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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의 기적' 이집트의 꿈 이뤄질까

딸기21 2010. 6. 29.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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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홍해에 면한 이집트의 수에즈특별경제구역(SEZ)을 방문했다. 카이로에서 1시간 동안 차를 타고 달려, 아인 수크나 항구에 붙어있는 SEZ에 도착했다. 황량한 사막을 한 토막 잘라 구획지은 것 같은 너른 땅 한가운데에 새로 지은 건물과 한자가 쓰인 깃발들이 나타났다. 중국 국영 톈진경제기술개발지역공사(TEDA)가 부지를 빌려 짓고 있는 SEZ 내 ‘중국 구역’이었다.

접착식 부직포 제품들을 생산하는 중국 회사 CTMC의 현지공장에서는 히자브(머리수건)를 두른 이집트인 여성 노동자들이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생산된 제품을 포장하고 있었다. CTMC는 이런 종류의 섬유제품 생산으로는 세계 3위 규모의 기업이다.

이웃한 요업공장은 이집트 기업인 클레오파트라그룹 산하 ‘세라미카 엘도라도’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거대한 사일로에 점토반죽이 흐르고 희뿌연 공기 속에 욕실용 타일을 실은 컨베이어벨트가 쉴새 없이 돌아갔다.

클레오파트라 그룹 회장 아불 에네인은 이집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중의 한 명이라고 한다. 에네인은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 욕실 타일에서 스마트카드까지 다양한 생산분야를 갖춘 거대기업을 일궜다. 지금은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변신, 집권 국민민주당(NDP) 의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회사의 홍보 동영상에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모습이 연신 등장했다. 외국계 투자가 들어있지 않은 ‘100% 이집트 기업’으로는 최대 규모의 회사인 만큼 무바라크도 큰 관심을 갖고 있고, 수시로 이 회사 공장을 찾는다는 것이 안내원의 귀띔이었다.


무바라크의 경제개혁 실험

2008년부터 짓기 시작한 SEZ는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집트가 사활을 걸고 있는 경제개발 계획의 핵심 사업중 하나다. 면적 1㎢에 걸친 TEDA 구역은 공장과 종합서비스센터, 주거시설 등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TEDA는 이를 발판삼아 향후 총 7㎢로 확대해 주거시설과 공원, 스포츠시설 등이 모두 갖춰진 산업신도시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브리핑을 하는 이집트-TEDA의 중국인 매니저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중국 구역 옆에는 한국 구역 등도 유치할 예정이라는 것이 이집트 측의 설명이었다. 이미 이집트 투자청(GAFI)의 오사마 살레 청장이 지난달 한국을 다녀갔고, 곧 다시 방한할 것이라고 했다.

이집트의 수에즈특별경제구역(SEZ) 프로젝트를 떠맡고 나선 중국 TEDA 사무소. 홍해 연안 사막 한가운데에 중국이 짓고 중국인들이 일하고 있는 커다란 TEDA 건물이 덩그마니 서있다.



북아프리카의 ‘잠 자는 거인’ 이집트가 깨어나려는 몸부림을 하는 모습은 SEZ를 비롯해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집트는 유엔, 국제원자력기구(IAEA), 아랍연맹의 수장들을 배출하는 등 외교무대에서 큰 목소리를 내왔고 중동 정치에서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다. 하지만 경제에서는 관광수입과 국외 원조에 의존, 수십년째 답보를 면치 못했다. 공화국 초대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 시절부터 이어져내려온 아랍사회주의의 유산인 방만한 국영기업, 낡은 인프라, 부패한 관료제도, 정실주의 등으로 인해 ‘경제적 후진국가’로 처졌다.

그랬던 이집트에 위기의식을 심어준 것은 최대의 돈줄이자 독재정권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미국이었다. 무바라크 현 대통령은 1981년 암살된 안와르 사다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뒤 지금까지 29년째 계엄령을 유지하며 철권을 휘두르고 있다. 내년 대선에서 아들 가말(현 집권 NDP 정책위원장)에게 권력을 세습하려 한다는 얘기도 있다. 


무바라크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강경진압하면서 억압통치로 버텨왔다.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 조지 W 부시 정권은 사담 후세인 체제를 몰아낸 것을 옹호하기 위해 ‘중동민주화 구상’이라는 급조된 계획을 발표했다. 이제는 미국에도 짐이 되어버린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독재국가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적 개혁을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미군기지가 들어선 뒤 반미 이슬람과격세력의 온상이 된 사우디에서는 2005년 파드 국왕이 숨진 뒤 상대적으로 온건·개혁성향인 압둘라 국왕이 즉위해 미미하나마 개혁 비슷한 조치들을 추진하고 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도 미국의 압박에 못 이겨 2005년 첫 다당제 대선을 실시했다. 야당 후보 탄압과 극심한 부정선거를 통해 무바라크는 88.6%의 지지율로 당선됐다.


수에즈특별경제구역(SEZ)에 위치한 중국 섬유회사 CTMC 공장에서 지난달 말 이집트인 여성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선거 뒤 무바라크는 국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시적인 개혁조치에 착수했다. 핵심은 민영화와 일자리만들기였다. 민영화로 재정을 충당하고, 해외투자를 유치해 공장을 세우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독점해온 서비스분야를 일부 개방하고 ‘군수공장’이라는 미명 하에 생필품을 생산하던 국영 사업장들을 국내외 기업들이 매각했다. 하지만 이집트 내 민간자본이 발달해 있지 않아 대부분 국외 기업들에 팔렸다. 2004년 7월 취임한 아흐마드 나지프 총리와 가말의 최측근인 마흐무드 모히엘딘 투자부 장관 등이 경제개혁의 선봉장이 됐다.


