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이집트 투자청(GAFI)은 한국 기자단을 카이로에 초청, 기업지배구조 컨퍼런스를 참관하게 하고 기업 설립절차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간소화한 ‘원 스톱 숍(One Stop Shop)’을 보여줬다. SEZ에 취재진을 데려가 사실상 투자유치·운영 등의 서비스를 총괄하고 있는 중국 쪽 관리자들과 만나게 하기도 했다. SEZ는 중국 톈진특별경제구역(TEDA) 측이 부지 일부를 임대받아 공장 설립 등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집트가 ‘차세대 성장동력’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홍해 바닷가 자파라나의 거대한 풍력발전 플랜트도 견학코스의 일부였다. 카이로 시내 포시즌스 호텔의 컨퍼런스홀에서 만난 마흐무드 모히엘딘 투자부 장관은 중국어로 인쇄된 명함을 내밀었다.
투자유치를 위해 외국 기자단을 불러 홍보하는 것은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다. GAFI가 ‘미디어 팸투어(시찰)’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이번 행사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이례적인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인상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행사가 눈길을 끈 부분이 있다면 ‘이집트가 한다’라는 것이었다. 수천년 역사, 피라미드, 스핑크스, 룩소르의 거대한 신전들. 이집트가 외국인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은 그런 것들이다. 이집트의 ‘현재’는 그 나라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나 그 나라에 가고 싶어하는 잠재적 방문객들에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이집트에도 변화 바람?
이집트의 오늘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집트는 중동 정세의 지렛대가 되는 지역 패권국가이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의 중재자이며 이스라엘과 수교한 몇 안 되는 중동 이슬람국가(정확히 말하면 요르단, 터키, 이집트만이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며 수교하고 있다) 중 하나이며, 호스니 무바라크라는 독재자가 1981년 이래로 29년째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나라다.
이집트는 지구상 어느 나라 못잖은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유엔 사무총장(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전 총장)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모하마드 엘바라데이 전 총장)과 아랍연맹 사무총장(아므르 무사 현 총장)을 배출한 국제무대의 핵심 플레이어다. 이 나라의 어제와 오늘을 요약하면 이렇다.
Egypt's President Hosni Mubarak, center, is welcomed by Algerian President Abdelaziz Bouteflika, right,
at Algiers airport, Sunday July 4, 2010. Mubarak is on a one-day trip to Algeria. (AP Photo/Ouahab Hebbat)
하지만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떨까. GAFI의 초청으로 이뤄진 지난달 카이로 방문에서 맞닥뜨린 이집트의 모습은 조금은 생소했다. 이집트가 투자유치에 적극 나섰다? 가말 압둘 나세르 초대 대통령 이래로 ‘아랍 사회주의’를 표방해왔던 이집트가 시장중심 경제로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어차피 세계 사람들은 피라미드를 보러 온다”는 듯한 태도로 관광인프라 투자마저 게을리했던 이집트가 ‘원 스톱 숍’을 자랑하는 모습은 어색해보이기까지 했다.
어쨌든 수에즈의 중국인들이 이집트 투자의 이점을 열띠게 설명하는 모습은 눈에 띄었고, 무려 700여개의 터빈이 돌아가는 자파라나의 풍력발전소는 위용이 대단했다. 이집트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변화의 배경은 분명하다. 이제 82세가 된 무바라크가 노쇠해졌다는 것, 미국은 29년째 계엄통치를 이어가는 무바라크 독재정권의 부작용을 이제 조금씩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것, 어떤 방식으로든 이집트는 ‘포스트 무바라크’ 체제로의 평화적 이행을 준비하면서 국민들의 반정부 감정을 누그러뜨릴 온건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집트에 가장 큰 위기의식을 불어넣은 것은 최대 맹방이던 미국이다. 미국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사악한 독재자로 몰아세웠고,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을 몰아내기까지 했다. 조지 W 부시 정권이 내세운 이른바 ‘레짐 체인지(정권교체)’ 전략이었다. 부시는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중동 민주화 구상’이라는 것을 내세웠다. 하지만 중동·아랍권 최악의 독재정권인 무바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패한 친미 전제왕정을 그대로 두면서 중동의 민주화를 운운한다는 것은 영 설득력이 없었다. 미국 내에서도 이집트와 사우디의 가시적인 변화가 없이는 이슬람권의 반미 감정을 억누를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부시 행정부는 이집트에 미온적으로나마 개혁을 촉구했고, 무바라크도 압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연유로 2005년 무바라크는 ‘사상 첫 다당제 대선’을 실시했다. 물론 선거는 공정하지 않았다. 야당 지도자였던 아이만 누르는 극도로 탄압받았고, 선거부정에 대한 고발과 저항이 줄을 이었다. 어쨌든 무바라크는 88.6%의 지지율로 당선돼 ‘5기 집권’을 이어갈 수 있었다. 비록 형식적인 선거였다고는 하지만 국민적인 저항의 분위기, 그리고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 조직의 부상은 정권에 경각심을 심어줬다.
