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험의 징조
학교가 끝나면 마리는 항상 애니와 같이 간다. 그리고 같이 비밀 기지에 가서 놀다가 갈림길에서 헤어졌다. 왜냐하면 마리와 애니는 그 정원에 무언가 신비한 힘이 있고 밤이면 밤마다 요정들이 춤을 추러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주 또렷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작은 무언가가 마리와 애니의 뇌를 세뇌시키는 것 같았다.
그 정원은 꽃밭이 길게 늘어선 한적한 곳이었다. 이 정원을 데이트 장소로 약속한 연인들이나 어린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와서 노는 일 말고는 사람들을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마리와 애니는 그 정원을 ‘요정 왕궁의 정원’ 이라고 불렀다.
그 날도 마리와 애니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지에 들를 참이었다. 쇠로 된 문고리가 들린 문을 열자 삐거덕 소리가 나면서 환상의 세계가 펼쳐졌다.
“ 여기에 뭐가 더 있는지 한번 탐험해 볼까?”
마리가 말했다.
“우린 이미 이곳에 뭐가 있는지 줄줄이 꿰고 있잖아.”
그 말에 애니가 대답했다. 애니 말이 맞긴 맞았다. 마리와 애니가 그 곳을 비밀기지로 삼은지도 거의 1년이나 되었다.
마리와 애니는 학교에서 몰래 가져온 잡동사니들을 기지에 갖다 놓았다.
“드디어 다 했다!”
마리가 애니에게 말했다.
“그런데 내가 학교에 뭐 좀 놓고 온 게 있거든. 그러니까 너 먼저 집에 가. 나는 학교 갔다 올게. 안녕! 내일 보자!”
애니가 손을 흔들며 오솔길로 도망치듯 달려갔다. 기분 때문인지 애니가 나를 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는 식탁을 치우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하늘에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잿빛 하늘은 마리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달은 마리를 보고 쓸쓸한 웃음을 지었다.
마리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엄마는 일 때문에 해외에 가 계셨다. 그래서 이모가 마리를 돌보아 주고 있었다. 그런 마리에게 희망이라고는 어릴 때부터 키워 온 맨드라미와 학교 단짝 친구인 애니 밖에 없었다.
밤이면 밤마다 마리는 달빛에 빛나는 맨드라미를 보면서 언젠가는 반드시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겠다는 다짐을 굳혔다. 내일이 바로 마리의 11살 생일이었다. 애니를 초대 할 참이었다. 어쩌면 그 때가 최고로 이상한 생일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때 이모가 일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나 밥은 혼자 챙겨 먹어야 했다. 그래도 마리는 이모를 도와 요리를 해 보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익숙했다.
마리는 잠자리에 들자 기대가 되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애니를 초대해서 뭐 하고 놀까?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서 수다나 떨까? 그러면 애니가 지루 해 할 텐데…… 숨바꼭질 같은 놀이도 재미있어 할까? 하긴 12살이나 되어서 숨바꼭질 하는 건 창피한 일이겠지……책 읽으면서 그림 그리고 노는 게 낫겠다. 내일 학교 가야 하니까 빨리 자야겠다.’
마리는 꽃무늬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씌우고 곧바로 잠이 들었다.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마리가 애니한테 말했다.
“안녕? 오늘 내 생일인데 같이 놀래? 1시부터 2시까지 놀 수 있어.”
애니가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모양을 그렸다. 된다는 뜻이었다. 용건은 해결 되었으니 마리도 책을 읽으려고 마음에 드는 책을 골랐다. 마리는 모험 이야기를 좋아해서 걸리버 여행기를 고르려고 했다. 그런데 걸리버 여행기를 잡으려는 순간, 걸리버 여행기가 사라져 버렸다. 마리는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겨우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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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을 꿨나? 나는 아직 이런 운명적인 사건을 겪을 때가 되지 않았는데…… 설마 나를 보고 걸리버 여행기가 사라진 곳으로 오라는 신호 일까? 아, 모르겠다. 내가 환각을 본 건 아니겠지. 나는 환각을 보기에 아직 어린 나이니까. 이 일은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마리는 방금 전의 일이 실감이 나지 않아 자기 볼을 꼬집었다. 볼이 아팠다. 마리는 다른 책을 집으려고 하면 그 책마저 사라져 버릴까봐 차마 다른 책을 고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교과서를 펼쳐들고 숙제하는 척을 했다.
다른 아이들은 마리에게 일어난 일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마리는 조용히 자리에 가서 앉았다.
어제 잠을 설쳐서 그런지 마리는 수업 시간에도 졸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마리는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마리와 애니가 무언가를 쫓아가다 벚꽃 나무 앞에 다다르는 꿈이었다.
“마리! 마리! 꼭 선생님이 소리를 지르게 만들어야 하니?”
