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나의 세계관
요새 과학과 어떤 형태로든 관련된 책을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원래는 과학 관련기사를 쓰기 위해서 시작한 독서인데 어느새 재미가 들린 거죠. 괴상한 과학자 소개라든가, 물렁물렁 과학 따위의 책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과학과 다른 분야의 만남을 다룬 책들을 좋아합니다.
어느 분야에서든, 대가(大家)는 통한다고 할까요. 스스로를 `외로운 여행자'라 불리웠던 20세기 최고의 지성. 사람들은 보통 그를 ‘뇌가 쪼글쪼글한 천재' 정도로만 생각하지만(오죽하면 우유 이름이 아인슈타인일까요), 노벨상을 받은 뛰어난 과학자일 뿐 아니라 그는 사상가이고 철학자였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죽기 전까지 핵문제와 교육, 인권, 과학과 인류애의 문제를 고민한 인도주의자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의 기고문과 연설문, 편지, 성명서 등을 모은 책([나의 세계관])을 읽게 됐는데, 젊은 시절부터 1955년 사망하기 직전에 쓴 것까지 망라돼 있습니다. 오만한 인류의 손에서 양날의 칼이 되고 있는 과학의 이슈들을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보았는지, 핵무기 개발에 대한 그의 솔직한 생각은 어땠는지, 왜 그를 `위대한 철학자'라 불러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1931년에 아인슈타인이 ‘포럼과 세기’라는 잡지에 기고했던 ‘내가 보는 세상’이라는 글의 일부분입니다.
내가 보는 세상
우리 인간의 운명이란 얼마나 기묘한가! 우리 모두는 저마다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인생의) 목적을 감지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무슨 목적 때문에 왔다 가는지 모르고 있다. 그렇지만 깊이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일상 생활을 통해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미소와 안녕에 우리 자신의 행복이 온통 걸려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공감이란 유대로 그들의 운명과 엮이어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산다는 점을 알고 있다.
나는 매일 골백번씩 내 자신의 내면의 삶과 외형적 생활이 살아있거나 이미 숨진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에 의지한다는 점과, 따라서 내가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것만큼 돌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스스로 되새기고 있다. 나는 검소한 생활에 크게 마음이 끌리고 또 내가 다른 사람들의 노고를 지나치게 많이 독점하고 있다는 점을 때로는 강박감을 느끼면서 인식하고 있다.
나는 계급의 구별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결국 폭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또 소박하고 분수를 지키는 삶이 심신 양면에서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중략)
나의 정치적 이상은 민주주의다. 모든 사람은 개체로서 존중받고 그 누구도 우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 자신의 過나 功이 없이 동료들로부터 과도한 찬사와 존경을 받는ㄷ는 것은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된 원인은 미력이나마 내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알게 된 몇가지 개념을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어느 조직의 목표를 성취하는 데는 한 사람이 머리를 짜내고 지도하고 또 전반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도를 받는 사람들은 강제를 당해서는 안 되고 그들의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나는 천재적인 독재자들의 뒤를 악당들이 계승한다는 걸 불변의 법칙으로 믿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오늘날 이탈리아와 러시아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의 체제에 항상 열성적으로 반대해 왔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집단 생활의 가장 좋지 않은 형태로서 내가 혐오하는 군대 문제로 화제가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밴드의 선율에 맞춰 4열 종대로 행진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그를 여지없이 경멸할 것이다. 이런 사람이 큼직한 두뇌를 갖게 되었다면 이는 오로지 실수 때문이다. 그에겐 보호막이 없는 척수만 있어도 될 것이다.
문명의 재앙을 상징하는 이런 행위는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없어져야 한다. 명령에 따라 발휘되는 용맹성과 무분별한 폭력, 애국심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메스껍고 어리석은 행위야말로 내가 몸서리치게 혐오하는 것이다. 나에게 전쟁이란 얼마나 혐오스럽고 비열하게 비치는가! 나는 그런 가증스러운 일에 끼어드느니 차라리 난도질을 당하겠다. 나는 인류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만약 상업적 정치적 이해 관계자들이 교육과 언론을 통해 사람들의 건전한 의식을 조직적으로 타락시키지 않았다면 이런 악귀는 오래 전에 사라졌을 것으로 믿는다.
군대를 혐오하는 과학자, 어찌 보면 당연한 것도 같지만—그래도 멋지지 않습니까? ‘4열 종대로 행진하면서 즐거움을 맛보는 사람은 ‘뇌 없는 뼈다귀’란 얘기인데요^^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앞으로 대단히 중시될 것으로 보이는 한가지 다른 인권이 있습니다. 옳지 않거나 파괴적으로 판단되는 활동에 협력하지 않을 개인의 권리 또는 의무가 그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첫째로 군 복무를 거부해야 합니다.” (1954)
DHA 아저씨는 적극적으로 불의를 거부할 자유, 거부할 권리, 거부할 책무를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저씨가 전해주는 말들은 지금 들어도 딱 맞는 것들이어서(나는 아인슈타인을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고 싶다) 신기할 정도입니다. 나는 아인슈타인의 글을, 요즘의 ‘우리’ 이야기라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읽은 것이 아니라, 읽는 동안 내내 ‘지금, 이 세상’을 얘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죠.
