 비상회의를 열었다. 47만명의 주민들에게 지진시 대피법을 알리고 건물 안전을 점검했다. 란 현장의 결정은 정치생명을 건 도박이었다. ‘주민들을 들쑤신다’는 이유로 인민재판을 받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었다.




7월28일 새벽 3시 42분, 천지가 흔들렸다. 20세기 지진 중 최악의 피해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탕산 대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규모 7.8, 15초에 걸친 지진으로 “온 땅이 평평해졌다.” 

100만명이 살고 있던 탕산 시는 초토화돼 남아 있는 건물이 없었다. 강력한 여진들이 16시간 동안 이어졌다. 중국 정부는 당초 24만~25만5000명이 죽었다고 발표했다. 나중에 허베이성 혁명위원회는 “65만5000명이 숨지고 77만900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현명하고 용감한 관리들을 두었던 칭룽현에서는 기적이 일어났다.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던 것이다. 란광치는 포상을 받는 대신 오히려 함구령을 들어야 했다. 


1976년은 중국에는 ‘저주받은 해’였다. 인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저우언라이(周恩來)가 그 해 1월 숨을 거뒀고, 6월에는 공산당 지도자 주더(朱德)가 사망했다. 탕산 대지진으로 수십만명이 죽어갈 때, 다른 곳에서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정치적 재앙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진 한달 여 뒤인 9월 9일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숨졌다. 정치적으로도 지진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덩샤오핑과의 권력다툼에 혈안이 돼있던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江靑)은 “수십만명이 죽었을 뿐이다. 그래서? 덩을 탄핵하는 것은 8억 인민과 관련된 문제다”라 주장했다. 장칭과 4인방에게 탕산 대지진을 들먹이는 덩샤오핑은 ‘혁명을 방해하려 지진 공포를 부추기는 존재’였다. 중국 정부는 유엔의 지진 구호 제의도 거부했다.



묵살된 지진 경보와 칭룽현의 기적은 사람들의 눈앞에서 자취를 감췄다. 마오의 후계자로 내정된 화궈펑(華國鋒)이 탕산을 한 차례 찾아갔지만 ‘개인적인 방문’일 뿐이었다.


시대가 바뀌어 덩샤오핑이 권력을 잡았으나 탕산의 진실은 그후로도 오래도록 묻혀있어야 했다. 95년 유엔은 “당국의 현명한 대응과 준비로 재앙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칭룽의 기적을 조명했다. 10년 뒤인 2005년에는 경보 과정에 관여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장칭저우(張慶洲)의 조사 보고서 <탕산경세록>이 출간돼 당시의 비화를 폭로했다. 



지난 12일 탕산에서는 이란성 쌍둥이 남매가 지진으로 운명이 바뀌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탕산 대지진>이 개봉됐다. 개봉식에 온 주민 1만명은 빗속에서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희생자 유족들과 생존자들, 제작진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중국 언론들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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