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자유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영어로는 Irish Free State, 아일랜드어로는 Saorstat Eireann. (아일랜드어(켈트어? 게일어?)는 언제 보아도 신기합니다. 한때 켈틱음악에 빠져 지내던 기억이 새록새록...)
아일랜드자유국- 이름도 생소한 이 나라는, 영국과 아일랜드 간 협정에 따라 1922년 탄생한 국가랍니다. 아일랜드인들은 1800년에 채택된 영국-아일랜드 연합법(Act of Union of 1800)에 따라 영국에 자치권을 요구하는 아일랜드자치운동(Irish Home Rule Movement)을 벌였으며 1886년, 1893년, 1914년, 1920년 네 차례에 걸쳐 자치법안(Home Rule Bills)을 통과시켰습니다.
아일랜드인들은 1800년에 채택된 영국-아일랜드 연합법(Act of Union of 1800)에 따라 영국에 자치권을 요구하는 아일랜드자치운동(Irish Home Rule Movement)을 벌였으며 1886년, 1893년, 1914년, 1920년 네 차례에 걸쳐 자치법안(Home Rule Bills)을 통과시켰습니다.
자치(Home Rule)를 향한 아일랜드인들의 움직임은 1912년 전기를 맞았습니다. 자치법안이 그 해 통과돼 1914년 발효를 앞두게 된 것이죠.
아일랜드를 위성사진으로 보니... 참 푸르군요;;
하지만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모든 지역에서 항상 '분열'이 문제가 되듯이... 아일랜드도 갈라져 있었습니다. 북아일랜드의 친영국계 정당으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대신 연합을 유지하기를 바라며 독립운동 세력과 맞섰던 얼스터 연합당(Ulster Unionists Party)은 북아일랜드 지역에까지 ‘자치’를 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면 기필코 저지하고 나설 것임을 천명했습니다. 1916년 더블린에서 아일랜드공화국 수립을 외치며 일어난 봉기는 영국군에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봉기를 주도한 이들은 처형됐습니다.
The Birth of the Irish Republic>이라는 작품입니다. Walter Paget이라는 화가가 그렸습니다.
1919년에는 독립운동 세력과 영국 간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독립운동 세력은 그 해 독립공화국 수립을 선언했습니다. 이듬해인 1920년에는 아일랜드정부법에 따라 더블린을 중심으로 한 남아일랜드와 벨파스트를 중심으로 한 북아일랜드에 2개의 자치의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요거슨 아일랜드자유국의 문장(?)
영국의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1863-1945) 총리와 젊은 정치인 윈스턴 처칠(Sir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1874-1965), 그리고 아일랜드 측 대표인 아서 그리피스(Arthur Griffith. 1872-1922)와 마이클 콜린스(Michael John Collins. 1890-1922)가 협상을 시작했고, ‘아일랜드자유국 협정’을 체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협정에 따라 아일랜드 32개 주 가운데 26개 주가 일단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아일랜드자유국’이라는 이름의 입헌군주국으로 묶였습니다. 형식상 영국 국왕이 국가수반이었으나 아일랜드인들은 독립공화국을 계승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1921년의 조약을 통해 남북 아일랜드가 합법적으로 분할된 뒤, 이번엔 북아일랜드 안에서 남북통합을 바라는 가톨릭 진영과 분할을 지지하는 프로테스탄트 진영 간 유혈충돌과 격렬한 내전이 벌어졌습니다. 1922년 12월 22일 아일랜드자유국은 영국-아일랜드 조약에 따라 자치국가를 세웠습니다. 같은 날 북아일랜드는 조약을 통해 보장된 권리라면서 신생 자치국가로부터의 탈퇴를 선택했습니다.
아일랜드자유국은 남아일랜드라는 국가로 대체됐으며 남아일랜드는 1919년 1월 21일 독립을 선언한 아일랜드 공화국의 후신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37년에는 새 헌법이 공포돼 오늘날의 아일랜드 공화국(에이레 공화국)이 됨으로써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그러나 아일랜드자유국이 영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공인받은 것은 아일랜드공화국법이 발효된 1948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아일랜드 공화국이 출범한 뒤에도 영국령 안에 남은 북아일랜드 얼스터의 6개 주에서는 60년 동안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벨파스트에서는 친영국계 연합주의자들과 분리독립주의자들 간 충돌이 계속됐습니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 등의 무장저항조직은 20세기 내내 영국에 맞선 무장투쟁과 폭탄공격을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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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역시 아일랜드 문제를 민주적으로 풀지 않았죠. 1998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와 분리주의 진영 간 평화협상이 체결돼 분쟁은 일단락됐지만 영국의 억압이라는 역사적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2010년 집권한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1972년 북아일랜드 런던데리에서 벌어진 영국군 공수부대의 시위대 학살사건에 대해 38년 만에 공식 사과했고,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2011년 5월 아일랜드 더블린을 방문해 1920년 영국군의 발포로 14명의 시위대가 숨졌던 크로스파크 경기장을 찾아가 희생자들을 추모했습니다. 영국 국왕의 아일랜드 방문은 1911년 조지5세의 방문 이래 100년만이자, 1922년 아일랜드 독립 이후 처음 이뤄진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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