Mohammed ElBaradei waves during a demonstration to protest at what they call systematic torture by the police
after the alleged beating death of a young man in Alexandria, Egypt, Friday, June 25, 2010. (AP Photo/Tarek Fawzy)
경제개혁, 성공의 열쇠는 ‘정치’
이집트는 관광수입과 미국 원조에 크게 의존하면서 제조업이 낙후돼 사실상 이렇다할 공장이 없었다. 아랍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관행 때문에 민간부문이 취약하고 공공부문 효율성이 매우 떨어졌으며 부패도 심했다. 경제성장의 동력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인구 8000만명으로 중동·북아프리카 최대 시장이라고 하지만 경제는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무바라크는 저항을 누르기 위해 국민들의 큰 불만거리이던 경제문제에서 개혁을 약속했다. 핵심은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대선 1년 전 임명된 아흐메드 나지프 총리가 중심이 되어 민영화, 외국투자 유치, 관세 인하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SEZ도, GAFI의 홍보전도 모두 이런 정치적·경제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개발도상에 있는 나라들이 흔히 그렇듯, 이집트에서도 경제를 좌우하는 것은 정치다. 독재는 부패를 낳고, 부패는 정체를 낳는다. 아시아처럼 ‘개발 독재’를 통해 급성장한 곳들도 있긴 하지만 제3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압도적인 수출용 자원이 없이 독재정권이 경제발전을 이뤄내는 경우는 드물다. 이집트의 경우 커다란 내수시장, 중동·아프리카·아시아의 교차점이라는 입지, 저렴한 노동력 등의 발전 요인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구슬들을 꿰어 보배로 만들어야 할 정부의 효율성과 투명성, 신뢰도는 낮다.
이집트가 후진적인 정치에 발목 잡혀 이번에도 성장의 기회를 놓치고 말지, 아니면 포스트 무바라크 체제로 연착륙해 개혁의 강도와 속도를 올려갈지는 내년 대선에 달려 있다. 아쉽게도 유권자들의 기대감은 크지 않은 듯했다. 무바라크가 아들 가말(46)에게 권력을 물려주려고 준비한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러나 투자부 공무원 만수르는 “정치상황은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무바라크가 내년 대선에 또다시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바라크는 살아있는 한 누구에게도 권력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였다.
An angry Egyptian demonstrator shouts anti-police slogans in front of two posters showing killed 28-year-old Khaled Said
during a protest in Alexandria, Egypt, Friday, June 25, 2010. (AP Photo/Amr Nabil)
내년 대선을 앞두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엘바라데이가 대권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나름 돌풍을 일으켰던 아이만 누르도 다시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젊은 유권자들은 “모두 다 싫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마디로 대안부재론이다. 한국의 한 외국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비르(24)는 “무바라크도 싫지만 엘바라데이는 친미파인데다 외국에 오래 머물러 국내 사정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아비르는 “지지할 사람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카이로에서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타미르(26)는 “가말 무바라크가 집권하면 아무래도 젊은 사람이니 안정을 유지하면서도 개혁의 속도를 좀 더 빠르게 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걸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나는 아무도 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젊은 유권자 메이(26)는 가말 무바라크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가말은 이집트의 문제, 이집트의 정치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또한 개혁의 필요성도 잘 알고 있고, 실행에 옮길 능력도 있다.” 메이는 “엘바라데이는 좌파”라면서 “모처럼 추진되고 있는 공공부문의 민영화 개혁을 뒤로 돌릴 것”이라 주장했다.
아비르와 타미르, 메이는 모두 무바라크 이외의 대통령을 본 적이 없는 20대 젊은이들이다. 이들에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어보였다. 늙은 무바라크의 시대가 좀더 계속되거나, 젊은 무바라크의 시대로 이어지거나, 두 가지 길 외에 현실적으로 민주적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막혀 있는 탓이다.
메이가 ‘개혁의 적임자’로 믿고 있는 가말은 최소한 아버지와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카이로에서는 경찰관 2명이 인터넷 카페에서 칼레드 사이드라는 28세 남성을 체포한 뒤 목을 졸라 살해했다. 민주화운동가였던 사이드는 경찰이 단속으로 입수한 마약을 나눠갖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경찰관들은 대마초를 흡입한 상태에서 그를 보복 살해했다.
미국과 유럽이 이 사건을 문제삼자 가말은 지난 7일 “문제의 경찰들을 철저히 조사해 정의를 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말이 인권을 옹호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혹은 돈줄인 우방들에게 밉보이지 않으려는 것 뿐인지는 알 수 없다. 미래를 점치기엔 이집트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위클리경향 884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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