세상이 변하지 않은 것일까요.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이 무려(와나캣이 잘 쓰는 말) 1921년에 지적한 군비축소 문제, 기술향상에 따른 실업 문제, 과잉생산 운운하면서 분배의 불균형을 가리려 하는 자본가와 정책 입안가들의 양태 같은 것들 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종교적 덕성과 도덕심, 시대정신의 형성에 기여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책임감과 교육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뭐 똑별난 것도 아니고, 문장이 화려한 것도 아닌데 가슴에 와서 잘 ‘먹힌다’고 할까요.
오늘날 인류의 운명이 그 어느 때보다도 인류 자신의 도덕적 힘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포기하고 자제하는 마음만 있다면 유쾌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방법은 도처에 있다. 그런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어릴 때부터 의지를 다지고 학업을 통해 시야를 넓힐 기회를 가졌던 사람들에게서만 그런 힘이 나온다. 따라서 우리 같은 늙은 세대는 젊은 세대가 힘껏 노력해 우리들이 하지 못한 것을 이뤄내기를 바랄 뿐이다. (1930년경 독일 평화주의 학생그룹에게 한 연설)
나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사람은 정말로 박애주의자로구나, 이 사람은 현실을 고민하면서 더 좋은 세상을 절실하게 꿈꾸었던 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어느 분야에서건 큰 인물이 된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그런 감동 말입니다. 패티김의 ‘빅쇼’를 아주 감명깊게 본 적 있습니다. 패티김이 말하는 자기 인생, 음악에 대한 생각 같은 것들이 얼마나 멋지게 들렸는지.
아인슈타인은 2차대전을 겪고 나서 국제적인 평화의 메커니즘으로서 ‘세계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요, 이 책의 백미는(제가 생각하기에는) 러시아 아카데미 회원들과 아인슈타인의 서신 부분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소련이 동의해주지 않는다면, 소련을 빼놓고서라도 세계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소련에게 압박을 가해 세계정부에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들어야 한다, 각 국가의 전쟁욕구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민족주의 국가의 주권을 제한하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소련 쪽에서는 “민족주의는 제3세계 국가들이 식민국가들의 압제에 맞서 쟁취해낸 것이다, 식민지를 만들어 세계를 지배했던 자들이 이제 와서 민족주의를 제한하자고 하는 것은 또다른 횡포에 불과하다, 아인슈타인은 ‘순진하게도’ 세계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상 그런 주장을 뒤에서 움직이는 것은 더 이상 민족주의의 국경 안에서 이윤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된 초국적 자본들이다” 라고 반박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생각했던 세계정부 구상은 물론 현실에서는 구현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순진하고 낭만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람의 ‘정신’ 만큼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과학이 아닌 과학관련 이야기라면, 게다가 이런 이야기라면 저도 꼭 읽어보고 싶어요.
요즘 짐 싼다고 아예 책이라고는 코빼기도 안보고 사는지라..
서울가서 살 책 리스트에 아인슈타인도 올리고 싶은데,
딸기언니 하나만 추천해 주세요.
이왕이면 과학이 아닌 이야기로, 너무 철학적이지도 않은 이야기로요. ^^;
바로 이 책, <나의 세계관>.
오케바리. 땡큐.
우아,,,아인슈타인 하면, 내가 이해 못하는 얘기만 하는 사람인줄 알았죠. 이렇게 멋진 말과 글이 있다니...감동입니다. 저두 꼭 읽어야 겠어요.
인간의 운명, 폭력에 기반한 계급의 부당성, 군대와 인권,소박하고 분수를 지키는 삶이라니....딱 요즘 우리의 고민입니다... 멋지네요, 이 할아버지!
시오니즘에 대한 얘기 빼놓고는 다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사실 아인슈타인은 유럽의 유대인 박해를 눈으로 본 사람이기 때문에 시오니즘에 몰두한 것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지요. 재미난 것은, 이 사람은 시오니스트들에게 돈을 모아주자는 연설도 많이 하고 유대인 사회에 청원도 많이 했는데, 정작 스스로는 "민족주의는 사라져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는 겁니다.
아인슈타인은 "사회주의가 옳다"고 선언했던 인물인데 이스라엘이 세워지던 당시의 시오니스트들 중에는 좌파들이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 건국자들이 저지른 짓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되죠. 이 간극을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이 책에서 나온 것만 보면, 시오니즘에 찬성하면서 '유대인 국가'를 열망하면서도 아랍인들과의 관계에서는 민족주의가 아닌 지역에 기반한 평화주의를 촉구하는 것으로 나타나더군요.
<아인슈타인 파일>을 보면, 시오니즘을 지지하면서도 유태인이 아랍과 협력해야 한도고 역설해서 시오니즘 지도자들과 마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스라엘이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아인슈타인에게 대통령직을 제안하면서도 시오니즘 지도자들은 그가 진짜로 제의를 수락하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 했답니다. 군대를 그렇게 싫어했던 아인슈타인이니까 자기 생각과 다르게 돌아가는 이스라엘을 보고 아마 공식적인 발언을 삼가했어도 입맛이 썼을 겁니다. 물론 히틀러 치하에서 반유태인 분위기를 맛본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건국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려웠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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