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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츠만의 원자

딸기21 2003. 8. 1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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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츠만의 원자 | 원제 Boltzmann's Atom (2001) 

데이비드 린들리 (지은이) | 이덕환 (옮긴이) | 승산 | 2003-08-05



`물리학에 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논쟁'이라는 다소 센세이셔널한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루드비히 볼츠만이라는 오스트리아의 탁월한 과학자가 원자 이론을 확립해가는 과정을 소개한 일종의 전기이다. 그러나 단순한 위인전으로 읽기에는 내용이 복잡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연대기적으로 그린 저술이 아니라, 한 과학자가 어떤 논쟁과 비판을 거쳐 하나의 가설을 이론으로 확립해갔는지 보여주는 과학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역자는 이 책을 `과학 이론의 전기'라고 표현했다.


볼츠만이 태어나 활동했던 19세기는 기계적, 실증주의적 과학관이 활개쳤던 시기였다. 당시 학자들의 눈에 과학은 `관찰된 현상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도 `실험'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던 시대였다. 

이론물리학 같은 분야는 맹아로만 존재하던 시기에 볼츠만은 `머릿 속의 물리학'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실험을 도입했다. "더 깊은 수준의 이해를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그치지 말고 더 깊은 곳을 파헤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과학자도 있었다. 볼츠만은 그런 선구자 중의 하나였다". 


저자가 눈여겨보는 것은 볼츠만에게서 엿보이는 그런 `과학의 정신'이다. 그래서 책은 볼츠만 못지 않게, 당시 학계에서 볼츠만과 정반대되는 주장 쪽에 서있었던 에른스트 마흐의 입장에 대해서도 상당한 문장을 할애한다.

오늘날은 분자를 구성하는 공처럼 둥글게 생긴 원자들이 당당하게 과학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지만, 당시는 원자라는 것의 존재가 아직 확실히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기였다. 그러나 볼츠만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이 존재들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고, 그 믿음은 뒷날 사실로 인정받았다. 원자라는 존재를 가정하고 기체의 운동과 열(에너지)의 관계를 정립한 그의 이론은 현대 열역학의 선구였다. 
반면 마흐는 기껏 `확률'로 표현되는 원자들의 세계를 믿지 않았다. 볼츠만과 마흐, 두 과학자의 대립은 곧 열역학의 토대인 원자이론의 성립 과정을 보여주는 물리학적, 철학적 논쟁의 역사로 자리매김된다.

볼츠만의 업적이 왜 중요한가. 볼츠만이 원자라는 존재에 대해 갖고 있던 `믿음', 혹은 그가 제안한 확률·통계적 접근방식은 `과학적 사고'와는 좀 동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타고난 천재'가 아니라 `성실한 학자'였던 볼츠만은 진리를 향한 열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다가가는 하나의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신이 모든 것을 주관한다는 인식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시기에 볼츠만의 원자론은 인간을 결정론에서 해방시키는 토대를 마련해줬다. 그리고 그의 업적은 이후 일리야 프리고진이 주창한 비평형 통계역학 등의 이름으로, 또 생태주의 세계관의 형태로 우리의 인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가 볼츠만의 원자에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결코 지나친 찬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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