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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 '인간에 대한 오해'

딸기21 2003. 7. 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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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김동광 옮김. 사회평론

작년 5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지병으로 숨졌을 때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찰스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가 사망했다"고 선언했다. 신문에 쓰인대로 굴드는 '스타 과학자'였다. 30년 가까이 수많은 에세이와 저술을 남긴 대중적인 과학자이기도 했지만, 그가 갖고 있는 스타성은 학문적 업적과 날카로운 사회적인 메시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공허한 것이 아니었다. 굴드가 숨진지 1년이 넘어서, 굴드의 최대 역작 중 하나인 이 책이 출간됐다.



책은 생물학적(유전적) 결정론에 대한 비판서로 요약할 수 있다. 굴드의 다른 저서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주제가 명확하다. '인간의 지능에 대한 신화'를 깨뜨리는 것이다. 센세이셔널하게 표현하면 'IQ는 없다'가 될 것이다. "지능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세상에는 머리 나쁜 인종과 머리 좋은 인종, 머리 나쁜 성(性)과 머리 좋은 성이 따로 있다"는 '지능 이데올로기'를 뒤집는 것이 책의 목적이다. '지능'으로 표현된 유전적 결정론의 내면에는 백인 남성 우월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잘못된 척도에 대한 오해'라는 뜻을 제목(The Mismeasure of Man)에 담고 있는 이 책은 지능을 기준삼아 저질러지고 있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비판한다.


"100% 유전적 근시도 20달러짜리 안경으로 교정할 수 있는데" 유독 '지능'이라는 기준으로 사람들을 구분, 계급을 만드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지능에 따라 사람들을 서열화하고, 차별하는 풍조는 과학의 탈을 쓴 정치적 범죄에 불과하다고 굴드는 말한다. 

여기서 근원적으로 한걸음 물러서, 저자는 '지능'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 과연 그런 실체가 존재하는가. "놀랄만큼 복잡하고 다면적인 인간의 능력을 나타낼 때 '지능'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축약된 말은 물화(物化)의 단계를 거쳐 단일한 실체라는 의심스러운 지위를 얻게 된다". 


과학자들과 기득권자들의 결탁 속에서, 인간 뇌의 다면적 기능은 '지능'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표현되고 막강한 지위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다음 수순은? 서열화다. 지능에 따라 사람들을 줄세우는 것. 줄을 세우는 기준은? 계량화다. IQ테스트다. 이런 '생물학적 지능결정론'은 과거 서구의 식민주의가 즐겨 써먹었던 '개종'이나 '동화'로도 해결될 수 없는 서열화라는 점에서, 차별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차별이다.

굴드는 이전 세기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통계치를 어떤 식으로 악용 또는 오용해서 인간 지능 서열화에 써먹었는지 탐정처럼 밝혀내면서, 서구식 '진보' 개념과 연결된 서열화를 통렬하게 비판한다(진화생물학에서 '진보' 개념에 대한 비판은 굴드의 마지막 저작이었던 '풀하우스'에 체계적으로 나와 있다). 굴드가 미국에서 인종차별 철폐투쟁이 가열하게 일어났던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반골임을 염두에 두고서 읽으면 다소 과격한 그의 논조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책은 생물학에 관한 대중적 저술 중에서는 '고전'에 해당된다. 과학저술가로서 굴드의 인기를 생각하면 국내 출간은 많이 늦은 셈이다. 책이 처음 나온 것은 1981년. 이 책을 20여년이 지난 지금 읽으려면, 그가 던진 메시지의 '현재적 의미'를 살펴봐야만 한다. 지난 96년 굴드는 15년만에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생물학적 결정론의 90년대적 의미'를 해석했다. 바이오테크혁명 시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1920-30년대 우생학자들의 논리로 다시 회귀하는 듯한 90년대 미국 보수주의와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증)가 다시 판치는 세상.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우생학의 논리를 21세기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지금 우리는? 외국인노동자를 비하·학대하고 고정된 성역할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이야말로 굴드의 메시지를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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