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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오디세이- 과학이 신화를 만나는 방법.

딸기21 2003. 5. 3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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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오디세이
정창훈 지음. 휴머니스트.



"그리스인들이 에트나 산을 '라 노스트라 시뇨라' 즉 어머니산이라 불렀던 이유가 있다. 오랫동안 경작을 계속하면 땅은 산성이 되어 황폐해진다. 이때 사람들은 논밭에 석회를 뿌려 땅을 중화시키는데, 이 지역에서는 화산재가 그 역할을 한다. 화산재가 바로 석회이기 때문이다. 즉 에트나 산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비옥한 토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카로스는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햇볕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떨어졌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이 하늘로 날아간다면, 주변 공기는 점점 식어갈 것이다. 그렇다고 이카로스 이야기를, 뭘 모르는 선조들이 만들어낸 넌센스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다이달로스의 미궁과 이카로스의 날개 사이에는 우리가 미처 읽어내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불뿜는 화산을 지옥의 입구로, 굽이쳐 흐르는 강을 거대한 뱀으로 보았던 그리스 사람들의 생각 저변에는 분명 자연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신화와 과학, 둘은 적인가. 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신화는 자연을 설명하려는 최초의 서툰 시도, 즉 과학의 선조'라는 미국의 신화학자 비얼레인의 말을 빌어, 저자는 신화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1차 사료는 토머스 벌핀치의 '신화의 시대'.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서 지진이나 해일 같은 지질학적 현상과 유전 문제, 빛과 소리의 작용, 우주의 기원 등에 대한 인류의 생각을 읽어낸다.
문화인류학적 맥락에서 신화를 재해석하는 일은 늘 이뤄지고 있지만, 자연과학과 결부시켜 신화에 주석을 다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 참신하고 흥미롭다. 더 의미있는 것은, 멀고먼 그리스신화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야기'에까지 시선을 확장시켜 진정한 '오딧세이'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신화를 모티브로 한 그림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공들여 책을 만든 티가 난다.

잠시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과학책을 왜 읽어야 하나. 핵무기, 인간복제, 환경오염 같은 과학의 이슈들은 이제 진부하다 싶을 정도지만, 그런데도 정작 과학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많지 않다. 어떤 사회집단 혹은 학문이 '절대권력'이 되려한다면 모든 지식인집단이 들고일어나 견제를 한다. 그런데 유독 과학이라는 권력에 대해서는 아직도 맹신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과학이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 '권력으로서의 과학'을 구분해내는 눈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분명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자연 앞에서 인류는 신화시대 사람들의 겸손함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어떻게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것인가. 이 문제에 그리스 로마 신화는 멋진 조언을 해주고 있다. 생명윤리는 불로불사를 얻고자 하는 티토노스의 자기애가 아니라, 고통을 견디며 의지를 꺾지 않은 프로메테우스의 인류애를 바탕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과학잡지를 만들었던 저자의 통찰력에서 나온 이야기이니 귀담아 들을만 하다.(작품성 ★★★★ 대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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