마리는 선생님이 지르는 소리에 놀라서 깼다. 마리는 잠에서 깨자마자 꿀밤을 맞아야 했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어제 잠을 늦게 자서 그랬어요.”
선생님이 소리쳤다.
“변명은 하지 마라. 네가 늦게 잔 것이 잘못이니, 다음부턴 이런 일은 없도록 해.”
마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애니와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리는 오늘 일어난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그 책이 사라졌을까? 혹시 연금술사(펄펄 끓는 도가니 속에 여러 가지 물질을 섞어 금을 만들려던 사람)가 걸리버 여행기를 필요로 해서 마법으로 가져간 게 아닐까? 그런데 연금술사도 마법을 부릴 줄 아나? 주술사, 마술사처럼 연금술사도 ‘술사’로 끝나니까 마법을 부릴 줄 알겠지. 뭐. 그런데 걸리버 여행기를 연금술사가 가져간 게 아니면 어떻게 하지? 순간이동을 할 줄 아는 책도 있을 법 한데……. 그래도 최대한 내 생각이 무서운 쪽으로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하지만 아까 꿨던 꿈은 뭐였지? 불길한 느낌이 들어. 하긴, 꿈을 무서워한다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지. 그런데 나 집에 너무 늦게 들어가는 거 아니야?’
마리의 머릿속에는 복잡한 생각이 마구 뒤엉켜서 정신이 없었다.
“마리,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겠다.”
애니가 말했다.
마리는 애니에게 다 털어놓기로 했다.
“애니, 할 말이 있어.”
“뭔데?”
애니가 물었다.
“오늘 아침에 걸리버 여행기 책을 가져가려는데 걸리버 여행기가 갑자기 사라져버렸어. 그리고, 또 너랑 나랑 무언가를 쫓아가는데 벚꽃 나무 앞에 다라르는 꿈도 꿨고.”
애니가 대답했다.
“네가 진지해 보이긴 한데, 못 믿겠어. 일단 너희 집으로 가자.”
마리와 애니는 집 앞 꽃밭이 있는 길로 뛰어갔다. 잠깐이라도 꽃을 보고 가기로 정했다.
“뭐, 어차피 늦었으니까 조금만 더 늦자.”
꽃을 구경하던 중에 눈에 확 띄는 꽃을 발견했다. 해바라기였다.
갑자기 해바라기 꽃의 그림자가 커지더니, 해바라기를 삼켜 버렸다. 마리는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봤지? 내가 이상한 일 일어났다고 했잖아.”
마리와 애니는 너무 소름끼쳐서 집으로 달려갔다.
오늘도 역시 이모는 회사에 가고 없었다.
“너희 집 꽤 크구나.”
애니가 가방을 방에 놓고 숙제를 하자고 했다.
띠리링! 띠리링!
숙제 노트를 꺼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마리가 전화를 받으니까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스 피아나 양, 4일 후 밤 12시에 무도회가 열리니 와주시기 바랍니다.”
“저기, 저는 미스 피아나 양이 아닌데…….”
그 여자는 마리가 대답을 하기 전에 끊어버렸다.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4일 후면 내 생일인데……. 혹시 생일 파티를 열어 주려는 건가? 하지만 왜 나보고 미스 피아나 양이라고 불렀지? 뭐, 이름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그런데 어디서 하는 파티인지 가르쳐 주지도 않았잖아. 아휴, 오늘은 이상한 일만 잔뜩 일어났어.”
마리는 다시 방에 들어갔다. 애니는 침대에 앉아서 마리 숙제까지 꺼내 놓고 있었다. 책상에 종이쪽지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글이 적혀 있었다.
13번지 벚꽃 나무 옆으로
와주기 바람.
뒷장에는 멋들어지게 L 자가 써져 있었다.
“이게 뭐지? 왠지 이상한 일이랑 관련이 있을 거 같아. 아, 참 내 꿈에 그 벚꽃나무일지도 몰라!”
마리는 이상한 일과 쪽지에 적혀있는 내용을 연관지어보기로 했다.
“애니! 내가 전화 받았는데 나보고 미스 피아나 양이라 그랬어. 그리고 오늘 밤 12시에 파티 하니까 파티장소로 오래. 그리고 이 쪽지에 벚꽃 나무 옆으로 오라고 했으니까 아마 오늘 밤 12시에 벚꽃나무 옆으로 가는 거야. 그리고 내가 꿨던 꿈은 그 일을 알려주는 징조인 거고. 어때? 말 돼지?”
“알았어. 내가 오늘 밤 12시에 벚꽃 나무 옆으로 갈게. 꼭 기다려야 해.”
애니는 어른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지만 가끔씩 마리의 계획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마리와 애니는 숙제를 다 하고 책을 읽으면서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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