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중동지역에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전쟁 등으로 인해 역내에서 대대적인 반미감정에 부딪치고 있는 사이 중국은 그 틈을 비집고 세력을 확대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는 미국보다 중국으로 더 많이 들어가고, 이란과 이라크에는 중국인 기술자들이 넘쳐난다. 중국의 서남진(西南進) 정책은 전통적으로 중국의 영향권이었던 아시아 동쪽지역을 벗어나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동으로도 확대됐다. 과거 `미국의 석유창고'로 불렸던 중동은 이제 `중국의 석유창고'로 바뀌었다.
'석유의 축'
최근 세계최대 석유회사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아람코 최고경영자인 압둘라 주마 회장이 중국 신화통신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회견에서 주마 회장은 중국으로의 원유 수출이 몇년새 급증한 사실을 들며 "중국과의 에너지 분야 협력이 나날이 늘고 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아람코는 중국 푸젠 석유화학공사,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시노펙), 엑손모빌 차이나 등과 공동으로 푸젠성 석유화학단지 건설 프로젝트에 투자키로 최근 결정한 바 있다.
주마 회장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이미 중국과 사우디의 밀착 관계는 세계 에너지시장의 판도를 바꿔놓고 있다. 아람코는 2000년대 들어 친미 색채를 탈피하고 중국 석유회사들과 밀월관계에 들어갔다. 석유전문가들은 `시노-사우디(중국-사우디) 커넥션'이 21세기 에너지전쟁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부 외신들은 중국과 사우디의 관계를 가리켜 `석유의 축(axis of oil)'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중국과 사우디의 밀착관계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90년 대사급 수교에 합의하면서부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석유. 중국의 사우디 석유 수입량은 92년 137만 배럴에서 10년 뒤인 2002년에는 8300만 배럴로 늘었다. 중국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양국간 교역량은 90년 2억9000만 달러에서 2002년에는 51억 달러 규모로 확대됐다.
최근 들어 중국은 사우디 석유를 수입해오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우디 원유를 중국 내에서 정제해 수출한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아람코가 투자한 푸젠성 정유시설과 칭다오 정유소 등이 완공되면 사우디 원유는 중국을 거쳐 세계로 나가게 된다. 미국이 사우디에 정유시설을 확충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사이, 중국은 직접 정유소를 만들어 사우디 석유를 끌어들이고 있는 꼴이다. 석유 뿐 아니라 천연가스 파이프라인도 종국에는 중국으로 향하게 된다. 시노펙은 지난해 사우디의 룹 알할리 사막 천연가스 개발에 참여하기 위한 협정을 맺었다.
눈에 띄는 중국의 이란-이라크 외교
94년만 해도 중국의 석유수입액 중 이란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했지만 10년만에 그 비율은 15%로 늘어났다. 지난해 10월 중국은 이란과 에너지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라 이란은 향후 25년간 매년 1000만 톤의 원유를 고정적으로 중국에 공급하게 된다. 또 시노펙은 170억배럴의 원유가 매장돼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쿠르디스탄 지역 야다바란 유전의 지분 절반을 차지하게 됐다. 중국석유화공총공사(CNPC)는 카자흐스탄 악토베무나이가즈 유전과 이란을 거쳐 중국으로 이어지는 송유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라크는 이미 사담 후세인 정권시절부터 중국과 친밀관계를 유지해왔다. 두 나라가 58년 국교를 수립한 이래 이라크에서는 왕정 붕괴와 공화정 수립, 쿠데타, 전쟁 등 정치적 격변이 계속됐지만 양국 관계는 흔들림이 없었다.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CNPC)는 지난 97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알 아다브 유전개발권을 따냈으며, 이라크 새 정부도 이 계약을 승계키로 결정했다.
중동 정치에도 적극 개입
겉으로 드러난 중국과 중동의 관계는 석유 수입에 국한돼 있지만 이면에서 중국은 사우디, 이란, 이라크 등에 막대한 양의 무기를 판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사우디로 가는 중국 제품은 대부분 섬유, 전자제품, 기계류 등이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산 무기가 중동에 넘쳐난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중국 전문가 이츠하크 시초르는 중국이 중동 무기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적 측면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중국은 이미 중동 문제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 중국은 과거 유엔의 이라크 무기사찰단(UNMOVIC)에도 여러명의 군사전문가를 파견했었다. 2002년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중재하기 위한 중동특사를 파견하기도 했다. 유엔, 러시아, 유럽연합과 함께 `중동 콰르텟(4자 회의기구)'을 구성해 로드맵을 만들고 있던 미국은 당시 중국의 개입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보였지만 중국은 이후에도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총리 회담 등을 만들어내는 등 개입 확대정책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6월에는 이스라엘의 에후드 올메르트 부총리가 베이징을 찾았고 12월에는 양국 고위인사들의 교환방문이 성사됐다.
중동의 중국 노동자들
이라크전 발발 2년 전인 지난 2001년 미국 전투기가 이라크 남부에 공습을 가했다. 그런데 사상자들 중 상당수는 현지에 나와 있던 중국인 노동자들이었고, 중국 정부가 미국에 거세게 항의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후세인 정권 시절 중국은 이라크와 20억 달러 규모의 인력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662개 인력회사가 중국노동자들을 바그다드에 들여보냈다. 바그다드 시내에만 중국인 노동자 2만명이 거주했을 정도다. 중국은 유엔의 이라크 경제제재 기간이던 90년대에도 `인도주의적 지원'을 명분으로 이라크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해왔고, 유엔 구호기관을 통한 이라크 대민지원에서 드러나지 않게 큰 몫을 담당했었다. 2003년 미군 점령 뒤 이라크 정정불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중국 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은 이라크 재건의 상당 부분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루살렘에서 바그다드까지, 중동은 중국 노동자들 천지다. 2003년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버스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났을 때 외신 카메라에 비친 희생자들 대부분은 뜻밖에도 중국인들이었다. 과거 팔레스타인 노동력에 의존했던 이스라엘은 90년대 말부터 중국인 노동자들을 대거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박대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인 노동자들 덕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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