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장기집권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고 ‘레짐 체인지(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라크인들은 물론 국제사회가 일제히 ‘이라크 정치는 이라크인들의 손에 맡기라’고 했지만, 미국의 보수파 이데올로그들은 “오랜 독재에 시달려온 이라크인들에겐 스스로 후세인을 몰아낼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지요.
그러나 미국의 왜곡된 선전과 달리, 이라크 현대사에는 부패한 왕정을 몰아낸 혁명이 분명 있었습니다. 1958년의 ‘7·14 혁명’입니다.
당시 이라크는 현 요르단 왕실과 한 뿌리인 하솀 왕가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하솀 왕가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계보라 주장하고 있지요. 하지만 당시 이라크 왕실의 정통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습니다. 이 왕정이 탄생한 것은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1932년 파이잘1세 국왕이 즉위하면서였으니, 역사가 참 일천했지요.
당시 아랍권에는 ‘범아랍주의’로 표현되는 민족주의 정서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라크인들은 왕정을 서방의 괴뢰정권이라 보았고, 터키 등 이슬람권 여러 나라에서 그랬듯 ‘자유장교단’을 비롯한 엘리트 젊은 장교들의 왕정 전복 시도가 잇따랐습니다. 실제 왕정은 미국·영국 석유회사들에 유전 이권을 넘겨주기 바빴습니다. 더군다나 2차 대전이 일어나자 영국이 다시 이라크를 점령, 47년까지 통치를 했기 때문에 국왕은 허수아비에 불과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이 불황을 겪자 이라크 경제도 침체에 들어갔습니다.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고 삶의 질이 떨어졌습니다. 왕정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은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영국 통치 시절부터 각료를 지내고 총리를 무려 7차례나 했던 누리 알 사이드는 이라크석유회사(IPC)의 수입 70%를 외국 투자자가 아닌 이라크 정부로 귀속시키고 인프라 투자를 늘리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외국인 자문단’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외국인 자문단의 입김이라니.. 사실상 식민통치의 연장이었다고 봐야겠죠.
55년 이라크는 이란·파키스탄·터키와 ‘바그다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바그다드 협정으로 '중앙조약기구(CTO)'라는 것이 만들어졌는데, 미국의 세계전략에 따라 생겨난 일종의 지역안보동맹체제였습니다(북대서양조약기구, 바르샤바조약기구 같은 지역안보체제가 냉전 시대에 미.소 주도로 많이 만들어졌고 CTO도 그 중 하나). 그러나 이집트에서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계기로 한 반서방 운동이 거세지면서, 미국의 의도와 달리 중동의 민족주의 흐름이 더욱 커졌습니다.
58년 1월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을 멤버로 하는 ‘아랍연합공화국(UAR)’이 출범했습니다. 이에 고무된 이라크의 자유장교단은 7월 14일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뒤집어 엎었습니다. 파이잘2세 국왕과 압둘 일라 왕세자, 왕실 측근이던 알 사이드 총리는 살해됐습니다. 알 사이드는 여장을 하고 도망을 치려다가 혁명 다음날 붙잡혀서 죽었다고 하는군요.
혁명을 이끈 압둘 카림 카심(위 사진)은 이집트 가말 압둘 나세르의 범아랍주의를 추정하는 ‘나세리스트’였습니다. 그는 혁명 뒤 총리 겸 국방장관이 됐습니다. 이듬해 카심 정권은 바그다드 협정을 탈퇴하고 소련과의 관계를 강화했습니다. 또 공산당 창당을 허용하고 석유산업 국유화를 추진했습니다.
카심 정권이 한 일 가운데 무엇이 가장 미국을 자극했을까요? 소련에 가까워진 것? 석유산업을 감히 국유화하려 한 것?
어찌 됐건, 미국은 카심 정권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63년까지 총리직에 있던 카심은 정권 내부 권력투쟁으로 기반이 약해졌습니다. 63년 바트당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카심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사담 후세인은 69년 바트당의 2인자가 됐고 79년에는 대통령이 돼 철권 독재자로 군림했습니다.
64년의 바트당 쿠데타를 지원한 미 중앙정보국(CIA)는 후세인이 90년대 미국에 반항할 때까지 충실히 그의 정권을 지원했습니다. 앞서 이란에서도 51년 민족주의자 모사데크 정권이 역시 석유산업 국유화를 추진했다가 미국에 밉보였지요. 결국 53년 미 CIA와 영국 MI6의 공작으로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쫓겨났고 친미 파흘라비(팔레비) 왕조가 다시 실권을 잡습니다. 이 과정이 이라크에서도 반복된 겁니다.
그래놓고 후세인이 독재자인데 국민들이 무능해서 '대신 몰아내주겠다'고 했으니, 누가 믿을까요.
* 7월 14일은 프랑스 혁명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내맘대로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숱한 비화를 낳은 탕산대지진 (0) | 2010.07.27 |
---|---|
아스완 하이댐 (0) | 2010.07.20 |
미-소 이어준 소녀 서맨사 스미스 (1) | 2010.07.06 |
나치제국의 내분, '긴칼의밤' (0) | 2010.06.30 |
아르헨 축구의 악몽, '푸에르타 도세 참사' (0) | 2010.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