‘나일강의 기적’ 가능할까

최소한 지금까지는 무바라크의 경제개혁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외직접투자(FDI) 유입액은 2002~03 회계년도 4억3500만달러(약5200억원)에서 2007~08년에는 132억4000만달러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에 4.7%로 잠시 낮아졌지만 2007, 2008년 연속 7%대를 기록했다. 재작년 18.3%에 이르렀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10.1%로 낮아졌다. 모히엘딘 투자장관은 “무엇보다 중소기업 수가 5년새 2배로 늘어 지난해 6만7000개를 기록한 것이 큰 성과”라고 강조했다.


이집트를 낙관적으로 보는 이들은 ‘나일강의 기적’을 일궈낼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첫째는 거대한 내수시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집트는 인구 8047만명으로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최대 시장이다. 


두번째는 저렴한 에너지 가격을 들 수 있다. 석유매장량 44억배럴, 하루 생산량은 67만5000배럴. 천연가스도 2조1900억㎥를 보유하고 있고 연간 627억㎥를 생산한다. 근래에는 풍력·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 투자에도 열심이다.


SEZ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홍해 바닷가의 자파라나는 이집트의 미래 동력을 상징하는 곳이다. 8000㎢의 모래 땅에 높이 35~54의 거대한 바람개비 700여개가 서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현재 발전용량은 430㎽로, 자파라나를 중심으로 한 풍력발전은 이집트 전체 에너지소비량의 8% 가량을 담당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중·남부 아시우트 등지에서는 태양광 발전소 등을 짓는 ‘상이집트개발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집트는 2020년까지 전체 에너지소비량의 2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친환경기술 선진국인 유럽연합과 같은 목표치다.


이집트의 또다른 성장 요소는 값싼 노동력이다. 수에즈의 CTMC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월 500파운드(약 10만원)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의 지시에 따른 ‘전략적 진출’인 까닭에 이 회사는 종업원들에게 의료보장과 출퇴근 차량, 성과급 등 여러가지 혜택을 주고 있지만 그래도 임금은 매우 싼 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집트가 내세우는 것은 지리상의 이점이다. 이집트는 유럽, 아프리카, 중동, 남아시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미국과는 특별산업지역(QIZ)협정에 따라 수출품 관세혜택을 입고 있고, 유럽과도 파트너십협정을 맺은 상태다. 터키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동남아프리카공동시장(COMESA)을 통해 남쪽의 아프리카로도 진출할 수 있다. 이집트에 공장을 지으면 여러 협정을 발판삼아 각지로 유리하게 수출을 할 수 있다고 이집트는 주장한다. 실제 CTMC의 이집트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들도 전량 유럽으로 수출된다.


홍해 연안 자파라나의 드넓은 사막에 풍력발전용 터빈들이 줄지어 서있다. 이집트는 2020년까지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가능 에너지 비율을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2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러나 무바라크의 경제개혁이 성공할 것이라 장담하긴 이르다는 반론도 많다. 이집트 정부의 대외 신뢰도는 그리 높지 않다. 그래서 유일한 특별경제구역인 SEZ의 홍보에도 TEDA의 중국인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실정이다. 사막에 휘날리는 “TEDA가 여기 왔다”는 깃발들은, 이집트 정부의 분홍빛 약속들보다 중국의 존재감이 투자자들을 끌어모으기에 훨씬 낫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집트 정부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통계와 현실 사이

임금이 싼 만큼 노동생산성도 낮다. 고학력 인력들은 유럽과 미국으로 빠져나가는 두뇌고갈도 심각하다. 민간기업의 성공사례로 드는 크레오파트라 그룹의 경우 이집트 최대기업이라 하지만 고용인원은 2만명에 불과하다. 2400만명의 노동인구 중 550만명은 공공부문에 종사하고 있는데, 교육·의료·교통·행정 등 모든 공공 서비스 부문의 효율성이 극도로 떨어진다. 


부패도 심하다. 카이로에서 만난 모히엘딘 투자장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수준으로 투명성을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코트라 카이로비즈니스센터의 유병우 과장은 “아직도 행정절차를 밟으려면 단계마다 웃돈을 찔러넣어줘야 하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2년간 카이로에 체류한 이탈리아 여기자 페데리카 초자는 “여기는 언제나 공식통계와 현실이 다른 나라”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집트에 해마다 군사·경제원조로 15억달러를 주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집트의 연간 재정수입 488억달러 중 3분의1 가량이 미국의 직간접적 원조로 충당되고 있다는 추정도 있다. 공식 성인문자해독률은 71.4%이지만 실제로는 문맹이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에이즈 감염·보균자 수는 인구의 0.1%라고 하나 실상은 훨씬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공식 실업률은 9.7%였으나 실제는 20%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카이로 중심가 자말렉의 매리엇호텔 앞에는 이슬람권의 ‘주말’인 목요일 밤이 되면 앳된 얼굴의 소녀들이 무리지어 나타난다. 성매매를 하기 위해서다. 카이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막의 공동묘지를 집 삼아 사는 빈민들을 볼 수 있다. 이런 ‘무덤촌 주민’이 8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혁이 성공할지는 내년 대선에 달려 있다. 경제개혁 관련 컨퍼런스에서 만난 투자부 공무원은 이미 82세인 무바라크가 다시 출마할 것으로 예상했다. 무바라크는 생전에 절대로 권력을 물려주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몇몇 젊은이들은 “가말이 대권을 물려받으면 연속성 있게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모히엘딘 투자장관은 “우리 정치체제는 매우 안정적”이라며 “성공적으로 민주화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투자의 리스크는 없다”고 주장했다.
코트라의 노철 무역관장은 “이집트 경제가 크려면 연간 경제성장률이 10%는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로의 안착, 경제개발과 성장을 모두 일궈내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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